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와의 이별을 보류하며
어쩌다 양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 셋도 키우기 벅찼던 나는 한동안 길에서 아주 어린 아기를 만나도 고개를 돌려 외면할 정도로 육아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해서 반려동물은 전혀 반갑지 않은 입장이다. 그런 내가 양이를 키우고 있다. 전혀 내 의지 아니었다. 딸아이가 키우다가 ‘엄마 잠시만 맡아줘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놓고 간 양이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와는 아주 다른 특성을 가진 양이는 깔끔한 편이며 손이 덜 간다. 매일 산책을 시키지 않아도 되고 주인에게 매달리지 않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거할 수 있다. 먹이와 배변만 해결되면 그다지 힘들지 않게 지낼 수 있다. 그래서 이어진 시간이 5년이 넘어가고 있다.
‘고양이를 키울 환경이 되면 바로 데려갈게요.’라고 말하던 아이는 그 이후로 고양이에 관해서는 무소식이다. 그가 지내고 있는 작은 오피스텔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겠나? 내가 떠안아야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피부에 발진이 생겨 곤란을 겪었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피부과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한 결과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 털이 많이 빠져 집 전체에 털이 날리니 건강에도 집 관리에도 비상 신호가 울렸다. 잘 때도 데리고 자던 고양이를 분리시켰고 어디든 누워있거나 앉아 있으면 살며시 몸 위에 올라타 앉던 고양이를 밀어내야 했다. 털제거돌돌이를 늘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다. 부드러운 천만 보면 물어뜯어서 망가진 옷과 스카프만 해도 셀 수가 없다. 옷장문을 꼭 닫아두고 집안에 고양이의 표적이 될 만한 물건은 치워두어야 하는 신경을 늘 써야 한다. 우리 집 소파와 식탁의자는 고양이의 발톱을 긁는 스크래쳐가 되어 당분간 소파와 식탁의자를 다시 사는 건 포기했다. 고양이 모래를 매일 청소하고 물을 갈아주고 털을 제거하고 하는 등의 사사로운 손길이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그래 이제는 안 되겠어. 헤어져야겠어. 몇 번을 고민하다 결국 아이에게 말했다.
“양이 이제는 안 되겠어. 네가 키울 사정이 안되면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분양시키자. ”
“미안한 일이지만 너의 행복을 위해서도 다른 곳에 가는 게 좋겠어. 너를 더 예뻐해 주고 네가 가까이 가서 기댈 수 있고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주인에게로 가는 게 좋겠어. 네 빈자리가 크겠지만 어쩔 수 없구나. ”
한동안 나의 건강 악화로 양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굳게 헤어질 결심을 했고 아이에게 내 결심을 전했고 아이는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친구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양이가 아프다. 늘 배고프다고 야옹거리며 잘 먹는 녀석인데 요 며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그야말로 꼼짝 않고 엎드려있다. 무슨 일인가? 덜컹 걱정이 된다. 양이가 아프다 하니 딸아이가 당장 집으로 왔다. 그때 알았다. 양이는 그냥 양이가 아니라 딸아이의 아이 같은 존재라는 걸. 그러니까 내게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손주 같은 양이인 셈이다. 케이지에 조심스레 양이를 넣어 병원으로 향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받아 집에 왔다. 검사결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며칠 경과를 보기로 했다. 그동안 먹던 사료와는 다른 입맛 돋우는 냄새 솔솔 나는 고양이음식에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넣어서 먹게 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친다면 아주 강력한 맛을 내는 음식 (예컨대 라면 같은...)인 셈이다. 며칠 먹지 않고 꼼짝 않던 녀석이 어찌 된 영문인지 음식을 조금씩 맛을 보더니 다 먹어치운다. 우리는 모두 양이가 음식을 먹고 이전처럼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며 한 숨을 돌렸다. "다행이다. 뭔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네... " 이 모습은 영락없이 손자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노심초사하는 엄마, 할머니의 모습이다. 양이가 상전이 되고 말았다.
사람 키우기도 바쁜데 동물을 키우느라 시간과 돈을 쓰고 마음을 졸이고 병원까지 꼬박꼬박 다니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그 일을 내가 하고 있었다. 게다 동물병원은 보험도 되지 않아 검사 치료비가 상당한 액수가 나왔다. 허걱! 동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안 되겠어. 양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건 일단 보류하자.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는 집에서 돌보아야겠다. "
몸이 아픈데 다른 환경에 가면 양이가 받게 될 스트레스가 어마하게 클 것 같다. 도저히 그건 안 되겠다 싶다. 처음으로 아픈 양이를 경험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양이도 나이가 들어갈 텐데 아프다가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이 올 텐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동물 키우기를 함부로 쉽게 생각하고 키우기 시작하면 절대 안 되겠다. “더 헤어지기 힘들기 전에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데 딸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아이들은 동물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함에 틀림없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심드렁하던 아이들이 양이 아픈 소식에는 즉각 반응이다. 동물이지만 내리사랑은 본능인 듯하다.
일단 보류라고 말했지만 내 깊은 마음속에는 어쩌면 떠나보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정들기 전에 빨리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못 보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헤어지기로 한 양이가 걱정이 된다. 양이에게나 집사에게나 가장 행복한 길은 무엇일지 고민이 된다.
나는 헤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