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베드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용기

by 나모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 하루하루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평범한 어부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예수의 많은 제자 중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제자 베드로에 대해서는 유럽 여행길에 베드로 성당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성경의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했고, 평범한 어부였던 사람의 삶이 급변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했던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물고기 잡는 장면과 관련된 일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자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베드로의 순교는 워낙 유명하여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로마 베드로 성당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누가복음 5장 4절-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장 1절-11절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 예수가 나타나 지시하는 대로 하자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이야기인데, 누가복음의 서술과 요한복음의 서술은 시점과 내용이 꽤 다르다. 누가복음은 베드로가 예수의 공생애 초기 처음 만날 때의 시점이고 요한복음의 서술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하여 나타난 시점이고 서술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성경의 기록은 저자에 따라 서술방식이 다르고 내용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같은 사건을 보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라고 해도 각자의 해석이 다르고, 시간이 흘러 이후의 사람들이 기록에 참여했다면 그들의 목적에 따라 내용의 가감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다양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행간을 읽으며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읽어온 성경을 종합해볼 때 베드로에 대해 거의 일맥상통하게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어부였고, 예수를 만나 고기 잡은 일을 그만두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지 않고 다 이해할 수 없고 보았다 해도 그의 내면에 일어난 일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수를 만나고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존재적 변화이다. 그는 내면의 어떤 변화로 인해 물고기 잡는 일을 버리고, 예수처럼 살고 싶은 결단을 하게 된다.


2. 그는 허물 투성이다.


성격은 급했고, 지적인 배경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제자에 속했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유명한 고백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될 때 자신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3.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으나 부활을 목격하고 완전히 변화된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이전과 다른 변화를 경험하고 이전과 다른 능력을 갖게 되어 온갖 난관을 뚫고 예수의 소식을 전하고, 실제 초자연적 능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베드로는 죽음을 불사하고 복음을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기록의 진위는 누가 판단하나? 세부적인 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과거의 모든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의 삶이 변했다는 점이다. 그저 평범한 어부였으나, 예수를 만나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방황을 하나 결국 어느 시점에 완전한 변화와 함께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베드로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온 시간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행복과 소위 말하는 성공에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높이 올라도,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베드로가 너무 궁금하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 이유가.


베드로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했고,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빈손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면목이 없어질 곤란을 겪었다. 몸이 아프면 치료를 위해 걱정했고, 장모가 열이 나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다투기도 했을 것이고, 동료 어부가 물고기를 많이 잡으면 질투도 했을 것이다. 생계 걱정 없이 부유하게 살아 아이들 시집, 장가 잘 보내고 호위 호식하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물고기를 많이 잡아 판 돈으로 자기 소유의 배 한 척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너무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기 앞이다. 그 과정과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를 요구하는 어떤 신호가 올 때, 직시하고 물러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베드로 역시 뒤로 물러나 그냥 물고기 잡으러 갈 수도 있었다. 아마 기록되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소리에 물러나지 않고 자기를 만나려고 했다. 그것이 베드로의 위대성이다. 용기와 결단 그것으로 인해 그는 무엇인가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성경은 유대지방, 특정 종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통찰을 준다. 무엇이 우리를 변하게 하는가?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오늘도 나는 얕은 물에서 그저 조개 몇 개 주운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물을 내리는 베드로를 닮고 싶다. 베드로처럼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이 보인다. 깊은 곳으로....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함께 깊은 곳으로 가보자고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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