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간절해진 말과 글 앞에서
난해하기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라깡은 ‘언어는 미끄러진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여기서 미끄러진다의 뜻은 언어가 실체를 실체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다의 의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언어가 사과 그 실체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던지게 되는 질문,
언어는 얼마나 부정확한가? 언어는 얼마나 우리에게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표현되는 말과 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느낀 최근의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코로나 확진이 되어 심한 인후통을 겪었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며 목의 통증은 물론이고 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졌다. 음식을 넘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물 한 모금 넘기는데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서서히 유성음이 무성음으로 되더니 결국에는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격리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없었으니 외부 세상과의 소통은 오로지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의 문자였다.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집 안에서도 내 방에 격리되어 있어 필요한 사항을 문자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문자로 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지 점점 목을 조여 오는 것처럼 나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결국 증상이 너무 심해져 병원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기로 하고 119를 불렀다. 상황은 급박한데 보건소와 119와의 소통을 하고 병원에 이송되는 과정에서 말을 할 수 없는 내가 가족과의 문자교신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화가 나는대도 소리를 지를 수 없어 결국 나는 미친 듯이 방문을 손으로 꽝꽝 두드렸다.
맞다. 미친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그때 체감하며 동시에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는 표현이 섬광처럼 스쳤다. 이런 거구나... 소통이 되지 않을 때의 기분이....
병원 입원 중에도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어 불편했던 내용은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한다. 다행히 치료를 받아 조금씩 목소리가 나와 일상으로 돌아온 후 나는 새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의 고마움을 그야말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 때문에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다면, 예컨대, 주로 정치적인 이유, 제도적 이유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제한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의 답답함이나 고통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글은 자기 자신이다. 말과 글로 나를 드러내고 상대의 표현에 반응한다. 그러니 말과 글이 막혀버리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상대와 소통을 할 수 없다. 표현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으면 관계가 흐르지 않으면 그런 삶은 삶이 아니다. 물론 언어를 통한 말과 글 외의 다양한 표현도 있다.
이쯤에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말과 글은 중요하다. 아니 본질적이다. 언어의 한 분야를 전공하고 또 그것으로 밥 먹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새삼 중요한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는지, 제대로 표현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듣고 있는지도 질문해본다. 그러나 다시 라깡으로 돌아가 미끄러진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본다.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토록 중요하고 본질적인 말이 과연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가?
유창하고 세련된 말보다는 때에 맞는, 진심 어린, 나를 그대로 투영하는 말을 하고 싶다. 라깡의 말을 빌어 다시 질문 앞에 선다.
말이 미끄러지고 있는가?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11월의 주제는 < 언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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