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을 보고 다른 길을 가는 이유

천문학자들의 선택

by 나모다


별의 움직임을 보고 특별한 존재의 탄생을 예감한 천문학자들은 먼길을 지나 유대인의 왕을 만나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는지, 무엇이 그들의 길을 예정과 다른 길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특별한 만남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1. 천문학자들이 별을 보고 왕을 만나러 가다



성경 마태복음 2장 1절-12절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은 당시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 호적을 하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만삭의 몸으로 힘든 여행길에 올랐고, 결국 여행지에서 해산을 해야 하는데 여관에 방이 없어 말구유에서 해산해야 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고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B.C 27-A.D.14)가 효율적 통치를 위한 인구조사의 목적으로 호적을 명하였다. 만삭의 몸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을 보아, 호적을 꼭 해야 하는 강한 의무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흔히 성경에서 언급되는 동방박사는 팔레스타인의 동쪽 지역인, 페르시아, 바벨론, 아라비아 지역을 말하며 박사는 점성가 즉, 우주 전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찰하는 자연과학자, 천문학자에 해당한다.

헤롯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신뢰받는 가신(家臣, client)으로서 유대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왜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천문학자들의 방문에 소동하는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헤롯왕은 물론이고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다.

마태복음 2장 2-3절


당시 유대 사람들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속박을 풀어줄 왕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전통적으로 신봉하고 있던 경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지내며 백성들이 고초를 겪고 있는데, 오랫동안 나라를 구할 지도자 출현의 기대심리가 있었는 차에, 이웃 나라의 학자가 별의 특이한 징조를 보고 이 나라에 귀한 인물이 태어났다고 만나러 온 상황에 해당한다. 식민지 국가를 다스리는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다. 민심의 소란을 우려했던 헤롯은 학자들에게 그 아기를 만나거든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한다. 소란의 원인을 제거할 목적이었다.




2. 천문학자들 다른 길로 가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마태복음 2장 12절


학자들이 별을 보고 찾아온 그 주인공은 하필 초라한 마구간의 말구유에 놓인 아기였다. 그에게 세 가지 선물을 전한다. 헤롯은 자기에게 돌아와 아기가 있는 장소를 알려달라 했으나 학자들은 꿈에 지시를 받고 헤롯에게 다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원래 자기네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다가올 위협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들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타 지역 사람들이라 유대인들의 기록에는 없다. 나중에 도마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설은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후 행적이 너무 궁금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만남을 했던 그들이 그 존재와 결코 상관없이 살 수 없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한다.


학자들이 돌아간 후 어떤 일이 있었을까? 마태복음 2장 16절에 의하면 헤롯은 학자들에게 속은 줄 알고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학자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아래로 다 죽였다. 역사적인 이 사건은 워낙 충격적이지만, 역사는 말이 안 되는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지 않은가!





예수는 2000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4대 성인聖人 중의 한 사람이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면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천문학자들의 경배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천문학자들은 그를 미리 알아보았을까? 헤롯에게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3. 다른 것을 보는 눈



천문학자들의 방문과 이로 인한 그 지역의 소동과 헤롯이 두 살 이내의 사내아이를 죽이게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감안하고 그 상황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별을 보고 왕의 탄생을 예감한 학자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유대 지역의 사람이 아닌 타 지역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유대의 왕이라는 특이한 존재를 별을 통해 감지했던 것 같다. 자국의 왕도 아닌 이웃 지역의 왕을 알현하러 먼길을 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웃 지역의 왕이긴 하나,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별을 보고 아는 눈이 있었다. 게다가 누가복음 2장 7절부터 20절에 등장하는 양치기들도 왕의 탄생을 예감한 신호를 보고 찾아가 경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 많은 사람 중 특별히 신호를 알아차린 목동들, 그리고 천문학자들.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별자리를 통해 우주의 운행 및 현상을 관찰하는 분야가 있고, 태어난 시간과 관련하여 개인의 성향을 설명하는 사주명리학처럼 별자리로 출생에 따른 성격 유형을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점성가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경우도 그의 예언력과 별자리 연구가 무관하지 않다. 찰스 워드는 이렇게 기록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 여기 우리 앞에 프랑스의 스핑크스가 있다. 인간의 운명을 수수께끼로 묻는 스핑크스. 대담하면서도 겁이 많은 자, 단순하지만 깊이를 가진 자가”



