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숙소도 꽝이지만...
앤데믹이 선포되고 거리의 마스크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묶였던 욕구들이 풀려나면서 사람들은 시간이 나면 여행지로 몰려든다. 몇 년간 꽁꽁 묶어두었던 여행본능이 나라고 비켜갈 수 없어 꽤 자주 바깥나들이를 하게 된다. 다행이다.
1박 1.5일 코스로 거제를 다녀왔다.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고 다른 볼일에 끼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으로 거제바다를 보고 올 요량으로 남편의 계획에 동행했다. 패시브하우스 시공법에 대한 설명회참석이 주목적이었고 여행은 덤이었지만, 내게는 오히려 반대였다. 서울에서 4시간 넘는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수고, 그 길에서의 피로감을 감내하기로 한 더 큰 이유는 거제 바다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거제바다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숙소도 음식도 꽝이었다. 그저 덤으로서 만족해야 했다.
얼마 전 어묵탕이 만원이라는 내용이 여러 언론에서 기사화되는 것을 보았다. 일본 유튜버가 한국의 지역 축제에 참여했다가 만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음식 값이 비싸다는 것을 방송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방문객이 많이 찾는 축제나 여행지 같은 곳은 오히려 음식이 비싼 것도 문제이지만 상인들의 장사 속 때문에 바가지로 상징화되는 값싼 서비스는 늘 아쉬움의 대상이었다. 거제까지 내려왔으니 해산물을 먹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소라가 제철이라 소라회를 먹고 싶었다. 통영시장에 들러 소라 파는 매장으로 향했다. 뿔소라 말고 맛이 좋다는 참소라를 1kg 구매했다. 인근 식당에서 삶아준다고 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소라만 먹기는 부족할 듯하여 멍게비빔밥도 겸하여 시켰다. 소라 자체도 싼 값이 아닌데 (서울에서 배송해서 먹는 것과 비교하면) 삶아주는 값, 상을 차려주는 값을 합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건 그들의 기계적인 태도였다. 친절과는 거리가 먼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매상을 올려주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소라는 항상 비싼 해산물로 여겨져 충분히 먹지 못하고 겨우 몇 점 정도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소라로 배부르게 먹기는 처음이었다. 날 것으로 먹기엔 부담스러워 쪄서 먹었는데 그래도 많이 먹으니 비릿함이 올라온다. 지친 몸에 불친절한 상인들의 태도 그리고 바가지요금까지 합쳐 비릿함을 더했다. 제대로 대접받는 듯한 먹기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미리 알아봐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어쩌다 가게 된 거제였다. 딱히 여행일지를 쓸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글을 쓴다는 생각을 밀어낼 정도로 더 긴박한 갈망 때문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에 먹은 소라회 한 접시 밖에는 남아있는 사진이 없다.
연휴의 혼잡한 교통을 감안해서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설명회 시간에 맞게 도착했고, 그 이후의 시간을 잠시 바다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산달도를 한 바퀴 돌며 어촌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의외로 연휴에도 불구하고 인적은 드물었다. 눈에 뜨일만한 탁월한 풍광은 아니었다. 굴과 가리비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로 수확이 많이 되는 곳이어 띄엄띄엄 작업으로 분주한 사람들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섬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점심때 먹은 소라에 이어 비릿한 바다냄새가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숙소를 정하지 않고 현지에서 결정하고자 하는 낭만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운전은 남편이 했지만 긴 거리 차 안에 있어서인지, 체력의 고갈 때문인지,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설명회 이후 본 게임이 시작될 즈음 속이 울렁거려 도무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 숙소는 현지에서 바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으로 고르려 했는데 그만 드라이브 자체가 힘들어졌다. 빨리 어딘가 구해 피곤한 몸을 누이는 게 급선무였다. 오기 전에는 물량도 많고 가격도 합리적인 듯했는데 현지에 와보니 값싸게 나왔던 물량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터무니없이 가격은 치솟아 있었다. 여유 있게 생각했는데 급하게 찾으려니 가격대비 좋은 숙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묻고 따지지 않고 급하게 어디든 들어가야 했다. 우린 여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치 않은 변수 때문에 숙소는 미리 정해두고 오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시 쉬고 나니 메스꺼운 속이 진정되어 저녁을 먹으러 나갈 수 있었다. 중앙시장에서 사람이 가장 북적대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상하다. 주변에는 이미 문을 닫고 있는데 8시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이 꽉 찬 식당이 있었다. 분명히 유명한 음식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서성이며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야말로 식당 운영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다지 위생적이지도 않아 보였다. 내 비위로는 생선을 직접 손질해서 내는 장면을 감당한 재간이 없다. 손님은 몇십 명인데 주방에는 나이 지긋한 아낙 한 사람이 음식과 설거지를 동시에 하고 식당 서빙은 단 두 사람 그리고 입구에서 해산물 손질을 하는 아저씨 한 사람이 식당을 운영하는 모두였다. 살인적인 일에 식당 종업원들의 얼굴은 무표정이고 손님이 먹고 나간 식탁을 치울 겨를이 없이 계속 쏟아지는 주문에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전혀 반갑지 않은 눈치였다. 반기지도 않는, 그리고 깨끗해 보이지도 않는 식당에 무슨 확신으로 우리는 꿋꿋이 기다렸다 겨우 난 자리를 잡고 앉았을까? 테이블마다 매운탕 냄비가 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매운탕이 주 메뉴인 듯한데 우린 점심때 회를 배부르게 먹은 데다 어촌의 풍경과 함께 냄새에도 취해 더 이상 비릿한 생물에 대해서는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진동하는 냄새가 싫어 집에서 잘 안 해 먹는 생선구이를 시켰다. 아뿔싸! 식당에서나 가능한 구이가 아니라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기름에 튀긴 구이가 나온다. 급하게 내오느라 속은 익지 않아 다시 익혀 달라는 요구를 했다. 휴.. 이게 뭐람... 왜 이 식당에 사람이 들끓는지 알 수 없으면서 그때 문득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여기 경상도지. 지역을 구분하려는 생각은 없으나 내 경험상 경상도 식당에서 맛난 음식을 먹기는 쉽지 않았다는 기억이 소환되었다. 물론 이 지역에도 맛집이 있겠으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와 관련한 사전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아쉬운 저녁식사였다.
