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과 영금정
여행이 진짜 인생의 시작점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해야 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삶의 현장에서라도 여행의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이 지칠수록 절박해졌다.
하루하루가 피폐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 왠지 여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하다. 먼 미래의 시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오래 살았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이곳은 숨이 막힌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여행이 필요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더더욱 여행이 필요했다. 숨통이 트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을 찾아냈고 만들어 냈다. 다른 것을 미루고 우선순위변동을 시키면 된다. 속초에 갔을 때 들렀던 설악산은 젊을 때 아이들 데리고 왔을 때, 그저 관광처럼 사람들 손에 이끌려 따라왔을 때 보았던 그 산이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안겨다 주는 그 무엇이 있었고 산은 계속 내게 손을 흔들어 오라고 한다. 마술피리에 이끌리듯, 산은 내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야겠어. 가야겠어.
전쟁 같은 하루하루, 정말 심호흡하며 한 걸음 한걸음 걷는 중에도 나는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내 속의 갈망을 따라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을 했고, 번갯불에 콩을 볶는 일상 속에서도 내 시간을 확보했다. 그래서 알았다. 바쁘기 때문에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것을.
지나가며 보았던 숙소는 첫눈에 느낌이 왔었고 그 직관은 틀리지 않다. 설악산 입구에 위치하여 산세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숙소는 그야말로 내 취향이었다. 호텔 내의 식당에서도, 숙소의 테라스에서도, 꼭대기의 카페에서도 신묘한 산은 순간순간 다른 느낌으로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발의 통증 때문에 많이 걸을 수는 없었으나 산 입구를 지나 즐비한 나무들 사이로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오랜 시간을 견뎌낸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휴일인 데다 앤데믹 상황이어 방문객은 많았고 심지어는 외국인 단체도 자주 눈에 띄었다. 강릉에서 세계합창대회에 참석한 체코의 합창단이 유독 눈에 띄었다. 산행로는 여러 개가 있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분산되어 점점 인적은 드물었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계곡이 많은 곳이어 물소리와 비치빛 계곡물의 영롱한 색깔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 게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선비처럼 앉아 있는 시간의 정적이란...
문득문득 등산복 차림의 제대로 장비를 갖춘 등산객들이 눈에 뜨인다. 대부분 건장한 남성들이었지만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여자분이 커다란 배낭을 지고 스틱을 손에 들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설악산에 혼자 올 수도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하나의 여행은 다음 여행의 물꼬를 계속 열어주는 묘미가 있다.
예약이 된 며칠 전부터 사실은 고민을 했다. 이번 여행을 취소할까 했다. 발의 통증이 심해 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취소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 되지만, 대체로 그러다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내 경험이다. 그래서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걷겠다는 생각으로 강행했다. 다행히 통증은 가라앉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숙소에서 출발할 때 남편이 배낭에 캠핑용 의자를 걸고 간다. 왜? 가다 불편하면 앉아서 쉬라는 깊은 배려.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앉을 수 있는 바위도 있고 의자도 있는데 굳이? 그래도 산에는 앉고 싶은데 앉을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남편의 생각이었다.
의자는 계곡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들어가 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침 의자를 펴서 발을 담그고 앉으니 신선神仙이 따로 없다. 아이처럼 물장구를 치며 선녀가 된 기분이었다. 의자를 챙겨 온 남편을 보며, 평소에 내게 무심하고 무뚝뚝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남편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여행을 왔기에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걷고 산을 내려왔다. 당연히 많은 코스를 지도로 보며 다음번에 가고 싶은 곳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좀 더 건강한 다리로 대청봉까지 올라가 보리라!
내려와서 들른 곳은 동명항 쪽의 영금정靈琴亭. 지금은 정자亭子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지형에 넓게 깔린 바위들에 파도가 부딪칠 때 신비한 거문고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지형이 파손되며 거문고 소리를 잃었다고 한다.
두 개의 정자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에서는 바다의 전경이 좀 더 넓게 조망되고 아래쪽의 해돋이 정자는 물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을 수 있다. 지금은 잃어버린 거문고 소리라고 하지만 왜 그런 이름이 붙였을지는 지금의 소리를 들어보면 추측이 간다. 직접 와서 들어보아야 한다. 밀물과 썰물 그리고 바위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전혀 한 순간도 같지 않다. 파도의 소리, 물결의 방향, 생김새 그리고 흐름을 보고 있으니 각각 다르게 생긴 바위들은 오는 물과 반응하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영금정을 찾은 많은 사람들로 꽤 시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압도한다. 소리의 강약이 있고 느낌도 다양하다. 물을 받은 바위는 그때그때 다르게 물을 뱉어내며 소리를 만들어낸다. 인간이 내는 오케스트라와는 비교할 수는 영험한 소리이다. 넋을 잃고 한참을 그 소리와 장면에 빠져 있었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다시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일상에 지쳐 쉬고 싶을 때면 꼭 와 보리라! 옛날 아주 한적했던 시기에 이 바다의 소리가 신비스러웠다는 게 상상이 갔다. 지금은 많은 인파에 묻혀서 잘 느낄 수 없지만 조용한 시간에 이 바다에 오면 그 신비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속초에서 가장 가보야 할 장소를 하나 추천하라면 서슴지 않고 영금정을 추천하리라.
내일 비 소식 때문에 이곳 바다는 흐리다. 역시 몽환적인 바다에 하나 둘 떠다니는 배와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의 움직임, 그리고 바다 중간에 떠 있는 등대들. 속초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한다. 휘몰아치는 물살을 보니 이순신 장군이 일본과의 해전에서 이용했다는 울돌목이 생각이 난다. 마치 그런 모습이다. 바위 바로 위에서 보는 물살의 모양은 회오리바람 같다.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은 그 이전에 지역의 물살과 지형을 꿰고 있었던 장군의 혜안에 다시금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다. 지형과 바다형세를 이용해 작은 수의 배로 일본을 대적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에 대해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한 것이 잘한 일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피곤을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다. 바쁜 도시에서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꼈다. 바쁘니까 여행을 했다. 잘했다. 산과 바다가 주는 소리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 여행을 생각하며 설레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게 좋다.
나는 바쁘니까 여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