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걱정되는 더위 한가운데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가 선포되었다. 지구가 끓고 있다(boiling)는 표현이 심각성을 제대로 나타낸다. 뉴스를 보는 게 불안한 지경이다. 아침부터도 거리에 나가 걷는 것이 힘겨워지고 있다. 이렇게 더울지 모르고 겁 없이 식사약속을 했다.
과로의 누적이 방학과 더위와 함께 표출되어 땡볕을 잠깐이라도 걸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척에 있는 식당인데 택시를 타고 갔다.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모처럼 보는 얼굴이니 잠시 식사만 하고 올 생각이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약속장소를 잘못 알고 같은 이름의 다른 식당(프랜차이즈점)에 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차로 꽤 이동을 해야 하는 거리이다. 전화를 받던 친절한 친구는 ‘우리가 취소하고 그곳으로 갈게요’하고 전화를 끊는다. 일단 주문한 음식을 미안함과 함께 취소하고 일어섰다. 더워서 다른 교통수단은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불렀다.
‘미안, 난 도저히 그곳까지 갈 자신이 없어. 몸 컨디션이 안 좋아. 너 혼자 가는 게 좋겠다. 나는 바로 집으로 갈게.’
‘너한테 많이 배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우리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 대부분 우리가 그쪽에 맞춘다. 그런데 나는 대담한 무례를 범하고 있다.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나한테는 좋은데 상대방입장에서는 이기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자신이 불편해도 상대 쪽을 고려해서 불편함을 참는 것을 우리 문화에서는 예의라고 했다. 그걸 깼다. 당연히 불편하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전 같았으면 꾸역꾸역 끌려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나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그 친구한테도 할 말이 있긴 하다. 당연히 연장자에 대한 고려 그것이 모든 것을 앞서는 우선 조건이었던 친구는 나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내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무례를 범했다.
집에 와서 쉬면서도 마음 한편은 불편했다. 그래도 억지로 모임 장소에 가서 몸과 맘이 불편한 것보다는 솔직하게 내 입장을 밝히고 내 몸을 살피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있다 그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어떤가 해서 전화했어. 내가 약속장소를 잘못 알아서 미안해. '
불편할 일도 아니었다. 이해하면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니까. 그 어떤 것도 나의 생존보다 우선은 아닌 것 같다. 생존을 위협하는 더위다. 더위 때문에 나는 무례할 권리를 행사했다. 하루하루 지탱하기가 쉽지 않은 나날들이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아주 오랜 글귀와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하루이다.
집에 도착한 친구한테서 톡이 왔다.
집에 잘 도착했어.
생존이 걱정되는 날씨네.
건강 잘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