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모다 Jul 31. 2023

무례할 권리

생존이 걱정되는 더위 한가운데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가 선포되었다. 지구가 끓고 있다(boiling)는 표현이 심각성을 제대로 나타낸다. 뉴스를 보는 게 불안한 지경이다. 아침부터도 거리에 나가 걷는 것이 힘겨워지고 있다. 이렇게 더울지 모르고 겁 없이 식사약속을 했다. 


과로의 누적이 방학과 더위와 함께 표출되어 땡볕을 잠깐이라도 걸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척에 있는 식당인데 택시를 타고 갔다.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모처럼 보는 얼굴이니 잠시 식사만 하고 올 생각이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약속장소를 잘못 알고 같은 이름의 다른 식당(프랜차이즈점)에 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차로 꽤 이동을 해야 하는 거리이다. 전화를 받던 친절한 친구는 ‘우리가 취소하고 그곳으로 갈게요’하고 전화를 끊는다. 일단 주문한 음식을 미안함과 함께 취소하고 일어섰다. 더워서 다른 교통수단은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불렀다.      


‘미안, 난 도저히 그곳까지 갈 자신이 없어. 몸 컨디션이 안 좋아. 너 혼자 가는 게 좋겠다. 나는 바로 집으로 갈게.’    

  

‘너한테 많이 배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우리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 대부분 우리가 그쪽에 맞춘다. 그런데 나는 대담한 무례를 범하고 있다.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나한테는 좋은데 상대방입장에서는 이기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자신이 불편해도 상대 쪽을 고려해서 불편함을 참는 것을 우리 문화에서는 예의라고 했다. 그걸 깼다. 당연히 불편하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전 같았으면 꾸역꾸역 끌려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나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그 친구한테도 할 말이 있긴 하다. 당연히 연장자에 대한 고려 그것이 모든 것을 앞서는 우선 조건이었던 친구는 나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내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무례를 범했다.    

   

집에 와서 쉬면서도 마음 한편은 불편했다. 그래도 억지로 모임 장소에 가서 몸과 맘이 불편한 것보다는 솔직하게 내 입장을 밝히고 내 몸을 살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있다 그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어떤가 해서 전화했어. 내가 약속장소를 잘못 알아서 미안해. '

    

불편할 일도 아니었다. 이해하면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니까. 그 어떤 것도 나의 생존보다 우선은 아닌 것 같다. 생존을 위협하는 더위다. 더위 때문에 나는 무례할 권리를 행사했다. 하루하루 지탱하기가 쉽지 않은 나날들이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아주 오랜 글귀와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하루이다.    


집에 도착한 친구한테서 톡이 왔다. 


집에 잘 도착했어. 

생존이 걱정되는 날씨네. 

건강 잘 챙겨   






작가의 이전글 바쁘니까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