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문학동네. 2021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괴테와 마주 앉는 시간
나이 들어 가슴 설레는 일이 생겼다. 젊은 날 사랑할 때와는 또 다른 설렘이다. 이 시기에 만날 수 있는 무력함과 절망감이 깊어서 사막에서 마시는 생수처럼 희열이 큰지도 모른다. 관심 영역을 검색하다 우연히 자신을 괴테할머니라고 칭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브런치에서 잠깐 나의 롤모델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전 서울대 교수인 전영애 씨는 독일문학을 전공하며 이후로 죽 책을 읽고 공부하고 쓰기를 지속했으며 최근에 은퇴 후 여주에 여백서원을 운영하며 언론에도 노출이 되며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따뜻한 햇살 같은 세상을 발견했다. 땅 속에서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대에 이런 분이 계신다는 것은 큰 희망이다. 고이 묻어두고 혼자 조용히 와서 다시 꺼내보며 흐뭇해하는 땅속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 같은 그런 기분이다.
어려운 괴테를 쉽게 소개하는 책
이 책의 제목인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는 괴테 인생 말년의 고백이다. 당시 독일의 바이마르공국의 장관으로 문공, 교육, 회계 분야를 담당하며 현실참여를 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방대한 저서를 남긴 독일문학의 거장 괴테 말년의 고백이다. 그의 이 소박한 고백에서 그의 삶의 어떠함을 볼 수 있다. 만년 소년처럼 그는 꿈을 꾸었고, 사랑했다.
책은 괴테의 작품 속의 기록, 그의 자서전인 <시와 진실>, 편지등 다양한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을 소개하며 저자의 감상을 곁들인다. 이 책을 통해 괴테를 만나게 되고, 괴테와 닮아있는 전영애 씨를 만나게 된다. 독일의 대문호라는 호칭에 짓눌려, 접근하기 힘들었기도 하고, 특히 그의 대작 <파우스트>는 제목만 스치고 읽어보지 못하던 차였는데, 작품이 어떤 배경으로 기록되었고, 괴테라는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되는 등 괴테작품들에 대한 선행지식이 생기는 이득이 있다. 책은 저자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의 결정체임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괴테가 더 궁금해지고 괴테를 연구한 전영애교수도 궁금해진다.
인생의 말년에 서원을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힘겨운 노동과 끊임없는 연구가 지속되는 생활 속에서 전영애 씨가 바라는 것은 박수부대이다. 그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바이마르공국에서 괴테 한 사람으로 인해 독일 문학이 우뚝 선 것처럼 한 사람이 잘 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그 한 사람에게 박수를 힘껏 쳐주고 싶은 소망을 가졌다. 그의 박수 소리에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있고 영향을 받고 있고, 지금도 왕성하게 번역, 저작, 강의등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욕심내지 않고 조용히 묵묵히 자기 길을 간 삶의 아름다운 결실을 확인하는 기쁨이 크다.
나의 인생을 몽땅
그대로 가져가거라, 내가 살아온 대로,
사람들은 취기를 잠자서 깨우는데
나의 취기는 종이 위에 적혀 있다.
눈은 무엇보다 내가 세계를 포착하는 기관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들 사이에서 살았고, 대상들을 예술과 연관시켜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내가 나 자신과 고독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 지금, 절반은 선천적으로 절반은 후천적으로 이 재능이 나왔다. 어디를 바라보든 나는 그림/이미지 하나를 보아냈으며, 내 눈에 뜨인 것, 나를 기쁘게 한 것을 붙잡아두려 했다. 그리하여 서툴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문제의 전모를 바르게 파악하면, 기이하게도 생겨나는, 문제를 감당해 가는 힘, 그 힘이, 답은 없지만 그중 답의 근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모색이 이루어지며, 그 길에서 쌓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슬기가 생기기도 하고, 문제 쪽에서 슬그머니 알아서 풀리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p.115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
괴테는 적어도 글을 쓸 때는 늘 취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평생 젊었던 것만 같습니다. 경탄을, “놀라움”을 잃지 않은, 굳어지지 않은 사람은, 굳이 괴테 아니어도, 연령과 상관없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나누어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몽땅 가져가라니! 그저 유쾌하게 받습니다
p.115
제가 보여주려는 것은 단순히 우리에겐 조금 낯선 인물인 괴테가 아닙니다. 첫째,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크는가. 둘째, 그런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가.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 생각하는 가운데 계획이 조금씩 세워졌습니다. 서원 안에 있는 ’ 여백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이들이 참 예뻐서, 그런 아이들이 더 커서도 찾아오고 지켜갈 수 있는 곳을 떠올리던 생각의 끝자락에 맺힌 그림입니다.
p.149
글의 힘, 아직도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기도 하는 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는 지난 몇 년간 골똘히 생각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런 글들은 쓰이는 걸까. 제대로 공부를 했더라면 이제쯤은 가끔은 어쩌면 그런 글을 스스로 쓸 수도 있어야 할 때이건만, 이제야 가까스로 그런 글들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달리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사치까지 누렸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좋은 글을 찾아 읽게 되고, 그런 글을 쓴 큰 사람을, 시공과 무관하게 만나게 됩니다. 잠깐 차 한잔을 나누어도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쏟아, 때로는 인생을 다 바쳐 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같은 글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모릅니다... 함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눈 멀고 가까운 곳의 참 많은 얼굴들이 끝없이 눈앞을 지나갑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내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습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
이름만으로도 무겁게 다가오는 거장이 생애의 끝머리에 운을 맞추어, 정교히 다듬어 한 발언입니다... 긴 노역의 삶 끝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성취의 어느 지점쯤에서 이런 말은 나올 수 있을까.
p.189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놀라워함. “전율”이 “인간의 가장 양질의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긴 생애의 끝까지 괴테에게는 이 놀라움, 경탄의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논설이, 문학이, 시가 결정처럼 서서히 맺혔지요. 깨어 있었습니다. 혹은 그렇게 살아 있었습니다. 생애 끝까지 말입니다.
파우스트를 이토록 거대한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마 소박한 호기심이 그 추동력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그 가장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물음과 결코 무뎌지지 않고 결코 무감각해지지 않는 감각, 열림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이한 건축물을 이루기 위해 오래도록 쏟아온 나의 정직한 노력은 제대로 보답받지 못하고, 난파선처럼 해변으로 쓸려가 부서져 놓여 있다가 시간의 모래 더미에 파묻혀버리고 말 겁니다. 혼란스러운 행함을 부르는 혼란스러운 가르침이 세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있고, 늘 있어온 것을 될 수 있으면 증진시키고 나의 특질을 정화하는 것 이상으로 절박한 할 일은 없습니다.
변함없이 그대의 J.W.v 괴테
죽음을 목전에 둔, 닷새 앞둔 시인이 자기 수양의 절박함을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력합니다. ...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닦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저항으로 읽힙니다. 그 큰 사람에게도 그랬습니다. 시대의 혼란과 몰이해에 홀로 마주선 이의 마지막 외로움이 읽는 이의 가슴을 칩니다. 작품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로써 가닿으려 했던 것도 결국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득한 예전의 그 많은 낱장 편지들을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모았을까요? 인류의 큰 업적들은 어쩌면 이런 절망과 외로움의 힘으로 길어 올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