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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Aug 08. 2022

들으세요, 제발!

들음. 소리의 출발  

     

들으세요, 제발! 


어쩌다 인연을 맺은 바이올린은 여전히 가까이 가기엔 너무 멀리 있는 존재이다. 기쁨과 함께 절망을 안겨다 주는 악기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내게 늘 하는 말씀이 ‘들으세요!’이다.   

   

들으라구요? 제가 이렇게 듣고 있는데요? 악기마다 특징이 있다. 피아노는 건반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음계에 해당하는 건반을 누르면 되지만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는 분명한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초보 연주자들은 처음에 악기를 배울 때 도움을 위해 음계의 경계선에 테이프를 붙여 연습을 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기본기가 닦이면 테이프를 떼고 온전히 소리를 듣고 음의 자리를 찾아낸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맞는 것 같은데 음은 자꾸 딴 소리를 낸다. 음계뿐 아니라 음의 속도, 질량, 느낌 등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초집중하며 듣고 듣고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는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듣는 게 아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적당히 그 자리를 집고 내가 원하는 음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지, 다시 말해서 주관적인 수준에 머물렀지, 객관적으로 전혀 정확한 음이 아니고 정확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연습을 하는 과정에도 기계적인 움직임, 분량 채우기에 급급했지 진짜 소리와 거리가 멀었던 셈이었다.  

    

듣지 못하면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듣는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단지 악기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듣지 않으면 그 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진정한 화답을 할 수 없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건강한 관계라 할 수 없다. 엇박자이며, 부조화이다. 불행히도 너무나 많은 경우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주 예리하게 청각을 발달시킨 한 시인의 고백 앞에 멈추어본다. 

         

나는 오랫동안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를 내 속으로 불어넣고... 소리들이 나를 위해 
기여하게 할 것이다.      
나는 새들의 활기찬 소리를 듣는다.. 자라나는 밀의 버석거리는 소리, 
불꽃의 소문... 내 식사를 준비하며 주걱들이 부딪치는 소리.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사랑하는 소리, 
나는 모든 소리들을 그것들이 사용되는 순간에 듣는다.. 
도시의 소리들, 소리로부터 나오는 소리들.. 낮과 밤의 소리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젊은이의 소리.. 생선장수, 과일장수.. 
식사하는 노동자들의 커다란 웃음, 
어긋난 우정의 노기 띤 저음.. 아픈 사람의 가녀린 어조, 
책상에 손을 붙인 판사, 사형 선도를 내리를 그의 덜리는 입술,
부두에서 짐을 내리는 하역 인부가 가슴 부풀려 내는 소리... 
닻 올리는 선원의 후렴 소리,
자명종 울리는 소리.. 불이야 하는 소리.. 빠르게 나아가는 기계의 윙윙 소리, 
경고 종과 색깔 등을 단 호스 운반차의 붕붕 소리, 
기적 소리.. 다가오는 객차의 단단한 바퀴 소리, 
군중의 앞머리에서 밤중에 이어지는 느릿한 행진곡,
그들은 어떤 사체를 호위하며 간다.. 깃발의 꼭대기에는 
검은 모슬린이 걸려 있다.   
나는 첼로 소리나 사람의 진심 어린 불평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음계를 맞춘 코넷 소리나 일몰의 메아리를 듣는다.   
나는 합창을 듣는다.. 그것은 장엄한 오페라.. 이것이 진정 음악이다!   
천지 창조처럼 드넓고 신선한 테너가 나를 가득 채운다. 
그 입의 둥근 굴곡음이 내 안 가득 쏟아지면 차오른다.      
나는 숙달된 소프라노를 듣는다.. 그녀는 절정에 달한 내 사랑의 속박처럼 
나를 몸부림치게 한다....


월트 휘트먼 <풀잎> 중 






그래서 이제, 나는 듣는다      


잠을 깨우는 새소리 

시계 알람 소리 

먹이 기다리는 양이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아침을 알리는 욕실의 샤워소리 

멀리 들리는 자동차 소리 

윙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 

바이올린 현에서 울리는 소리 

사각사각 연필 지나가는 소리 

살랑살랑 나뭇잎 흔드는 바람 소리 

출근길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 

눈웃음치는 너의 소리 

땡볕 아래 지친 행인의 침묵의 소리 

폐점 소식 전하는 안내문의 소리 

턱없이 오른 장바구니 물가에 위축된 주부의 소리 

퇴근길 아빠의 초인종 누르는 소리 

게임 앞에 넋을 잃은 아이의 소리

도마 위에 딱딱 야채 써는 소리 

달그락달그락 냄비 부딪히는 소리 

 


지는 해의 소리 

졸졸 시냇물 소리 

반가운 소나기 소리 

컴퓨터 자판과 함께 피어나는 나의 소리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너의 소리 

이모티콘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소리           


소리들은 소리친다

내 목소리를 들어줘 

내 목소리를 들어줘                


 




   

소리들을 놓치고 사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미안합니다.     

오늘은 그 무엇보다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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