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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y 05. 2023

여행 후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

멈추니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잠자리는 집이 더 편하고 익숙한 일상의 패턴이 더 안정감이 있다. 다시 말해서 여행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아무리 쉼을 위해 떠났더라도 불편함이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갈 필요는 있는가? 충분히 있다. 왜?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새로운 너  


    

강원도 속초로 떠나는 내내 남편은 라디오방송을 켜놓고 있다. 완전 나의 취향반대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경제, 사회, 정치 이야기에 이르며 남편의 견해를 들을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난 관심 없는데.... 아 큰일 났다. 두 시간 넘게 난 조용히 바깥 풍경을 즐기고 싶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이런 취향의 차이가 사소한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나처럼 결혼생활이 오래되고 보면 그러니까 산전수전 다 겪게 되고 나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까 내가 변하면 된다. 그저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또 진심으로 그의 견해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상당히 외골수로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암묵적인 이분법에 빠져 있었다. 그의 세상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가는 시간이 다이내믹해졌다. 꼼짝없이 일상을 탈피한 둘만의 공간에 있다 보니 가능해지는 새로운 관찰이다.    


  

실수해도 괜찮아      


INTJ는 치밀한 계획을 좋아하고 실수하는 것을 싫어한다. 여행에서도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하고, 맛집도 가장 잘하는 집에 가야 직성이 풀린다. 식당과 숙소를 다 남편에게 일임한 터이지만 못내 남편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식당을 정해놓고도 나한테 다시 검색해서 생각해 보라고 나한테 공을 자꾸 넘긴다.   

   

“여보, 난 다 괜찮아요. 꼭 맛집 아니어도 괜찮아요. 난 단지 바다만 보면 된다니까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놓여나기로 했어요. ”

“ 그래도 모처럼 여행지에 왔으면 맛난 것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첫 점심으로 먹은 명태회냉면은 내가 먹어본 냉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냉면 중의 하나였다. 명태회가 쫄깃하고 양념도 강하지 않으며 깊은 맛이 있어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싶을 정도로 맛나고 기분 좋은 음식이었다. 반면 고민하다 들른 대게요릿집은 소문과는 달리 친절도도 떨어지고 게살도 꽉 차 있지 않아 살짝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맛집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터라 충분히 행복했다. 탁월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무계획 속에서의 치열한 탐색      


계획 없이 떠났지만 현장에서 요구되는 탐색본능이 있다 둘째 날 아침에 제대로 된 해장국을 먹고 싶었다. 첫날 남편이나 나나 오후에 진한 커피를 마신 게 화근이었다. 커피때문에 잠을 설쳐 아침의 몸 상태가 영 아니었다. 뭔가 정신을 말갛게 더부룩한 속을 진정시킬 음식이 필요했다. 원래 편하게 숙소 바로 옆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 했지만 손님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맛이 보장되지 않는 식당에는 발길이 향하지 않는다. 꾸역꾸역 차를 타고 한 바퀴를 돌며 맛있을 것 같은 집을 찾아보았다. 간판을 보았을 때 꽤 맛있을 것 같은 해물탕집에 내렸는데 역시 손님도 없고 요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 모습에 직감적으로 여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프랜차이즈 점이었고 요리직원 두 명이나 근무시간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들어가는 입구부터 담배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떤 맛일지 왠지 알 것 같았다. 뭔가 엄마 손맛 같은 게 그리웠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이른 아침이지만 손님들이 있는 식당. 게다 섭국을 먹고 싶었던 남편의 기대메뉴가 있는 곳. 드디어 발견. 밑반찬이 나왔는데 글쎄 식당은 밑반찬을 먹어보면 대략 안다. 이 집이다 싶었다. 반찬을 더 부탁하자 “필요하시면 더 말씀하세요”. 친절하기까지 하다. 기분이 좋다. 홍합해장국.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 섭과 홍합의 차이는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 이곳에서 먹는 홍합의 식감이 쫄깃하고 국물은 속을 풀어줄 만큼 시원하였다. 무계획 속에 탐색을 부르는 본능이 가져다 준 기쁨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획일성에 실망하다 

      

대포항 어센터에는 회집이 많다. 싱싱한 생선을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들이 기다린다. 몇 년 전에 왔을 때의 낡은 가게들이 다 리모델링되어 산뜻한 가게로 변했다. 그런데 왜 식당, 가게들의 면면들이 비슷할까? 메뉴도 천편일률적이다. 거기가 거기다. 특별히 어떤 집을 선택해도 다를 바 없다. 그들끼리의 약속일까? 도시의 매너리즘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왔는데 관광지 역시 모방의 귀재들의 획일화된 작품들을 보는 기분이 씁쓸했다. 강원도 다른 어디선가 본 것과 다를 바 없는 바다 풍경, 상점들, 요리 메뉴들.... 뭔가 독보적인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음식점은 없을까? 여행지에서도 여전히 일상의 숙제를 만나게 된다      