점성술사, 목자들처럼 별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사람뿐 아니라, 직관적으로 앞으로의 일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의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들의 ‘지혜’로 통하는 길은 무엇일까?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기에 무리가 있겠으나, 이 고민을 하는 중에 생각나는 몇 가지 예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탄허

평생을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한 탄허는 탁월한 예지력으로 국가 및 국제정세, 우주의 변화, 환경변화 등을 이야기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진위여부를 검증할 수 없으나 실제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머물고 있던 사찰에서 남쪽 양산 통도사로 옮긴 경우라든가, 울진 삼척 무장이 몰려오기 전 화엄경 원고를 월정사에서 영은사로 이동시켜 보호한 경우는 실제 있었던 일로 회자되고 있다. 비록 몸은 산간에 머물렀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다고 하는데 적어도 남다른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지진 나기 전의 동물들의 직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들이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많이 들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데 그들이 느끼는 동물적인 감각은 이성이 아닌 본능적인, 본래적인 직관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장자의 혼돈混沌

남쪽 바다에 숙儵이라고 하는 임금과 북쪽 바다에 홀忽이라고 하는 임금, 중앙 지방에 혼돈混沌이라고 하는 임금이 있었다 숙과 홀은 때때로 서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자고 의논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이 자에게만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주자.” 그리고 그들을 하루에 한 구멍씩 뚫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일곱째 되던 날 혼돈은 죽어버렸다.

- 장자, '응제왕‘

인간의 본래 모습은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다. 인간의 의식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假空의 세계다. 인간은 자신의 본래 세계를 버리고 스스로 만든 가공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자신을 속박하는 것이다... 본래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본래의 것이고, 진실한 것이며, 참된 것이다....

- 장자 진리를 찾아가는 길. 이기동. p. 19



장자의 '응제왕'에 소개된 혼돈의 이야기를 보자. 혼돈에게 구멍을 내어 혼돈을 죽게 했다면 구멍이 없는 상태가 살아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혼돈이란 가공의 의식적 세계 이전의 자연 그대로의 본래 상태를 말한다. 의식이 본래를 상실하게 했다면, 그 본래는 무엇인가? 직관적으로 지진의 징조를 알아차린다거나 다가올 위험을 알아차린 탄허 스님의 예지력은 의식 이전의 그 본래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니체의 초인超人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 개념을 사용하며 초인을 아이의 정신에 비유했다. 과거에 짓눌리는 낙타의 정신, 미래를 걱정하는 사자의 정신과 대비되는 현재의 생명력을 누리는 아이의 정신은 어느 것도 덧씌워지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인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동물들이 동물적 감각으로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 듯,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벗겨낸 후의 원래 상태 그 어딘가에 위에 소개한 자들은 가 있었던 걸까?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았던 천문학자들, 목동들, 지진을 피하는 동물,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던 탄허, 구멍이 나기 전의 원래 혼돈, 그리고 니체가 이상적 정신으로 보던 아이! 그들이 무엇인가를 보던 그 자리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예지력, 혹은 통찰력! 용어가 무엇이든지 간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다르게 보고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실체를 실체로 보는 그 자리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내 맘대로 뻗어본 질문들이다.






별을 보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늘 느끼던 감각 외의 다른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감각을 사용했던 별다른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질문해봅니다. 새롭게 감각하고 새롭게 다른 길을 가보기. 제가 갖고 있는 숙제입니다. 다른 길! 혹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익숙하고 당연하게 습관적으로 이 길을 가는 건 아닐까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나요? 당신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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