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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30. 2022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숨 쉴 틈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로 출산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출산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고통의 깊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등의 표현으로 경험자들은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에 출산을 돕는 라마즈 호흡법 등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 경우에 그 호흡조차 먹히지 않는 극단의 순간에 의사에게 자연분만 대신 마취제를 써서 하는 유도분만을 청했지만 의사는 내 청을 들어주지 않고 좀 더 기다리게 했다. 당연히 자연분만이 산모에게나 태아에게나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극도의 고통의 순간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고통이 쉬는 순간이 있었다. 태아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순간이 오는지는 모르지만 그 잠시의 정적의 순간에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아주 잠시 사르르 잠이 들기도 하고 한숨을 돌린다. 그러기를 몇 차례 후에 기다리던 아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으앙하며 나온다.   

   

극도의 고통의 순간이기에 이 잠시의 쉴틈이 오아시스 같았고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어디선가 구원의 생수 같은 물을 마실 기회가 있다.    

 





거친 세상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포악해지는 것 같고 나 역시 원래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삶이 거칠 때 나 역시 쌈닭처럼 되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상대적이니까 살아내기 위해 내가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나 역시 무장을 하고 전투태세에 돌입하기도 했다.

   

눈뜨고 코베이는 세상이라는 말처럼,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기를 당할 수 있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호구가 되어 턱없이 물건을 비싸게 사게 되기도 한다. 친절한 설명은 없고, 내가 찾아내어야 하는 각박한 경우도 많다. 인건비는 비싸져서 물건을 사고도 제품에 이상이 생겨 AS를 요청하면 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보상으로 상당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적어도 돈을 지불하면 그나마 친절을 살 수 있다. 돈이 없다면, 무시당하기 일쑤이고 사람대접도 못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살기가 참 힘들어졌다.

      

에어컨 실외기를 외벽에 설치하고 물이 떨어지는 호스가 바깥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는데 그게 아래층 집의 실외기에 떨어져서인지 우리가 에어컨을 사용하면 아래쪽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에어컨 기사를 불렀다. 실외기 작업은 높은 층일수록 위험하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기사님이 호스를 연결하여 아래쪽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주셨다. 게다 실외기와 벽 사이에 있던 비어있는 둥지를 제거해주셨다. 이것은 우리 손이 닿지 않아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줄 뿐 아니라, 출장비, 재료비도 받지 않으셨다. 간혹 턱없이 많은 요금을 청구하는 분들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이런 분을 만나면 출산 때의 그 숨 쉴 틈이 생각이 난다. 팍팍한 세상인 것 같지만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이 된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한 자락 위로를 받았다. 아직 세상은 살 만 하구나. 에어컨 기사로 처리해야 할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친절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다시 한시적이지만 일을 하게 되었다. 오래 놓았던 일이라 서툴고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생겨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누구도 친절하게 가르져 주지 않는다. 직장 생태가 그렇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각 개인의 업무가 너무 많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처리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하나하나 물어가며 하려고 하니 시간은 너무 많이 걸리고, 계속 일 진행은 되지 않아 매일 늦은 퇴근은 고정이다. 학교에서 업무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나이스 업무이다. 교과목뿐 아니라 학생의 모든 기록이 되는 채널이다. 나이스 인증을 받고 제대로 사용하기까지 꽤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이런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처음에 무척 애를 먹고 교육청에까지 직접 전화를 몇 차례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때 나이스 업무 담당하시는 한 분을 잊을 수가 없다. 기계적인 답변, 자기 말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사람들과 달리 우선 내 고충을 이해하고 하나하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차근차근 풀어주셨다. 정말 오아시스 같았다. 이 역시 숨실 틈의 순간이었다. 아! 아직 세상은 살만 하구나.      


이렇듯,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순간에 구원의 손이 내밀어지듯, 잠깐 식의 숨 쉴 틈은 내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여전히 세상은 험난하다.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 내가 숨을 쉴 수 있었다. 구원의 생수는 예배당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만난다. 생수를 마시고 힘이 나면 자연스럽게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그가 숨을 쉴 수 있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수의 힘이다.       






당신도 숨쉴틈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어떨 때 숨 쉴 틈을 발견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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