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 프린세스로 부터의 탈피

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법

by 나모다


세상은 늘 변하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시대의 변화는 위협적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아예 집안에 콕 박혀 있다면 뭐 아쉬운 게 없겠지만 세상과 접촉하려면 이전의 방식과 달라진 세상의 풍속도에 자주 당황스럽게 된다. 코로나 상황과 맞물리며 생활 풍속도는 비대면이 익숙해졌고 AI의 등장은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 없게 만들고 있다. 매일 접하는 동네의 풍경에서도 체감한다. 무인점포가 많아지고 커피조차 기계가 파는 커피봇이 생겼고 식당에서는 서빙하는 로봇이 돌아다닌다. 시대의 변화이니 살아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씁쓸하다. 은행에 문의하기 위해 전화라도 하려 하면 바로 자동시스템으로 전환되어 연결하느라 애먹을 때도 있다.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왜 자꾸 물어보세요?

급히 우편물을 보낼 일이 있어 편의점에 들렀다. 요즘 편의점의 기능이 다양해져서 우편물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필요하다면 이전에 익숙한 방법으로 우체국을 이용하곤 했다. 마침 연휴라 우체국은 운영이 안되니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우편물을 들고 택배신청이 되냐고 물었다. 연휴라 일반택배 안된다는 단호한 대답이었다. 순간 편의점에서 맡기고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방법이 아닌 일반택배 그러니까 원하는 주소지에 배달이 되는 것을 이 편의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어 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재차 물었다.

“일반 택배라는 건 원하는 주소지에 배달되는 것을 말하는 거지요? 여기가 안되면 혹시 다른 편의점에서는 가능한가요? ”

점원은 살짝 귀찮다는 듯 “다른 편의점 사정은 잘 몰라요.” 매장을 휘 둘러보니 택배처리하는 코너가 있다. 가까이 가보니 일반택배중지 라고 되어 있고 이유는 연휴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일반택배가 보통 때는 되고 지금은 연휴라 안된다는 거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연휴가 끝나는 다음 날 0시 이후부터 가능하다는 거지요? ”

“글쎄요. 거기 적혀 있는 대로예요. 저는 잘 몰라요. 근데 왜 자꾸 물어보시는 거예요? 했던 말 또 하고”

뭐야. 나 지금 면박당한 거야? 살짝 기분이 상한다. 처음이라 확인차 질문한 게 무슨 죄라고 저리 역정을 내나? 여기선 뭘 물어보다간 큰 일 날 것 같다. 여하튼 택배를 보내려면 연휴가 끝나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알겠습니다"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런데 자꾸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뱅글뱅글 떠돌아다닌다.


“왜 자꾸 물어보세요? ”

아주 젊은 층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젊은 연령의 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어보는 게 뭐가 잘못이라고 톡 쏘는 그의 태도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이 상황에 대해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한 마디로 내가 민첩하지 못하여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 셈이다. 연배가 한참 있으신 분들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뭐지? 내가 노년이 되어가고 있는 건가? 편의점 택배가 처음인 나로서는 당연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다 제대로 대응해 주지 않는 직원에게서 덜컥 차단기가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서워서 뭘 물어보기나 하겠나?"

아날로그 세대를 위한 변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아날로그에 익숙하던 세대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젊은 사람들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판에 중년, 노년들의 어려움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전화대응대신 ARS응답으로 처리되고 은행이나 영업매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창구가 없어지고 기계나 온라인으로 바뀌는 것은 흔한 일상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세상과의 연결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인터넷 기반이 대세이다 보니 아날로그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 즉 중년, 노년층은 삶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익숙했던 것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기에 순발력이 떨어지는 세대들은 세상의 변화가 공포스럽다.

나 역시 젊은 날에 노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답답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한테도 자주 들었던 말이다. “엄마 왜 같은 말 자꾸 하세요? 엄마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잖아요! ”


젊은이는 어른 세대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른 세대들은 이해받지 못할 때 섭섭해진다. 그런데 젊은이 역시 나이가 든다. 언젠가 노년이 되면 그 역시 그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세대 차이라는 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인가?

