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을 쓰러뜨리는 비결

작은 꼬마 그의 중심은 어디에?

by 나모다

성경 이야기를 꺼내면 좀 지루하지 않나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성경이 너무 재미나네요. 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인지 읽을수록 새로워지는 마력을 느낀다면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성경의 에피소드로 보통사람의 특별한 만남 이야기를 풀어갈 거예요. 이스라엘 왕정시대 2대 왕이었던 다윗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요. 바로 골리앗과의 싸움이에요. 일개 어린 목동이 어떻게 거인을 쓰러뜨렸을까 라는 질문을 안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촌스런 양치기 다윗을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함께 가볼까요?






사무엘기는 구약성경 중의 하나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시점인 판관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왕정시대가 열리는 시점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과 초대 왕 사울, 그리고 골리앗을 물리치고 주목받게 된 다윗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사사는 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 사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등장 때까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의 군사, 정치 지도자(사사기 2장 16-18)를 의미한다.




사무엘상 16장 1절-13절은 실책이 많은 사울 왕 대신 새로운 왕이 될 사람을 사무엘 선지자가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이새의 아들 중 하나가 왕으로 택함 받았다는 부름에 따라, 이새를 만나게 되는 사무엘은 첫눈에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왕이 될 사람이라 여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보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장 7절

자신의 판단이 순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무엘은 다른 관점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아들 모두 해당사항이 아님을 대번에 알아차린다. 실망하여, 다른 아들이 있느냐고 질문한다. 이새는 들판에서 양치기 하는 가장 어린, 보잘것없는 아들을 사무엘에게 소개할 생각조차 않다가 사무엘의 질문에 막내아들을 불러온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 사무엘상 16장 12절


다윗을 본 사무엘의 느낌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다윗의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중심을 본 느낌을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다윗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것 마냥, 가장 찌질이가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고, 이후에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왕정시대의 2대 왕이 된다.


사무엘은 선지자였음에도, 그의 선입견에 따라 이새의 아들 중 왕이 될 만한 조건들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가령, 외모, 체격, 직업, 지식 등. 그런 관점에서 첫째 엘리압을 보고 바로 맘에 들어했다. 아비인 이새조차도 왕이 될 만한 아들들을 사무엘에게 차례대로 알현하게 하고, 들판에서 양이나 치는 보잘것없는 다윗은 아예 접견 자리에 부르지도 않았다. 그러다, 중심을 보라는 명에 따라 관점을 바꾸고 나서야 다른 아들들 역시 자격미달임을 알아차리고 이 자리에 없는 아들이 있는지를 이새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이라... 그건 무엇일까?








다윗 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다윗의 별이다. 유대인의 상징이 되었던 다윗의 별은 히틀러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유대인의 존재는 세계 역사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크다. 세상의 중심(?) 역할을 하는 미국의 핵심 요소를 차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인 것도 이제는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유대인의 상징이 되는 다윗의 역사는 책으로 영화로도 도배가 된다.




사울의 질투를 받아 쫓겨다니며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이야기, 사울을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던 이야기, 왕으로서의 치적, 그리고 그 유명한 밧세바와의 간음과 그로 인한 살인, 눈물로 쓴 유명한 다윗의 시편 서신... 그 많은 것 중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그가 제사장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었던 이야기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했다. "왕이 내게 임무를 맡겨 보내시면서 '이것은 중요한 비밀이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라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내 부하들과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먹을 것이 좀 있습니까? 빵 다섯 덩이 정도 구할 수 있는지요? 무엇이든 있는 대로 주십시오!" 제사장이 말했다. "보통 빵은 없고 거룩한 빵만 있습니다. ".... 그래서 제사장은 거룩한 빵을 내주었다. 그것은 새 빵을 차려놓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물려 낸 임재의 빵이었는데, 그에게 있는 음식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1장 3절-6절 (메시지 성경)

당시 유대사회에서 제사장은 절대 권력에 해당했다. 그를 저항하거나 위배하는 것은 곧 가장 큰 힘에 대한 저항이었다. 절대권력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제사상의 음식 진설병.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중에 사흘이나 굶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 하던 일행의 허기를 걱정한 다윗은 제사장에게 진설병을 요구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례 이전에 사람이었다.

이 예화는 이후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에게 대응할 때 사용한 예이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규정은 예수뿐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서도 깨어지고 있었다. 그때 예수의 유명한 말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였다. (마가복음 2장 23절-28절)

다윗과 예수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중심이었다. 그들의 중심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놓치지 않는 중심이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안식일을 만든 규정인가? 규정의 주체인 종교단체인가? 종교지도자인가? 종교지도자에게 이러저러한 것을 명한 신인가? 그렇다면 그 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국 따져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세상 만물 중의 하나인 인간이 중요하다. 아버지가 자식을 가장 아끼듯, 창조자라면 자식인 피조물을 가장 아끼지 않는가?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종교, 법, 사회, 정치가 원래의 목적을 잃고 산으로 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양치기로서 양을 사랑했던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 물맷돌 기술을 훈련했을 것이고, 그 기술에 능했다. 하찮아 보이는 목동이 사람들 눈에, 특히 왕인 사울의 눈에 뜨이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골리앗과의 싸움은 그야말로 입쩍벌의 광경이 되었다. 그의 노련한 물맷돌 솜씨는 양을 지키려는 그의 중심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키던 양을 사랑했던 그 중심은 곧 백성을 다스릴 왕의 자격조건이 되었고, 제사장 외에 먹을 수 없다는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동행한 자들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중심은 그가 지켜야 할 양이며, 사람에게 가 있었다.


그 중심을 관점의 변화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사무엘은 다윗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을까? 거인을 쓰러뜨린 그 비결은 그의 민첩함, 기술 이전에 바로 자신이 맡은 양들을 지키고자 하는 그 중심이었다. 그 중심이 왕의 자격이 되고, 지도자의 자격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은 나라든, 직장이든, 학교든, 바로 다윗처럼 지금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생명에게 집중하는 사람일 것 같다. 그런 사람은 자기 앞에 거인조차 쓰러뜨릴 수 있다. 다윗과 골리앗을 생각하며, 겉의 힘이 아닌, 마음속의 중심을 생각하게 된다. 외모를 위해 옷을 갖춰 입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는지 고민하는 순간이다.






다윗에 대해 궁금해져서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 등을 좀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들의 추앙받는 왕인 다윗이 과연 추앙받을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윗은 이후에 커다란 실책과 불행에 휩싸이지만 이건 다음에 따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많은 치적보다, 지금 눈앞에 바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 그 마음에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눈앞에 있는 한 사람!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아 보고자 합니다. 부끄러움이 이리저리 흘러내립니다. 중심.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디에 집중하고 있을까? 중심을 흐리게 하는 많은 것들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었을까? 부끄러움 앞에 서는 힘든 시간입니다.


지금 여기 당신의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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