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한나 아렌트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이자 홀로코스트의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다 1960년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된다. 그 후 기소되어 1961년 공개재판이 열렸는데, 이 재판 장면은 각 나라의 방송을 통해 상영되었다.
이를 참관하던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작성하여 출판한 책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몇백만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의 일등공신이었던 아이히만에 대해 갖고 있었던 흉악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오히려 선량하고 평범한 모습이었고 단지 상관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는 고백을 했다. 이 장면을 보고 놀란 안나 아렌트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느 날 닥친 대지진으로 아파트 공화국이던 대한민국의 1980년의 서울은 초토화된다. 단 한 건물 황궁아파트 103동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103동 아파트 주민과 살기 위해 건물을 찾아드는 살려고 하는 자들과의 생존전투. 거기서 발견하는 광기의 평범성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위기의 아파트에서 살아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주민 대표로 ‘영탁’이 뽑힌다. 그를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영탁의 지휘와 부녀회장의 주도적인 진행을 중심으로 지옥 같은 바깥세상과 달리 유토피아 같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일시적인 행복의 시간이 유지되는 듯하다. 그러나 끝없이 밀려드는 외부인들의 위협, 바닥나는 생필품을 위해 밖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서 생기는 예상치 못한 갈등을 만난다. 인간성을 외면하고 점점 미쳐가는 듯한 황궁아파트의 질서를 견디다 못한 명화는 남편 민성과 아파트를 탈출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남편은 결국 죽게 된다. 명화 혼자 덩그러니 남은 폐허에서 살 길을 찾아 나선다. 지진으로 인한 잔해만 가득한 회색 콘크리트 폐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쓰러진 아파트 건물의 일부를 개조해 살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하던 황궁아파트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태도에 놀라 명화는 이렇게 질문한다.
여기 있어도 돼요?
함께 생활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오히려 귀한 주먹밥 한 덩이를 건네준다.
그런데 황궁아파트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면서요?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 앞에서 변한 모습은 타인에게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식인 광인으로 비쳤다.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이 아닌데 평범하던 사람이 광인이 된 셈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즉,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유토피아를 향해 달린 끝에 직면한 인간의 민낯이다. 재난 이전에는 아파트의 가격으로 계층이 나뉘어 있었고 재난 이후에는 입주민과 외부인이라는 기준으로 계층이 나뉜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받은 부류에 속하려는 치열한 경쟁, 나아가 치열한 전쟁에서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고 인간성 상실의 살인, 폭행, 기만등이 만연한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설 때와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 현실고발. 우리의 현주소. 그래서 불편하고 무거웠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광인이 되어가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방관해야 한다. 아파트 간의 계층은 사람의 계층을 의미한다. 위아래가 엄연히 존재한다. 재난상황에서 독보적인 건물인 황궁아파트는 이름 그래도 royal palace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도 이런 재난 상황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계급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며 ‘생각하지 않는 죄’를 이야기한다. 아이히만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지극히 평범하다. 그렇다고 그에게 죄가 없는가? 그는 자신의 행위가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 행위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과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의 죄는 생각하지 않은 죄였다. 생각하지 않으면 평범함도 악이 된다.
마찬가지로 황궁아파트에서 사람들은 주민대표 영탁의 지휘를 따른다. 따라야 살아남는다. 이주민을 쫓아내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몰래 자신의 집에 숨겨둔 사람들은 공개 비판을 당한다. 영탁의 지휘에 은밀히 저항하는 명화는 몰래 숨어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 대안은 없지만 적어도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자신들이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영탁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고 저항하게 되고 남편 민성과 함께 아파트를 탈출한다.
명화는 탈출 후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수용되는 폐허 속의 보금자리에서 그저 받은 주먹밥을 보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차단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방식과 대비되는 재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만난다. 폐허 속에서 스테인드글라스에 투과되는 햇빛은 실낱같은 희망인지도 모른다. 주먹밥 앞에서 놀라는 명화의 표정은 생각함으로 질문함으로 저항함으로 발견하게 될 새로운 길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영화의 줄거리 및 구성은 단순하다.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각색한 작품이고, 영화 제목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동양대 디자인학부 부교수 박해천이 펴낸 인문학 서적(자음과 모음, 2011)의 제목을 따 왔다고 한다. concrete는 '콘크리트의'라는 뜻 외에도 '단단한, 굳은'의 뜻을 가지고 있다. 견고한 유토피아라는 말이 된다. 견고할 것 같은 유토피아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의 역설을 고발함. 그 속에서 발견하고 싶은 한줄기 빛. 강한 인상이 남는 작품. 극히 주관적인 별점은 별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