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죽자

< 더 글로리> 단상

by 나모다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라 보기 불편한데 제목은 <더 글로리>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glory의 뜻은 다음과 같다.

glory
1. 영광, 영예
2. (하느님에 대한) 찬양[영광]
3. 찬란한 아름다움, 장관


찬란한 아름다움이라니! 전반에 걸쳐 어두운 톤으로 진행되고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배우도 꾸미지 않고 무채색의 옷으로만 출연하는데 찬란한 아름다움이라니! 불편하고 어두운 시리즈 영화 <더 글로리>는 시즌1을 발표함으로 장안의 화제를 뿌렸고 시즌2를 기다리는 목마름을 허락했다. 고등학교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주인공 문동은의 18년간의 기다림 끝의 복수극. 어둡고 아프고 괴로운 장면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즌2를 마지막 회까지 완주하면서 비로소 제목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죽지 않고 사는 이유


용서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암묵적 분위기에 반항하듯 가족,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소녀는 스스로 복수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집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스로 처벌을 내린다. 대부분의 복수의 결말이 주는 교훈은 이미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제시되어 왔기에 이 시리즈물은 기존의 교훈과 어떻게 차별화 될 지 그 결말이 궁금했다.


시즌1에서 존재감이 약했던 남주 주여정의 존재는 시즌2에서 확실하게 부각되고 이 시리즈물 제목의 이유가 된다. 자신의 복수극이 종료됨과 동시에 스스로 존재를 중단하려는 동은이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주여정이다. 주여정은 눈앞에서 사이코 환자에게 살해를 당한 병원장이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살인자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분노의 감정으로 괴로워한다. 동은과 여정은 피해를 당한 자로서의 공감을 갖고 서로에 대한 동지의식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깊은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동은의 복수극에 여정이 망나니가 되기로 자처하였듯, 여정의 복수극에 동은은 자신이 망나니가 되기로 하며 새로운 삶의 장 속으로 들어간다.

주여정의 지옥인 강영찬이 수감된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죄수들을 수감하는 교도소로 의무관과 독서상담가로서의 일자리를 얻어 지옥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맑은 하늘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육중한 교도소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가자 쾅하며 문이 닫히고 어둠이 내려앉는다.


죄를 지은 자를 처단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을 꺼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생각나는 시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브레히트가 자신의 연인 루트 베를라우에게 바친 시라고 알려져 있다. 비록 상대는 자신을 필요로 할지언정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시인은 상대를 위해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며 자기 삶을 지켜야 할 필요를 생각한다.

문동은은 주여정을 위해 자신의 삶을 지키기로 한다. 무서운 전투장일지도 모르는 교도소 문 앞에서 둘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사랑고백을 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 진부한 사랑이다.


봄에 죽자

동은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돌파구를 찾지 못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그때 옆에서 자신처럼 몸을 물속에 밀어 넣는 여인을 발견하며 건져낸다. 죽기로 결심했던 두 여자가 부둥켜안으면 운다.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 그렇게 살아난 두 사람은 이후에 건물주와 세입자로 만난다. 집을 떠나며 동은은 주인할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18번의 봄이 지났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그리고 봄에 죽자던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라는 걸요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무겁고 불편하고 아픈 현실을 영화로 대면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아픈걸 맞닥뜨리기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두운 영화를 피하고 싶다. 괴롭힘의 대가들의 욕지거리와 발악하는 장면들, 잔인한 장면들은 완화해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묵직하고 따뜻한 울림을 준다.

아픔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력이 어디 있는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진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때문에 졸면서 보았다. 그래서 놓친 부분이 많다. 어두워서 개인 취향상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의 끝 부분은 이 시대의 동은들에게 주는 한줄기 서광을 제시하기에 따뜻하다. 금방 영화를 보고 가장 강력하게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동은, 여정 외에도 다루고 싶은 인물들이 많으나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시대의 모든 동은에게 전하는

아픈, 따뜻한 편지

봄에 죽자

작가 및 작품제작에 참여한 모든 분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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