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발만 그렇겠나? 각자의 발은 그 인생만큼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운동선수 아니라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몇십 년을 살다 보면 각자의 발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좀처럼 내 발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름이면 샌들을 신고 다니며 예쁜 발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발을 숨기고 다녔다. 발이 이쁘게 생기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발가락을 드러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알 수 없는 보호 본능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국 여왕이 한국 사찰을 방문할 때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구두를 벗었다고 해서 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서양사람들도 자신의 벗은 발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 것이 내가 발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마음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어디서 시작된지도 모르는 채 발톱 무좀이 생기면서는 더더욱 발을 가리고 다니게 되었다.
부끄러워서 인지,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인지, 그렇게 숨어 살던 나의 발이 지금 나의 사치 항목 1번의 주인공이다. 큰 맘먹고 발 관리 쿠폰을 구입해서 가끔씩 발 관리 샵에 간다. 웬 사치냐고 하겠다. 맞다. 나로서는 엄청난 사치다.
발톱 무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균에 감염된 것 같다. 특별한 통증은 없지만 외견상으로 좋지 않다. 피부과 온갖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바르는 약, 먹는 약, 레이저 치료까지 해도 별 효력이 없다. 당장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균이라는 것은 몸속에 있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뿌리 뽑히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균의 존재는 늘 불청객이었다. 발톱의 색깔이 달라지거나, 두께가 두꺼워지는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결심으로 피부과 약을 먹다가도 중단했다.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내게 피부과 독한 약은 간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무지외반
나의 외할머니의 엄지발가락 옆의 툭 튀어나온 뼈는 유독 내 시선을 끌었다. 나이가 들면 할머니들은 다 그런가 싶었다. 내 기억에 마더 테레사의 사진에 드러난 발도 그렇게 생겼었다. 나는 유독 발이 쉬이 피곤하다. 젊을 때도 하이힐은 엄두도 못 내었고, 필요도 못 느꼈는데 아마 쉽게 피곤해지는 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엄지발가락 옆쪽이 유독 할머니의 발가락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모양만 그러려니 했는데 만지면 아프다. 변형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엄지발가락(拇指) 뼈가 바깥쪽으로 비뚤어지면서(外反) 발가락에 변형이 생기는 무지외반拇指外反현상은 변형으로 인한 통증 및 부수적인 장애를 초래한다. 훨씬 이전부터 발바닥에 자꾸 굳은살이 생겨 수시로 냉동치료를 받아 굳은 부위를 제거해주는데 내게 생기는 굳은살은 뼈가 변형되면서 엄지발가락이 힘을 주지 못해 생기는 힘 균형상실의 부작용임을 알게 되었다.
정형외과에서는 이미 오래전 수술을 권고했지만, 뼈를 깎아 수술을 하는 건 원치 않아 여태 버티고 있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체외 충격파 치료도 받고, 주사도 맞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다. 남들보다 발이 불편하니, 신발도 운동화 같은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하고, 발의 모양 유지를 위해 특별한 깔창을 끼고, 실리콘을 발가락 사이에 끼워 서로 부딪혀 물집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무지외반 교정기를 착용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일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날다람쥐 종류이다. 그러니까 달리기 선수, 아이들, 무조건 뛰어다니는 모든 존재들이 다 부럽다.
언젠가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해야겠지만, 나는 그날을 가급 미루고 있고, 이 상태로 유지되기를 바라며 내 몸에 맞춘 움직임을 선택하고 있다. 걸을 수 있을 만큼 걷고, 만져주고 달래준다.
발의 수난시대다. 미용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더 중요한 것은 기능적으로도 통증과 불편이 있다. 운동부족을 메꾸기 위해 하던 수영은 코로나 상황에서 못하면서부터 오직 걷기로 운동량을 채운다. 어느 때보다 걷기가 중요해졌고, 걸어 다니는 내 발이 중요해졌다. 적당한 치료를 하며 발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다 든 생각이 있다.
고마운 나의 발
발한테 무심했다. 발에 문제가 생기면 삶이 얼마나 불편해지는지를 경험하고 나니,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마운 나의 발! 발의 내부를 그리거나 찍은 사진을 보면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이제야 발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뼈와 뼈는 각각의 기능을 하며 연결되어있고, 또한 미세한 힘줄과도 연결되어, 아주 복잡한 작용을 한다. 어느 하나라도 손상이 간다면 거대한 몸뚱이가 치명적인 불편함을 겪는다.
발이 얼마나 정교한 예술 작품인지! ( 사진출처. 예술가를 위한 해부학)
We do not know the value of our health, until we lose it.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의 가치를 안다.
학교에서 배운 not.. until.. 구문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구문이다. 살짝 변형해보면,
We do not know the value of our feet, until we lose them.
발을 잃고 나서야 발의 가치를 안다.
불편하니, 아쉬우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가치를 알게 된 내 발.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직 성하지 않은 내 발한테 뭐라도 해 주고 싶다. 그래서 발을 위한 투자를 결심했다. 처음에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발을 드러내야 하는 민망함 때문에 망설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평생 이 한 몸을 데리고 뚜벅뚜벅 참 잘도 다니던 고마운 발 아닌가! 옷을 위해서는 머리를 위해서는 그래도 꾸준한 지출을 하면서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발을 위한 투자는 없었다. 그래서, 발을 위한 지출을 과감히 하기로 했다. 문제성 발톱 관리를 해주는 발 관리숍에서 관리를 받고 깨끗해진 발을 내게 선물하기로 했다. 간헐적으로 들르게 되는데, 시간도 꽤 걸리지만, 미용, 위생, 관리 차원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신발 속에 양말 속에 숨어 묵묵히 걸어온 내 발을 칭찬하며 올여름에는 내 발에게 특급 티켓을 부여하고 싶다. 세상 구경 티켓! 내 발아, 있는 그대로세상으로 나와봐!
내 발에게 보내는 발라드
고마운 내 발
아기처럼 보드랍던 내 발
뒤뚱뒤뚱 걸음 지나
당당히 땅을 딛고 일어서던 내 발
뚜벅뚜벅
쉬지 않고 걸은 내 발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 내 발
신발 속에 숨어
숨도 못 쉬던 내 발
아파도 외면당하던 내 발
모양도 일그러진 내 발
굳은살 박인 내 발
이제야 너를 내려다보는 나를
용서해줘 제발
이제야 네 생김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해줘 제발
이제야 너를 자랑하는 나를
용서해줘 제발
이제야 너를 고마워하는 나를
용서해줘 제발
그럼에도
좀 더 오래오래
뚜벅뚜벅 걸어달라고
당부해서 미안해, 내 발!
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몸이었습니다. 하나 둘 아프기 시작하니,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많이 미안하고 고맙더군요. 그리고 정말 내 몸에 대해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몸은 마음과 무관하지 않지만, 물리적인 몸 그 자체로서의 기능과 원리도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부분은 몸을 다루는 전문인들이 연구하겠지만, 생활인으로 느끼는 몸과 관련한 고찰을 하고 싶어 졌습니다. 이번 매거진 <몸과 함께>는 제가 몸에 대해 발견하는 고찰들을 기록하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첫 순서가 가장 관심을 갖지 않은 발에 관한 글이 되었네요. 몸에 대한 예의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당신은 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