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글
글을 쓰고 싶다. 브런치작가들의 그동안 올라온 글들을 역주행으로 하나하나 읽고 있다. 미안하지만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정말 읽고 싶은 글들에만 머물게 된다.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기에 체력을 아껴야 한다.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듯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몸이 아프면서 마음도 아프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 흔들림 속에서 도저히 펜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몸이 안녕해지니 마음이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두서없이 이것저것 쏟아내고 싶어졌다.
브런치북 공모가 있었고 젊은 작가들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씁쓸하게도 내가 없어도 세상은 끄떡없이 돌아간다. 불변의 진리 앞에 나는 더 왜소해진다. 한동안 두 손이 꽁꽁 묶여 있었던 나는 빈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은 쓸쓸함이 스며든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시작한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무슨 글을? 고작 하루도 못 버티고 사라질 수 있는 하루살이일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없어졌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모든 걸 다 알려고 할 필요도 없지만 알 수도 없다. 다 알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다 설명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내가 숨 쉬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므로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으므로, 다시 말해 환경과 마음이 만났으므로 글을 쓸 뿐이다. 부디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따질 여력도 없다. 그저 쏟아내고 싶다. 당분간은. 그러다 힘이 좀 생기면 좋은 글에 대해 좋은 편집에 대해 좋은 책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겠지.
내가 멈춰있는 동안 세상은 멈출까? 내가 움직이는 동안 세상은 움직일까? 어떤 사람은 ‘존재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인식하지 않는 것은 있어도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인식 속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그렇다면 내가 멈춰 있었다면 세상도 멈춰있었고 내가 움직이니 세상도 움직인다. 내가 멈추면 달도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달도 따라 걷는 어린 시절의 그 경험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눌러두었던 포즈기능을 해제하니 멈춰있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글을 쓰고 있고 출판도 한다. 멈춰있었는 계절도 다시 열심히 순환의 작업을 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나라마다 온갖 소식들로 가득하다. 여전히 전쟁 중이고, 여전히 갈등 중이고, 여전히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이 보이므로 존재한다. 그것을 보지 못했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브런치도 다시 등장한다. 내 시야에서 사라졌던 브런치도 그냥 책장을 열면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처럼 어느 날 내게 왁자지껄 말을 걸어온다. 글을 쓰고 싶어 졌으니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다이다. 이유도 계획도 없다.
내 속에 있는 언어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세상을 향해. 어떤 메아리가 온다면 들을 것이다. 메아리가 오지 않는다면 메아리를 희망하며 기다릴 것이다.
아! 타는 목마름으로 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