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여 년 만에 열리는 체육대회라 교사들도 낯선 기분과 긴장감이 있었다. 나야 오랜 공백 후의 교사생활이라 낯선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두말할 나위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것 투성이.
일탈은 즐거워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두 기립해 있는 풍경을 본 지 얼마만인가? 그 낯선 풍경이 이제 조금씩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3학년도 2학년도 처음 맞이하는 중학교 체육대회. 아이들은 각각 반의 특성을 드러내는 반티를 주문해서 입었다. 어떻게 저런 옷을 입을까 싶은데 꿀벌, 경찰복, 교련복, 태권도복, 검도복, 농부 복장 같은 특이한 복장에 심지어는 병원의 환자복, 죄수복까지 단체티로 등장한다. 그나마 우리 반은 하키복으로 아주 기괴하지도 않고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적절한 선을 유지했다. 요즘 아이들의 풍속도는 바로 이런 옷을 선택하는데서 볼 수 있었다. 등교할 때 바로 반티를 입고 오는데 아이들은 이런 특이한 복장을 입고 등교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가 보다. 자신의 개성을 맘껏 뽐내고 평소에 해보지 못하는 일탈의 쾌감을 경험하는 듯하다.
진화된 체육대회
폐회식에서 교감선생님은 30여 년 교직생활 중 가장 세련된 체육대회를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세련된 체육대회! 맞다. 아주 오랜 전의 만국기가 휘날리고 콩주머니로 박을 터뜨려 피날레를 장식하던 그때의 추억도 좋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맞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해 진행하는 체육대회는 세련되었다.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을까 하는 생각에 준비하는 손길들이 고마웠다.
단체 줄넘기는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연습을 하여 줄을 서서 넘기를 쏜살같이 한다. 그러다 누군가 줄에 걸리면 템포가 느려진다. 담임교사와 함께하는 사제동행 공 튀기기는 10명이 한 조가 되어 줄을 잡아당겨 공을 많이 튀기는 경기인데 서로의 전략과 호흡이 요구된다. 미션 이어 달리기, 4인 오각 등 새로운 경기 외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줄다리기, 그리고 체육대회의 꽃 이어달리기는 빠질 수가 없다. 학생이 너무 많아 두 개 학년만 체육대회에 참석했는데도 30개 학급이다. 어린아이들이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크게 질서를 흩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하게 대회가 마무리되고 뒷정리까지 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진화된 느낌을 받았다.
너무 다른 아이들
교실에서는 그저 자기 책상에 다소곳이 앉아 있어 아이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하루 종일 야외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접하니 아이들의 면면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수업시간에 졸기만 하는 아이였는데 이어달리기에서 전력을 다해 뛰는 얼굴 모습은 분명 달라 보였다. 체육대회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응원석 의자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도 있다. 자신이 참여하는 종목이 없어 심심해하는 아이도 있고, 이런 분위기가 낯설어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참여 자체를 독려함에도 많은 경우에 적극적인 참여를 꺼려 선수를 선정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연습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고 반 친구에게 핀잔을 듣고 속상해하는 아이도 있다. 반 응원도구를 만들자는 제안에 선뜻 자원하여 시간을 내어 만들어오는 수고를 하는 아이도 있다. 책임을 부여해도 일을 이행하지 않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을 찾아 하는 아이도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다를까?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이어달리기 중에 우리 반 한 학생의 행동이었다. 간만의 차이로 등수가 판가름되는 계주 경기. 각조에서 1등만 결승에 진출할 수 있기에 놓칠 수 없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달리게 된다. 그런데 아뿔싸! 다른 반 친구와 부딪혀 상대 아이가 넘어졌다. 찰나가 중요한 하필 이때 우리 반 주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넘어진 아이의 안전을 살피고 일으켜 준다. 와 무슨 이런 일이... 순간 우리의 속도가 늦어지는데 하는 안타까움을 밀어내고 존경과 감탄이 인다. 모두가 한 아이의 특별한 행동을 목격했다. 덕분에 우리 팀은 응원상을 받았다. 3등 안에 들지 못해 위로로 부여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의 미덕이 큰 점수를 보탠 것 같다. 저런 아이로 세상이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참 살만할 것 같다.
점심식사 후 댄스 타임. 전교생이 둥그렇게 운동장을 원 모양으로 늘어서고 한가운데서 5-7명의 댄스동아리 친구들이 대담한 춤 솜씨를 보인다. 중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른스러운 춤 동작이라 소화하기 힘들었을텐데 꽤 긴 시간의 춤을 익히느라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 하는 생각에 존경심이 들기까지 한다. 이전 같으면 공영방송에서도 규제하는 선정적인 춤이라고 했을 춤들이 요즘은 일상적으로 매체를 통해 방영된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동작을 따라 하는데 서슴 없다. 과하다 싶은 것이 지금은 일상적으로 보이는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 여하튼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저리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마당 축제를 기원하며
큰 행사가 끝났다. 거리두기 동안 익숙해진 생활패턴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에 유아들의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이 늘었다고 한다. 거리두기 상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사회성이 떨어지기도 하다고 한다. 어디 유아만 그렇겠나? 나이를 불문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특히 청소년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주 오랜만의 확 트인 야외에서의 활동이 불편했을 아이도 있을 것이다. 집에서 조용히 영화나 보고 싶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내내 구석에서 혼자 멍하고 있거나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저 시기에 필요한 단체행사임에는 틀림없다.
잃어버린 광장, 잃어버린 놀이터, 잃어버린 운동장을 다시 회복하고 다시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 축제가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의 축제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시대가 바뀌었고 시대와 함께 아이들도 많이 바뀌었다. 체육대회의 운영기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의 성격이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아쉬웠는데 모처럼의 야외 행사가 아이들의 위축된 몸과 맘을 펼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야외에서 질서 가운데 있어야 해서 힘들 수도 있었지만 질서 안에 있으면서 행사를 즐기는 모습도 고마웠다. 완벽한 행사는 없지만, 많은 준비하는 손들에 의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맑은 가을날의 체육축제가 완성되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운동장에서 함께 움직였다.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참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