그 와중에 반찬 중에 멸치볶음이 가장 먹을 만했다. 뭔가 식감이 다르다. 그러고 보니 산달도를 돌다가 멸치를 직접 잡아 말려 파는 곳에서 본 청어새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맛이 다르다. 생긴 건 멸치인데 누르스름한 멸치와 달리 청어새끼는 푸르스름하다. 건어물 파는 곳에서도 은빛 황금빛의 멸치들이 싱싱해 집으로 갈 때 사가지고 갈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중에 푸르스름한 녀석들이 보여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청어새끼란다. 짐 느는 게 싫었지만 이건 현지에서나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봉지를 샀다. 사가지고 오면서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 그런데 청어새끼를 수확하는 건 불법 아닐까? ”
“ 멸치도 잡는데?”
“ 멸치는 종자가 다르잖아. 원래 그렇게 작은 물고기이고. 그런데 청어는 큰 상태로 먹는 건데 새끼를 저렇게 잡아도 될까? ”
“ 다른 물고기 잡다가 잡혔나? ”
사고 나서 찝찝하다.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잡아서는 안 되는 걸 일부러 잡은 건지, 어쩌다 그물에 딸려 올라온 녀석들인지, 그렇다면 풀어줘야 하는 건 아닌지, 한꺼번에 잡아 뭍 위로 올린 이후에 보니 청어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아보아야겠다.
여행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느끼는 아늑한 거제와 통영의 풍경을 보며 한 달 살이를 하러 오자고 했다. 여행이 방문의 주목적은 아니었고 즉흥성을 누리기로 한 여행시간이 바닥난 체력이라는 변수로 차질을 빚었지만 진짜 제대로 된 여행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거제로 내려오는 길로 방향을 틀자 풍경이 달라졌다. 남쪽 덕유산 자락의 산세에 취하며 다음엔 덕유산 국립공원도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대한 동경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끼어들었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마을은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평온함이 있었다.
휴일이었지만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남쪽 지역에 사는 일부 사람들이 나들이 나온 것이 고작이었다. 해마다 국제 음악회가 열리는 통영답게 음악당과 예술종합학교가 시의 품격을 더해준다. 통영군수로 있었던 이순신의 자취와 함께 한려해상공원의 수려함을 자랑한다. 이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꿀빵과 김밥,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 거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순신 장군의 해전. 한 달 집을 세내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휘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이 고을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싶어졌다.
하루를 사흘처럼 움직인 피곤한 몸이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점심까지 먹고 올라갈까 생각도 했지만, 교통체증도 걸렸고 음식이 썩 내키지 않았다. 별안간 서울에 가서 주꾸미를 먹자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 도착해서 먹은 주꾸미 정식이 이번 여행길에서 먹은 가장 맛난 음식이었다. 여행의 화룡점점을 서울에서 찍고 휴식을 취했다. 무리한 일정 탓에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쉬러 간 여행이 아니어서 멈추지 못한 여행길이어서 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멈추지 못해서 잘 보지 못했지만,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여행지는 그들에게는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여행지가 될 수 있듯이. 일상이든 여행지든 어디서든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닌 듯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휴게소 라면에서 안식을 경험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EX 라면. 왠 EX라면? 생각해 보니 Express 라면인 듯하다. 그러니까 고속도로 라면. 저녁의 술기운 때문인지 오래 차를 탄 탓의 울렁거림 때문인지 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선택한 라면. 웬 아침에 라면이냐고? 그런데 가장 흡족하게 먹었다. 내 속이 라면을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라면을 끓이고 서빙하는 직원의 보기 드문 친절함 때문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쉽다. 식당 직원들의 상업적인 태도가. 뜨내기 손님들 가득한 휴게소에서 만난 어느 직원의 보기 드문 미소는 사막에서의 생수 같았다. 오히려 서울 동네에서 먹는 주꾸미 정식이 더 맛났던 것도 음식을 파는 그들의 정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식도 숙소도 꽝인 실패한 여행에서 오히려 나를 살게 한 것은 사람이었다. 라면을 서빙하는 직원이 그랬고, 쭈꾸미 정식을 만드는 직원이 그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을 보았다. 오래 살 일이다.
20분쯤 나갔다 와도 되겠어?
뭐 먹고 싶어?
어디로 갈까?
저기 커피 판다.
내가 우유 사 올게.
멈추지 않았는데도 여행지에서는 새롭게 보이는 게 많다. 돌아오고 나서도 며칠 휘청거릴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들다. 오늘 아침 피곤할 때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입술에 튀어 올랐다. 그래도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음 여행을 생각한다. 이전에 속초에 갔다 찜해 둔 숙소의 예약을 위해 검색하는 나를 본다. 숙소는 미리 정하고 가야지. 다음의 여행지에서는 무엇을 볼까?
여행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