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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un 18. 2021

두통과 파랑새

파랑새는 지금 여기


근육성 두통이라는 불청객


아주 센 두통이 왔다. 가끔씩 다양한 이유로 두통이 오면 몸을 쉬게 하거나 진통제를 먹으면 서서히 가라앉던 때 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몇 일간의 진통제 복용에도 통증은 계속되어 결국 일상을 다 내려놓게 되었다. 덜컥 겁이나 병원에 갔다. 종합병원에서 두통은 신경과 진료라는데  예약이 8월까지 차있었다. 예약만 해놓고 급한 대로 동네 내과에 들렀다.


증상을 설명해 주실래요? 의사가 내게 물어보았다. 

아프기만 해서 이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표현할 말을 찾고 있는 데 의사가 돕는다.

가령 고무줄 같은 걸로 어떤 부위를 단단하게 칭칭 매어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라든가, 망치로 팡팡 두드리는 느낌이라든가 이런 식으로요


언어화할 생각을 못했는데 의사의 도움으로 내 통증을 언어화 하기 시작했다. 통증은 국소적이지 않고 전방위적이었다. 여기저기 주로 목 뒤쪽이 가장 심했다. 목을 가누기 힘을 정도였으니 뭔가 잡아당기는 느끼는 것 같은 것이 어쩌면 근사한 표현인 것 같다. 아. 뒷골이 당긴다 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다. 몸에 별 관심 없이 아프면 빨리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약을 먹고 낫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픈지, 어디가 얼마나 자주 통증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두통은 혈관성 두통과 근육성 두통(혹은 긴장성 두통)으로 나눌 수 있는 데 처방하는 약이 다르기 때문에 통증의 양상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주로 편두통은 혈관성 두통이고 나처럼 잡아당기는 듯한  두통은 근육성 두통이란다. 즉 근육의 긴장에 따른 통증인 셈이다. 뭔가 단단히 긴장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니, 몇 달 전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하니 바로 어깨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한의원 가서 부황을 뜬 경험이 있다. 이미 이번 통증이 나타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일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과하게 긴장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런 긴장은 살면서 많이 겪어왔는데 왜 지금은 이런 처음 겪어보는 두통을 경험할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내 몸이 이런 긴장을 버틸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약 처방 그리고 휴식과 편안한 음식 섭취라는 지시를 받고 며칠을 열일 제쳐놓고 두통과 지냈다.


두통의 위력, 일상을 뒤덮다


두통이 생기기 바로 전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카잔차키스의 고백을 읊조리지 않았던가! 어떻게 단 하루 사이에 상황이 이리도 바뀔 수 있는가? 나는 꼼짝없이 두통의 노예가 되었고 두려워하고 있었고 두통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잠시나마 카잔차키스도 부럽지 않다던 자신감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아.. 카잔차키스.. 난 너의 발 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어…


약을 먹으면 잠시 완화되는 듯하다 다시 아파오고 밤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진행되는 통증으로 잠을 설치기를 반복하며 나는 어둠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기쁨의 에너지로 거의 매일 발행하던 글도 쓸 수 없었고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무형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두통이라는 불청객이 보여준 파랑새


그러다 병원 약을 복용한 지 며칠 지나서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언제 다시 통증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나는 새삼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게 되었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다는 것,  고양이와 놀아줄 수 있는 것,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것 등등 별일 아닌 모든 평범한 동작들을 할 수 있음이 기적처럼 감사했다. 일상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구나. 


그런데 단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새 그 감격을 잊고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주 순식간이었다. 원래 내가 살던 대로 다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거의 습관적인 걱정을 다시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때 제대로 한방 훅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천국은 항상 여기 아닌 저기 있었어.

이렇게 산다면 영원히 천국을 경험할 수 없어.

이렇게 산다면 항상 만족할 수 없어.


두통보다 더 세게 제대로 한방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나는 파랑새를 멀리서 찾고 있었다. 두통이 있을 때는 두통이 없는 그곳이 파랑새였고, 두통이 없어질 때는 또 다른 더 나은 상황이 파랑새였다. 두통과 상관없이 지금 여기가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 파랑새를 내가 끊임없이 멀리서 찾고 있구나. 파랑새는 여기 있는데. 그저 지금 나의 이 현실 이 곳이 행복의 자리인데….


파랑새는 지금 여기


통증은 다시 왔고 아팠고 그러다 지금은 다시 잠잠하다. 그 틈을 타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 내일 일을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통증과 상관없이 지금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정의 중요성을 보았다. 아쉽게도, 섬광 같았던 그 인식의 순간을 말로 옮기니 이렇게 밋밋할 수가...  


아,,,,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감사한 것이구나. 기적이구나. 행복이구나. 물론 통증이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만약 다시 온다면 그때 대응방법을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냥 이 대로가 사실은 천국이다.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얼마나 웃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두통이 가져다준 선물을 멋진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주 심심한 말을 해야겠다. 


아.. 감사하다.

살아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PS : 글을 좀 더 다듬고 멋지게 만들고 싶으나 며칠 방문하지 못한 브런치를 얼른 노크하고 싶어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내 품에서 떠나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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