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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01. 2021

비오는 날의 독백


비가 와서 

비를 맞았다.      


우산을 썼지만 

비를 피할 마음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에 맨 가방까지 

옷에 물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로 

흠뻑 젖었다. 

젖고 싶었다.     


폭우주의보 알리는 안전 안내문자 때문일까? 

산책길 옆의 개천물이 불어 

다니던 산책길이 잠겼다. 

산책길 옆 꽃, 흙, 돌들도 다 잠겼다. 

물잔치를 즐기는 두루미떼들은 

아이들처럼 웃는다.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은 물이 그리워 물속으로 들어간다. 

채털리부인은 벌거벗고 비를 맞으며 초원을 달린다. 

물 속에 녹아들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소심하다.      

몸의 반란으로 흔들리던 것은 

몸 뿐 아니라 삶 그 자체     


이유를 알 수 없이 

벙어리처럼  

꽁꽁 묶여있던 소리가 

물과함께 

흘러나온다.      


내 창자에서 

내 배꼽에서 

내 머리카락에서 

내 눈꼽에서 

내 발톱에서 

내 콧구멍에서 

내 호흡에서 

내 눈물에서 

내 생명에서 


의미없는 소리만 지껄이던 

나는 

허깨비였음을


비에 숨어

부끄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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