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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l 04. 2021

아프니까 쓴다

글은 살리는 힘



아프면 글을 쓸 수 없을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 떠오르는 영감에서 출발하여 골똘히 생각하며 글감을 구성하고 필요한 정보를 보충하며 쓰는 글쓰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아플 때는 글 쓸 엄두도 나지 않고 무엇보다 쓰고 싶지가 않다. 왜냐면 삶의 의지가 많이 꺾여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계속되는 몸의 이상으로 몸의 힘과 함께 마음의 힘이 사라져 몸과 맘을 책상에 앉히는 것이 힘들었다.    



작년에는 대상포진으로 몇 달을 고생했는데 한 달 전에는 심한 두통으로 천국과 지옥 경험을 했고 이어 이유를 모르는 피부 가려움과 발진을 앓았다. 거의 6월 한 달은 질병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된지도 몰랐다. 계획된 일정을 취소하고 일상의 루틴은 깨어지고 오직 생존과 병 치료가 주 관심이 되어버렸다. 증상은 줄어들고 서서히 회복 모드에 있어 가벼운 외출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언제 또 증상이 재발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고 지속되는 병에 마음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아프면서 느낀 내 마음을 이해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 많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가깝다고 느꼈던 모임의 친구들도 내 아픔을 속속들이 알지 못했고, 설명을 한들 잘 이해도 못하고, 절대 고독감을 느끼며 인간은 결국 죽을 때도 이렇게 고독한 길을 가는 것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어져 납작 드러누운 내 몸과 맘을 일으켜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그분 덕분에 이렇게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다. 장마가 시작된 것인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도 함께 답답한 내 맘을 시원하게 해 준다.     








책도 읽히지 않고 누워 이런저런 영상을 듣고 있었다. 어쩌다 듣게 된 세바시 강연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강의의 연사는 TV N 기자이며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의 저자이기도 한 황승택이란 분이었다. 그는 건강검진 중에 급성 림프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암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치료 후 암이 두 번 재발되어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두 번 하는 등 3년 9개월의 투병, 재활의 기간을 보내고 다행히 건강해져서 다시 직장에 복귀했다.     



그는 암투병의 시간을 보내며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고 한다. 첫째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타인의 인정이나 이후의 행복이 아닌 진정한 나의 행복을 기준으로 살기로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경청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수술 환자로 있을 때 두려움에 떠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의료진들에게 섭섭한 기분이 들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기자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건성으로 대한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그의 강연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 역시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인간임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그는 병의 재발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지만 이것이 자기 삶을 좀먹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투병기간에도 글을 썼고 지금도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거나 어떤 힘든 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도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어보세요. 그 순간 고통을 잊을 수 있고 그 글이 이후 힘든 상황에서의 자신을 일으키고 위안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그 시절의 기록이 이후의 삶에 오만해지지 않고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신기하게도 일면식도 없던 그의 말이 그 어떤 것에도 꿈적 않던 내 맘을 일으켰다. 아프니까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프니까 글을 쓰라는 그의 말에 힘을 얻었다. 일단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지금의 마음을 한 줄이라도 쓰자!” 그렇게 시작된 글이 이렇게 꿈틀꿈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하얀 여백을 메워가고 있다.       



아파보니 삶의 유한함을 절감하게 된다. 언제 찾아오게 될지 모르는 불청객 앞에 억울하지 않으려면 그 누구의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닌, 혹은 언젠가 미래의 시간이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살아야겠다. “지금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그 행복한 고민들을 시작하니 배가 고프다. 날이 밝으면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진지하게 행복한 고민을 해보아야 겠다.      



아프니까 쓴다

쓰니 한걸음 나아간다. 

한 사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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