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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Feb 10. 2022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

박서원의 <난간 위의 고양이> 단상


난간 위의 고양이 / 박서원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

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아는 고양이

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

명수인 발과 발톱

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

어리석은 생선은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고

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

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

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

야옹

야옹      





1. 박서원의 고양이     



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알아

난간이 두렵지 않고

난간에 섰을 때

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치는 고양이      

낙법의 귀재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사뿐히 내려오며

균형을 잡고

위로 위로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놈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 명수인

발과 발톱

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

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

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      


자신의 장점인

뛰어넘기를 위해 도달한 난간에서

두려움 없음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경계선


뛰어내려도 되고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는

망설임의 자리      

새로운 세상

거듭남이 기다리는

행복하고 괴로운 자리      



2. 우리 집 고양이 점네



우리 집 고양이 점네


우리 집 고양이 점네

(흰색 몸 등위에 커다란 점이 있어

딸이 붙여준 촌스런(?) 이름)

높은 냉장고 위로

풀쩍 올라간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올라갈 수 없는 저곳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가진 그의 본성       

처음부터 절대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뚫어지게 한 단계 한 단계 탐색하며

높이를 올린다.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한 후부터는

무섭고 사납게 질주한다.      


그래서

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저 자태는

위풍당당 정글의 왕의 모습이다.      


그 위풍당당함 뒤에 서린

경계와 두려움의 표정

추락의 방법을 면밀히 고민한다

새로운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기다리는 새로운 모험  

일단 성공하면

그곳은 그의 영역이 된다.      



3. 나, 고양이      


난간 위의 고양이는

위엄이 있다.

천하를 다 품고

이제 저 아래를 차지할 기세다.

두려움이 없다.

높은 곳에서 추락해도

균형을 잡고

사뿐히 내려앉는 묘기를 가졌다.      


난간 위의 고양이는

쥐새끼 같다.

저 아래 무엇이 있을까

혹시 위험한 개새끼라도 있지 않을까

두렵기 그지없다.

재수 없게 밀렵꾼의 그물에 낚여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새 이슬 떨구는 방울꽃은 질린다.

파랗게

새벽별은 어둠을 뚫고 나와 질린다.

파랗게

알을 깨고 나오는 거듭남도 겁에 질린다.


푸르뎅뎅하게      

난간 위에 고양이는

야옹야옹

파란 소리를 낸다.      


시인은 자신을 난간 위의 고양이에 이입시킨 것 같다.

인간의 실존을 이리 잘 포착해낼 수 있을까?

나 역시 난간 위의 고양이다.

작가들의 이력을 들추어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의 죽음 역시 석연치 않다.

왜 하나같이 그렇게 삶이 고달픈가?     


고달픈 그 삶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날카로운 시어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비록 겁에 질리더라도

새파랗게 질리더라도

야옹야옹 그 울음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거움 그것과 함께

나도 야옹거려본다.

파랗게.


야옹

야옹   

야옹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다른 사람들이 글로 풀어낸 것들을 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  매거진 <글과 함께>를 엽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는데, 끝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수습한다는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저도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겁내지 않기로 합니다.


이전에 읽고 써 놓았던 글을 조금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글 창고에 그래도 끄적끄적 써놓은 글들이 조금 있네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지요. 흩어져 있던 나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해체하고 모으고 정리하는 것. 나의 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정리함은 또 삶의 정리이기도 하니까요.





<남자들은 모른다>라는 시집을 친구의 권유로 읽었습니다.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에 만난 책이지요. 여성작가들이 쓴 많은 시를 읽다 보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너무 우울해져서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글들이었지요. 그사이 책장에 넣어둔 시집인데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눈 뜨고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여자라는 단어로 상징된 약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하고자 한다면 끝도 없겠지요.  남녀 대결 아닙니다. 혹은 두 관계의 입장이 뒤바뀐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자(약자)가 아닌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약자)들이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 아닌 우리자신 그리고 우리 딸들의 이야기니까요. 책을 기웃거리다  혹 기회가 된다면 다시 단상斷想으로 인사드릴게요.


난간 위의 고양이가 질문합니다.


당신, 난간 위에 서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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