현지를 돌면서 오고 싶고 추천하고 싶은 숙소를 발견하다  

   

물론 우리는 예약한 숙소에 묵었고, 이건 실패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지만 바꾸느라 검색하고 애쓰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고 웬만하면 용납하려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리저리 해변 주위를 돌아다녀 보니 바다가 보이는 색다른 숙소가 보인다. 이럴 때는 빨리 정보를 취득하는 게 좋다. 바로 전화를 걸어 비용과 제반 상황을 문의했다. 좋다. 다음에 동해바다를 보러 올 때 묵을 숙소는 여기. 숙소를 찾는 방법 중의 하나는 현지에서 결정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실망과 기대충족의 공존    

  

바다가 목적이었다. 처음 들른 바다는 꽝. 사람도 많았고, 어수선했고, 전혀 내가 기대하던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고 여느 놀이터 같은 풍광이었다. 도시는 몇 년 전의 그 모습과 달리 마치 홍콩에 와있는 듯 바다 주변으로 빽빽이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휴....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조금 한적한 바닷가로 움직였다. 내가 속초를 방문한 때 중에 가장 한적한 풍경이었다. 모래사장에 사람은 거의 없고, 갈매기조차 없다. 내일부터 시작될 폭우 때문인지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일기예보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아예 바다로 발길을 옮기지 않아서였을까? 흐린 하늘과 바다는 점점 경계가 없어지고 스산하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변한다. 목조건물로 된 카페 2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내 바다를 보다 참을 수가 없다. 맨발로 걷고 싶어. 번거롭지만 양말을 벗고 파도가 밀려들어오는 모래사장 가장자리를 걸었다. 발이 시리도록 물이 차가웠는데 정신이 쨍하고 든다. 보송보송 모래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꽤 걸었다.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이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여행지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쩌다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된다.    


  

손을 잡는 용기      


서울 도시에서는 남편과 손을 잡고 가는 게 쉽지 않다. 삶에 지쳐서이기도 하고, 눈을 의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긴 여행지. 저녁을 먹고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근처 대포항까지 걸었다. 나쁜 일기 예보 탓에 인적은 드물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한참을 걸었다. 젊은 연인처럼. 까만 밤에 우린 용기가 생겼다. 여행지라서 가능한 낭만.     

 


의외의 선물 산山    

  

속초가 왜 좋은지 이유를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되다. 비 소식에 오래 지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일찍 서울로 향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다른데 둘러봐?   

   

아무 계획 없어서 좋은 점은 바로 지금의 욕구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산책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바로 설악산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바다 때문에 오긴 했는데 갑자기 산이 궁금해졌다.     

 

여보, 설악산국립공원 쪽으로 그냥 드라이브만 하고 올라가는 거 어때요?      


그렇게 설악산 국립공원 쪽으로 향했다. 바다와 다른 산은 더 오묘했다. 게다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고 사람 또한 드물다. 이렇게 한적한 설악산이라니. 부처님 오신 날을 기다리며 입구에 연등이 색색이 달려있는 모습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잠시 차를 세워두고 설악산 쪽으로 향했다. 오래 지체할 것이 아니기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에는 아까운데 그래도 산이 자꾸 부른다. 홀린 듯 산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아니 어제부터 무료개방이란다. 이런 희소식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국립공원을 방문할 때마다 안에 사찰이 있거나 하면 입장료를 받는 것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반가운 소식이다. 기분 좋게 무료로 입장해서 잠시 설악산의 정취를 즐겼다. 


설악산 풍경. 5월4일부터 무료입장이라는 희소식. 



어차피 삶은 여행 

  

충분히 쉬고 충분히 먹고 충분히 감상하고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제 하루 그리고 오늘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일상을 떠날 수 있었기에 그곳에서의 경험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몸은 몹시 피곤하지만 마음은 속초의 바다와 산에서 받은 에너지로 지친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권유가 아니라 내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속초 기다려! 다시 올게! " 여행을 떠나서 좋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좋고 앞으로 또 떠나게 될 여행을 생각하니 좋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다.      


속초 바다 모래사장 맨발로 걷다. 목조 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풍경. 아침의 파도. 
오늘 아침 바다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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