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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Sep 02. 2021

열정이 사라질 때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다니던 한국의 미술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잠시 이런저런 활동을 하던 딸아이가 돌연 독일에 가겠다고 했다. 괴테어학원에서 몇 달 공부해보더니 아예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비자를 받아 독일에 가서 어학 공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입학시험에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알렸다. 돈이 많이 드는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을 아는지라 학비가 들지 않는 독일 행을 선택한 것이다. 생활비 정도의  최소한의 지원을 약속받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 열정 하나 가지고 맨땅에 헤딩하듯 자기 몸보다 더 큰 이민 가방 하나 끌고 혈혈단신으로 말도 안 통하는 땅으로 떠났다.       


   

당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허락하는 체류 기간 1년으로는 어학 공부, 입학시험지원 등을 끝낼 수 없었다. 다행히 독일의 M 대학에 합격하여 학생비자로 독일 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고, M 대학을 휴학하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교수가 있는 W 대학의 입학시험 준비와 언어 공부,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자신을 스스로 지탱하는 고된 시간을 감당해야했다. 말이 근사해 보이는 독일 유학이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생활 전선이었다.    


      

붙들 끈도 없이 혼자 꾸려가는 아이의 용기가 대견했고 첫 응시 학교의 합격 소식에 은근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원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엄마, 나 '루스트'(lust)가 사라졌어요. 독일 생활은 충분한 경험이 되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내 길을 찾아볼게요. 
          

아이는 굳이 독일어로 '루스트'라고 발음하여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주 강한 욕망이라는 뜻의 lust. 무모해 보이는 독일 행을 강행한 동기도 열정 때문이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의 원인도 사라진 열정 때문이었다. 어쩌겠나? 열정이 사라졌다는데 뭘 더 버텨보라고 할 것인가? M 대학도 감지덕지하니 거기서 공부하면 좋으련만, 아니면 원하는 대학을 다시 도전해도 좋으련만, 그리 먼 곳까지 힘들게 가서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은가?          



혼자 밥해 먹고 여러 차례  숙소도 옮기고 어학 공부도 하고 틈틈이 그림도 그리는 등 내가 그 자세한 사정은 다 알 수 없으나 어린 녀석이 그 많은 삶의 무게를 혼자  지고 끙끙대었을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해온다. 아... 녀석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열정 같은 거 다 내다 팔아버렸구나.     


     

“얘야, 네가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그렇지? 좀 더 안정된 생활환경을 위해 엄마가 지원할 방법을 생각해볼 테니 다시 시작해볼 수 있지 않겠니? ”   나의 이런 권유도, 아이의 마음을 돌이키기에 이미 열정은 그의 마음을 떠나버린 후였다. 

 

        

한국에 돌아온 딸아이는 몇 년 다양한 경험을 한 후 지금은 다니던 학교에 복학했다. 독일에 처음 갈 때 가지고 갔던 그 ‘열정’, 그리고 막상 독일에 가서 사라졌다는 그 ‘열정’이라는 단어를 더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갈수록 분명해지는 현실의 무게만이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빨간색을 좋아하고 유독 열정(Enthusiasm)이라는 그 영어 발음의 울림을 좋아했던 나도 경쾌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질 듯, 세상이  온통 내 편인 듯한 때도 있었다. 어라, 그 기운이 언제 사라졌을까? 돌이켜 보니, 삶의 찬란함의 그 기운이 사라진 것은 대략 결혼과 함께 다가오는 현실의 무게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직장생활, 육아, 살림, 결혼에 따른 의무들이 시나브로 내 고유의 그 기운들을 잠색했다. 아 이런... 나와 딸아이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열정과 현실은 양립할 수 없는가?          


난 이제는 이전처럼 젊지 않다. 현실의 무게가 덜어지고 나서야 잃어버린 꿈을 향해 심장이 수줍게 설레기 시작한다.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듯. 아쉽고 반가운 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인 딸아이에게 떨리는 가슴으로 기도한다.      



딸아!     


너무 늦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네 자리에서

다시,     


네 심장이 살아났으면 좋겠어.

꿈틀꿈틀 살아났으면 좋겠어.    

 

다치더라도

무모해지면 좋겠어.

다시,     


현실의 무게를 뚫고.

현실의 무게를 뚫고. 



* 이 글은 <글로모인사이>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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