젊은 날의 속도와 순발력을 가질 수 없는 연령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이 되니 젊은 날 어른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미안해진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알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서 다가오는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속도가 느린 자들의 질문에 조금 더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서 끝나면 나는 영락없는 꼰대가 된다. 그럼 젊은이들의 입장은 어떤가?


젊은이들을 위한 변명


친구 모임에서 한 친구가 흥미로운 영상을 본 이야기를 했다. 요지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했다. "요즘 어떠 신가요? " 즉, "How are you?" 질문이다. 친구가 본 영상은 영어권의 나라이다. 장년이나 노년들은 '만족한다', '편하다', '아쉽다', '슬프다', '외롭다' 등등 다양한 답이 나왔다. 그런데 20,30대 젊은 층들의 대답은 이구동성 같은 대답이었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힘들어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도 그런가 보다. 한참 피어나고 기운 왕성하여 희망에 가득 찰 시기일 것 같은데 왜 힘든가? 아마 이건 전 세계적인 트렌드인가 보다. 너무 바쁘게 변화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젊은이조차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쉽게 말해서 내 코가 석자인 셈이다. 베이비 부머들은 그럭저럭 노동으로 일해서 먹고 살만큼의 재력을 키울 수 있었다. 집도 장만하고 자식들 교육도 시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젊은이들이 미래를 낙관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여유가 없다. 일터에서만 해도 인력을 많이 쓰지 않으니 일손부족으로 격무에 시달리기도 하고 바쁜 시간에 느린 속도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년, 노년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대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변명


그러니 젊은이들 탓만 할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른세대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총체적으로 모두 이 상황이 낯설고 처음이다. 코로나도 그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정황들이 말이다. 정부가 잘해주기를, 세계정세가 좀 나아지기를, 전쟁이 좀 그쳐 주기를, 아귀다툼 같은 무한경쟁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역사가 존재한 그때부터 계속된 염원일 것이다. 게다 인터넷 기반으로 온 세상이 연결되고 데이터화되는 새로운 질서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당황스럽다.


컴퓨터와 관련한 일을 해야 할 때 나 역시 자주 아이들을 의존했다.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고를 하기보다 그냥 슬쩍 부탁을 해버리기도 했다. 아이패드로 ppt 작업을 하는 것에 관해 도움을 청했더니 딸아이가 직접 도와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아이패드 ppt 잘 몰라 검색해서 알아보고 알려드리는 거예요. 엄마도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고 하세요. 자꾸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핑거 프린세스되는 거예요."


핑거 프린세스(finger princess)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직접 찾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디지털이 낯선 아날로그 세대가 이런 경향이 짙다. 아! 그렇구나. 물어보기 전에 직접 찾아보아야 하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핑거 프린세스였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주변의 친구들도 보면 그런 경향성을 많이 보인다. 이제 아날로그 세대는 더 이상 핑거 프린세스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찾아보고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도움을 위한 사회적인 방안도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특히 노인계층의 소외는 점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세대 역시 자신들의 힘겨움 속에 있지만 어른 세대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힘들지만 함께 껴안고 슬기롭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면 빨리 이 디지털 기반의 내용들을 배워 적어도 젊은 세대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보기 전에 직접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딸, 아들! 이제 웬만한 건 엄마가 스스로 찾아보고 해결할게! "


그래도 스스로 찾아 하기 힘든 계층들이 있다. 동병상련인지라 제일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다. 디지털에 취약한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연휴가 끝나고 나는 당당히 편의점에 들어가 찬찬히 설명에 따라 스스로 직원에게 물어보지 않고 택배 보내기를 완수했다. 낯선 처음의 문턱을 넘어서면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을.


편의점.jfif 편의점 무인택배



이봐요 젊은이!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하기 위해 노력할게.

그래도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들 땐 좀 도와주시게. 하하.

미안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