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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Jan 15. 2024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시 연습 1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나모다  

    

이유를 모른 채 시들시들하던 유칼립투스 나무에 솟아오른 새 잎 하나가 나를 멈추게 한다  

내 고민을 알아차리고 보낸 친구의 격려 담긴 작은 선물과 한 마디 말이 말이 나를 멈추게 한다

질 것을 알고도 이기든 지든 원칙대로 하겠노라는 신념에 찬 장군의 한마디가 나를 멈추게 한다 

숨쉬기도 힘들던 한 여름. 꼬깃꼬깃 검정봉다리에 호박잎을 담아 건네시던 지친 할머니의 희미한 미소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어머, 앗... 

불현듯 나도 모르게 내지르는 탄성이 있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고 

아득하게 침묵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무엇을 만났을 때이다.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슬픈데 따뜻한 

아픈데 힘을 주는 역설의 순간이다. 

순간의 마비 같은 먹먹함이 있지만 

그래서 새 힘으로 다시 걷게 되는 순간이다.      


시 연습을 시작하며      


언젠가 중학교 국어교사인 친구가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한 작업을 책으로 묶은 것을 보여주었다. 제목은 <시인되기>  유명, 혹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들의 시를 먼저 함께 감상한 후, 감상한 시와 닮은 자기만의 시를 쓴 것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함께 감상한 시를 보고 쓴 아이들의 모방 시를 몇 개 소개하면,      


이 치킨도 한때는 
모이 쪼던 닭이었겠지 – 김00     


이 젓가락도 한때는
코끼리의 멋진 상아였겠지 – 이00     


이 향수도 한때는 
들판에 핀 꽃이었겠지 – 윤00           


손바닥만한 책자에 이런 식의 시도가 알알이 박혀 있었다. 더 나아가서 학생이 쓴 창작시를 가지고 모방 시를 쓴 것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모방을 통해 시를 쓰도록 하는 그의 참신한 시도만큼이나 아이들의 표현도 참신했다. 친구는 시 수업을 하면서 막무가내인 반항아로만 보였던 아이들 중에 간혹 빛나는 시 한 구절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있노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튼 이런 방법이라면 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시는 쉽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경우가 많아 어렵게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함축성이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짧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시어들은 한번 운명적인 부딪힘을 경험하면 아주 오래 깊이 마음에 새겨진다. 그런 시를 감히 쓸 수 있을까? 편하게 하나씩 시인을 흉내 내며 내 언어를 뱉어 보면 그 또한 시를 쓰는, 결국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겠다 싶다.  그래서 특별한 시를 특별하지 않게 써보는 매거진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반칠환시인의 시를 모방해서 몇자 끄적여 보았습니다. 

평범한 언어로 가슴을 울리는 시인의 시를 모양만 흉내내보았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이니 이런 습작이 모이다보면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시가 탄생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과 관련한 작가님들의 경험 또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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