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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Oct 19. 2022

찬란한 괴성

너희들의 심장은 힘차게 요동치고 있구나  / 십대에게 보내는 편지 6

   

운 좋게 비켜가나 했던 코로나에 덜컥 발목이 잡혀 호흡기 증상으로 꽤 고생을 하다 격리병원에 입원을 하고 퇴원한 게 3주 전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기간에 덧붙여 며칠간의 병가를 얻어 꽤 오래 비워두었던 내 일터로 복귀한 지 2주 만에 야외 체험활동을 하게 되었다. 에000 놀이공원.       


코로나 격리기간 동안 제대로 야외 체험을 하지 못한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흥분되었다. 마음대로 함께 먹지도, 함께 놀지도 못한 3여 년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인지 이제는 야외활동도 허락되었고 밖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된다. 말똥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 시기의 아이들은 드넓은 공간에서 뛰놀고 싶다. 똑같이 생긴 답답한 교복을 벗어던지고 맘껏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을 수 있고, 맘 맞는 친구끼리 모둠이 되어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고, 스릴을 만끽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녹이며, 동화 속 캐릭터를 그려낸 인형을 손안에 더듬으며 동화 속 느낌에 빠져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모르는 곳을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아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다니는 것이 익숙해져 버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한 아이, 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아이, 중요한 순간에 연락이 안 되어 여러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 방향이 다른 쪽의 버스를 타 한참이나 늦게 도착해 담임교사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아이.. 그야말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이다. 그 아이들이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고 귀가할 때까지 책임은 고스란히 인솔교사에게 있다. 하여 교사들은 학교를 떠난 현장이 더 조심스럽다.    

  

회복기에 있으나 몸 상태가 예전과 달리 조심스러웠기에 더 긴장된 날이었다. 그래도 에000 놀이공원으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일찍 출발한 탓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나도 일찍 도착한 셈이었는데 꼬불꼬불 언덕길의 짙은 안개를 뚫고 도심에서 벗어난 외지의 한적함을 기대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진작에 도착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학생들과 방문객들로 입구는 그동안 보기 힘든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벌써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접선장소에서 만나 티켓을 배부하고 살짝 늦어지는 아이들까지 무사히 전원 도착하여 입장하니 휴, 안도의 한숨! 인파에 묻혀 어느새 나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고 계속 입장하는 인파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이 제 갈 길로 다 흩어지고 나면 쾌적한 공기, 맑은 하늘 아래 산책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게 되었다. 꼼짝없이 입구 벤치 쪽에 앉아 인파가 한적해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기만 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수학여행으로 온 곳이 서울이었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남쪽으로 가지만 부산에서는 가장 먼 곳, 가장 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곳이 서울이었다. 서울의 여러 방문지, 숙소, 교통수단 등과 관련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유독 놀이공원에서 청룡열차를 탔던 기억만 강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에 부산에는 청룡열차 같은 기구 시설이 없었기에 다들 서울에 오면 꼭 타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스르르 올라가다 그 높은 허공에서 돌연 아래로 추락한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괴성을 지르다 다시 비상할 때의 숨 막힘을 지나 다른 각도로의 추락에 연신 터져 나오는 근원에서 올라오는 듯한 비상한 소리들. 무서운데 짜릿한 이해할 수 없는  쾌감이 좋아 줄을 다시 서서 타기를 몇 번 반복했던가? 아쉽게도 지금은 돈을 줄 테니 타라고 해도 더 이상 탈 수 없는 심장이 되었다. 버킷리스트에조차 넣기 두려운 종목이다. 나의 몸은 나의 심장은 세월과 함께 쪼그라들고 약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곳. 이전보다 더 어마 무시해진 놀이기구에도 수많은 젊은이, 학생들, 어린이들의 심장은 튼튼하고 거뜬한 담력을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변한 게 없다.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내 관점에서 보는 세상은 내 심장처럼 쪼그라들어 정지되어 있는 듯했는데, 더 이상 놀이공원은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찬란하게 황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심장은 쪼그라들고 있지만 끊임없이 생명들은 태어나고 심장들은 움직이고 성장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돌연 나의 눈에 비치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 징그럽게 많은 인파 때문에 일어나던 짜증을 덮고 일순간 저 많은 튼튼한 심장들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강한 생명력, 삶의 에너지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이곳 놀이공원은. 쿵쾅쿵쾅!      


학교에 등교할 때 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낯선 버스를 타고, 혹은 각자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먼 곳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손을 떠나 모둠별로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 식사를 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지시에 따라 정해진 곳으로 종례시간에 모이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스러워진 의젓함을 보았다. 종례 후에도 야간 이벤트에 참여하려 남아 시간을 보내고 각자 판단 하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믿음직스러웠다. 노파심이 무색할 정도로.  

 

  




너희들은 더 큰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아이들이구나. 너희들의 심장은 힘차게 요동치고 있구나! 너무 긴 줄 때문에 기구를 많이 타지 못해 서운하고, 많이 걸어 다리가 아프고, 친구와 의견이 달라 속상하기도 하지만, 넓은 세상의 풍경을 구경하고, 색다른 스릴을 느끼고, 원하는 기구를 타기 위해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같이 간 친구들과 의견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너희들은 지금도 한 뼘 자라고 있구나.  

     

학년부장은 그야말로 전체의 어머니다. 준비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총대를 쥐었으니, 그야말로 온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이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학급의 일은 담임교사가 처리하나 전체를 총괄하는 사람은 더 큰 무게를 진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귀가했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미션 클리어!      

 

어릴 때는 그저 생각 없이 놀기만 했던 그 작은 활동이지만, 어른이 되어 보니 그 작은 활동을 위해 얼마나 많은 손들이 움직이고 애쓰는지가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의 손의 도움으로 지내었고, 지금의 아이들은 또 그들의 어른들의 도움으로 지내고 있다. 또 그들이 어른이 되면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돌 볼 것이다.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간다.    

   

하루의 수용인원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너무 많은 인파를 허용하는 공원 측에는 화가 났다. 수입도 중요하겠지만 입장한 사람들이 조금은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도록 고객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태도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내가 놀이공원을 따로 만들 처지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멋쩍기도 하지만...  

    

동화나라 에0랜드! 비록 상술 때문에 씁쓸한 구석도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 청룡열차의 기억을 강하게 갖고 있듯, 너희들은 오늘의 어떤 기억들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평생을 살 것이다. 사노라면 지치고, 쪼그라들기 일쑤이지만, 맘껏 하늘을 치솟고 추락하며 다시 치솟을 때의 하늘을 찌르는 괴성. 그 에너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 에너지가 지금까지 저 밑에서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래,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아. 꼭 기억하렴. 너희들의 찬란한 괴성을. 꺅 ~~~~    


  




두 달 여 만에 다시 브런치에 인사를 합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았습니다. 내가 산다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입니다. 일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디디고 있습니다. 다시 삼키고 먹고 말하고 움직입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다시 글도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지금 이 순간입니다. 당신, 안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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