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의 현실을 보며
오늘도 오늘의 태양이 떠올라 평온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지구 반대쪽에는 화염에 뒤덮이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연일 접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마스의 도발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향한 응징이 전면적으로 시작되었고 가자지구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다. 그들 싸움의 근원을 파헤쳐 본다면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직접적으로 하마스의 이스라엘을 향한 도발이고 하마스를 도발하게 한 원인제공자로서의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여하튼 결론적으로 역사가 오랜 중동지방의 전쟁은 2023년 오늘도 뜨거운 감자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문제는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이다. 나의 할머니 같은, 아빠 같은, 혹은 아주 어린 자녀 같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건물이 폭파되어 일상이 송두리째 상실되어 버렸다. 뉴스를 접하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왜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몰아내려 이스라엘은 총부리를 겨누는가? 왜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도발했는가?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디아스포라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 2차 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연합군의 결정으로 투하된 히로시마원자탄이 무고한 일본 국민의 삶을 망가뜨린 것처럼, 아무리 전쟁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해도 지금의 가자지구의 전쟁으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무고한 일반 사람들이다. 가자지구에 있는 9개의 대학 중 하나인 알아자르 대학이 폭격되는 장면에 흐르는 노래는 백 마디의 말이 필요 없게 한다.
아도나이! 아도나이!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에 아도나이 아도나이라는 말이 들린다. 아도나이는 '주님'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문자적으로 고수하여,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는 하나님을 부를 때 '주'라는 뜻의 '아도나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역사가 긴 중동지역의 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 평화를 위한 실마리는 무엇일까?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게 된다.
주님! 주님!이라는 탄식을 들으며 중동의 현실과 아울러 지금 우리, 그리고 지금 나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어떤 명분을 위해 전쟁은 정당화되는가? 이스라엘 하마스 간의 전쟁은 사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숱하게 발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이런 전쟁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시시비비를 따지다 보면 그 기준에 벗어난 타인은 적이 된다. 자연스럽게 행동이든, 말이든, 아니면 생각으로든 공격은 자연스러운 반응이 된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 속에 있을까? 국제적으로도 전쟁이 사라진 냉전시대에도 전쟁을 대신하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합이라는 기치를 걸고 시작된 운동경기들도 결국 나라 간의 전쟁 같은 면모를 드러낼 때가 있다. 스포츠라는 것도 결국 이기고 지는 게임이고 최근에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스포츠의 경우도 게임의 소재는 전쟁이다. 결국 적을 처단해야 내가 포인트를 얻거나 상을 획득하게 되는 놀이는 인간의 전쟁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게임에서는 쉽게 적을 죽이고 없앤다. 이런 사고방식이 현실에서도 적용되어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는 다 적이 되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전쟁만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아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현실은 전쟁으로 가득하다. 전쟁은 문제 해결을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현실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지금 한창인 국가, 지역 간의 전쟁을 보며 우리의 가까운 현실에 가득한 폭력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평화한가? 나에게는 폭력이 없는가? 폭력 외에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아도나이! 아도나이!
*디아스포라 - 바빌론 유수(幽囚) 이후 팔레스타인 밖에서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류지. 약속의 땅(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지역 간의 갈등은 오랜 중동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표지사진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