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길 앞에서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오르막길 앞에서 험난한 여정을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놓지 말기를 염원하는 아름다운 이 노래를 나는 요즘 즐겨 듣게 된다.
멋진 풍경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고
어딘가 저 목표를 향해
아니면 그저 진행해야 하므로 흘러가는 길 위에
멈출 수 없으나 길은 오르막일 때
호흡은 가빠오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때로 앞사람이 내밀어주는 손을 잡거나
뒤에서 밀어주는 힘에 기대어
늘 하는 거짓말인 다 왔어라는 말에 밀려
한 발자국을 띄게 된다.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
다시 내려가고 싶지만 다시 내려가기엔 너무 많이 올라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냥 가는 것 만이 답일때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려본다.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을 수 없을 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은 없을 때
방법은 단 하나 그저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가지 못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조대에 실려오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혀 내려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저 내가 의지할 것은 내 두 다리 밖에 없다.
친구를 만나 내 일상을 이야기하는 중에
"출산을 할 때 여러 번 의사에게 부탁했어. 무통분만을 위한 마취주사를 놓아달라고. 그런데 의사는 꼼짝도 않더군. 의사를 포함해 여러 사람을 원망하다 결국 나는 그 고통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 놀라운 건 그 과정에 아주 잠깐씩 숨 쉴 틈이 있었다는 거야. 아주 잠깐 통증이 잦아드는 시간 나는 깜빡깜빡 잠이 들었어. 그 사이클을 반복하다 마침내 통증은 아이와 함께 내 몸을 쑥 빠져나오더군. "
"네가 지내는 게 출산의 고통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거니? "
"그런가 봐. 쉽지 않아. 정말 하루하루 살아. "
나의 학교 이야기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면 좋겠지만 현실 속의 학교 풍경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전쟁 같은 3월이라는 표현 속에 리얼한 풍경이 다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세대의 간격은 깊고 어쩌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種끼리 동거하고 있다. 같은 나라 말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소통은 되지 않는다. 기호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즐겨 보는 영화도 다르다. 재미를 중시하며 본능 위주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와 책임과 의무를 중시하며 살아온 나이 든 세대와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전적으로 다르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귀를 닫고 마음을 닫는다. 보기에 좋아야 하고 듣기에 경쾌해야 하고 뭔가 시각적인 청각적인 자극을 원한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한다. 개인의 존중이라는 면에서는 극도로 향상되었지만 함께의 의미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나는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소통이 되리라 기대하고 노력했다. 잘 안된다. 웃음기 빼고 한 걸음을 디뎌야 하는 오르막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헉헉거리며 이 길을 걷고 있다. 현기증이 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계속 움직이는 트레드밀에서 걷지 않으면 다치는 것처럼 바닥은 계속 움직이고 있어 계속 가야 한다. 결국 기계를 중지시키고 뛰어내릴 것인가? 호흡과 속도를 찾아 요령껏 달릴 것인가?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목이 칼칼하고 굳어진 얼굴을 하고 몇 시간을 보낸 하루의 피곤함이 진하게 내려온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뒷정리를 하고 환기를 위해 잠시 창문을 열어놓고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집에 돌아와 발행을 위해 글을 만지고 있다. 몸은 감기기운으로 무거워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 예정인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 내일의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된다. 아득한 저 끝은 보지 않으며 말이다.
학기 초부터 아주 힘들어하시는 선생님이 오늘 더 이상 버티지 못하시고 조퇴를 하셨다. 가라앉은 슬픈 얼굴이 자꾸 마음에 자꾸 걸린다. 날씨는 흐리고 눅눅하고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르막길에 지친 그대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그러니 한 걸음만 내디뎌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