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아서일까? 현대시대를 살고 있어서일까? 문득 요즘 사소한 일상의 사건 속에 만나는 거친 행동과 말을 떠올리며 이유를 탐색해보게 되었다.
주차장 입구에 두 대 가량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좁은 감이 있지만 잘 주차하면 가능하다. 두 곳이 다 비어져있어 오른쪽에 붙여 주차를 했다. 조금 있다 다른 차가 왼쪽에 주차를 하려는데 잘 안되는지 전후진을 몇 번해서 뭔가 문제가 있나 보다 해서 나도 차 안에 대기를 했다. 창문을 내려 상황을 보려고 하니 그쪽에서 창문을 내리고 대뜸 “아니 그렇게 차를 대면 내가 차를 못 대잖아요!” 소리를 지른다. 나는 바로 차를 후진해서 다시 좀 더 벽 쪽으로 붙여 주차를 했다. 주차공간이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어 어디서나 주차로 인한 사건사고가 많아지고 있고 그만큼 이로 인한 갈등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많아지고 있다.
자주 있는 일이다. 함께 사는 곳이니 불편이 생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사납게 이야기할 일일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친절하게 알려주면 바로 고칠 수 있는 상황이고 서로 불쾌하지 않을 텐데 오는 말이 사납게 들릴 때가 많다. 자주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다짜고짜 거칠게 표현하고, 상대를 윽박지르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가 좁아 주차가 안되는데 차를 조금 더 벽에 붙여 주차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 그렇군요. 바로 붙일게요.”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이런 말 대신에 거친 말이 나올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미 현대인은 많은 경우에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해 있다. 뭐 옛날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았겠나 마는 문명이 발전하는 것과 비례로 사람들은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화가 나고 분노가 쌓인 사람들은 어떤 불편한 상황에서 거친 반응이 나온다. 어른만 그런 게 아니고 아이들도 젊은이들도 그렇다. 그러다 툭 건드리면 잘못하다 큰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다.
이런 거침은 어린아이들에게서는 여과 없이 원색적으로 드러난다. 10대 아이들을 보면,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좋아한다. 욕을 하고, 상대의 신체를 해치는 식으로 공격을 한다. 그러다 어른이 될수록 공격성은 양상이 다르게 진화한다. 더 지능적이 될수록 거침은 다른 가면을 쓰고 그 실체를 숨기고 있다 더 극악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마음에 화를 쌓아두고 있으면 에너지 질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그 화라는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어디선가 표출된다. 화를 처리하지 않으면 더 큰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그 화를 처리할 방법을 모르거나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약자일 경우가 많다. 화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화를 자기 안에 가두어두었다가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화풀이를 할 대상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말이 거칠게 나오는 사람은 어디엔가 숨어있던 화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화를 처리할 것인가? 상대에게 표현하여 상황을 바꾸는 방법과, 상황과 상관없이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과 화가 나는 상황을 피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것이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나 행동에 괜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상대와 상관없이 내 안에 있던 화와 분노를 자극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는 말이다. (심리학적인 고찰이 필요한 영역이기도하다.) 삶이 팍팍할수록 점점 여유가 없어지고 궁지에 몰리다 어떤 자극에 거친 반응이 나오기 쉬운 것을 자주 목격하며, 마음에 화를 쌓아두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화를 내는 상대에 대해서도 그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한다면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친 시대. 우리 속에 화가 숨어 지내는 시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궁지에 몰리고 힘들게 하는 걸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함께 보듬고 살아가야할 우리가 너무 지쳐있는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