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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Dec 25. 2022

크리스마스에 생각하는 과학과 신화

  

과학은 사실인가?     

 

지구가 평평하여 수평선 저 너머로 나아가면 추락할 것이라고 여겼던 예전의 진리가 진리가 아님을 지금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다. 과학적인 신념들이 하나 둘 깨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목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청벽력 같은 발언, 갈릴레이의 주장 등은 사회의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고 심지어는 죽음조차 불사해야 했다. 그 격동을 지나 하나의 가설은 진실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 태양계의 행성 즉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도는 별들의 순서를 외웠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그런데 어느 순간 명왕성은 사라졌다. 과학적인 사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닌 것을 목격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무한한 우주의 질서를 벗겨내는 과정에서 어제의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새로운 진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합리적이라고 하는 과학조차 절대진리가 되지 않는다. 연구하며 하나씩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과학은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신화는 거짓인가?      


여러 가지 신화가 있다. 각 지역별로 대표성을 띄는 신화 말이다. 우리로 치면 단군신화가 그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신화가 있다. 뭘 제대로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그 신화가 진짜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로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려고 마늘과 쑥을 먹는다고? 곰이 사람이 되어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제우스라는 대체 불가능한 신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고? 사람과 동물이 어찌어찌해서 자식을 낳고 그 괴물이 횡포를 부리고 온갖 신들이 세력 다툼을 하고 사랑싸움을 하고 그게 신이라고?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저 꾸며낸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한편으로 안심했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신화는 거짓말이야. 사실이 아니야.   

   

크리스마스는 유대지역에 태어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석가, 마호메트, 공자와 함께 세계 4대 성인聖人 중 한 사람의 탄생일이다. 하필 유대지역의 성인의 생일이 온 세상의 축일이 되기까지 배경엔 아마 서구 문명의 세력의 크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인도문명의 세력이 가장 강력했다면 어쩌면 온 세상 사람들이 석가의 탄생을 세계적인 축일로 여겼을 것이다. (전적인 나 혼자의 뇌피셜이다.) 여하튼 한해의 끝 부분에 기념하는 축일과 새해로 넘어가는 과정의 분위기와 맞물리며 세계적인 기념일이 되고 만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누추한 마구간에 태어났고 그것도 호적 조사를 위해 자기가 살던 나사렛을 떠나 유대로 이동하는 여행길 중에 태어났다. 그저 그의 존재를 알아본 사람은 낯선 페르시아 지역의 천문학자들과 들판에서 양을 모는 양치기였다. 게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의 엄마 마리아는 남편 될 요셉과 결혼도 하기 전에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였음에도 아기를 잉태했다. 말이 되는가? 그렇다. 성경에도 말이 안 되는 그러니까 과학이라는 합리성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넘쳐난다. 예수를 신앙하는 종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매 예배 때마다 기억하며 초자연적인 신비 앞에 고개를 숙인다.      


과학과 신화사이      


과학이 거짓일 수 있다면 신화는 진실일 수 있을까? 진실이라고 믿었던 과학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다면 거짓이라고 여겼던 신화가 진실일 수 있을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를 메타포라고 이야기한다. “신화는 메타포이지요. 메타포가 거짓은 아닙니다.”      


메타포가 무엇인가? 은유이다. 예를 들면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할 때 내 마음은 물리적으로 호수는 아니지만 호수가 지니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신화를 메타포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곰이 마늘을 먹으며 오랜 시간을 견디어 사람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문자로 해석하기보다 그 속뜻을 들여다보면 견딜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의 인내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창조를 이끌어낸다는 뜻으로 읽힌다. 

      

남자를 모르는 여자가 아이를 잉태했다. 예수는 살면서 여러 가지로 그의 인간을 넘어서는 면모를 보였다.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어둠의 세상에 낮은 자리에 태어난 한 생명이 세상에게 빛을 이야기했고 소망이 되었다. 이게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보다 그 메타포로 접근해간다면 어떨까?      


메리 크리스마스 


교황 프란치스코는 “ 성탄은 당신이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혼으로 들어오게 결심하는 날입니다. ”라고 했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신성한 어떤 것이 우리 영혼에 들어올 수 있도록 결심하는 날이 성탄일이라면 이 사실은 종교를 너머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 그리고 내 안에서 신비로운 힘이 작용하도록 결심하는 것. 매일매일이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산타가 없어도 말이다. 화려한 선물이 없어도 말이다.      


I wish you all a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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