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울고 있나요?

최민정 선수에게

by 나모다


대한민국 최민정, 미국 크리스틴 샌토스, 이탈리아 아리안나 폰타나, 네덜란드 슐팅 , 그리고 벨기에 데스멋 다섯 선수들이 스타트라인에 섰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여자 경기 결승전. 각 나라의 심볼을 드러낸 멋스러운 알록달록 유니폼은 선수들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만큼 찬란했다.

땅! 그리고 삑! 부정출발 휘슬이 울렸다. 0.001초로 순서가 나뉘는 초민감한 경기라 출발 신호를 듣고 나가면 이미 늦어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출발 신호와 거의 동시에 출발하도록 얼마나 훈련을 받았을까? 게다 결승전이라는 부담감에 초긴장상태이다. 두 번째 시도에 부정 출발하는 자는 누구든 실격이다. 극한 긴장감이 맴돈다.

다시 땅! 드디어 다섯 선수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쇼트트랙 1000m 경기는 111.12m의 트랙을 9바퀴 도는 경기이다. 빠른 속도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에 전략이 중요하다. 네덜란드 슐팅 선수가 선두를 치고 나가지만 최민정 선수는 후반부 돌격을 의도했었는지 4위로 스타트했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안 된다. 세계랭킹 3위이고 가장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다.

쇼트트랙은 기록보다는 순위가 중요한 종목이다. 선수끼리의 접촉이 빈번하고 충돌 가능성이 높아 이변이 속출한다. 해서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경기다. 보는 내내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경기 장면을 떠올리면 같이 심장이 뛰는 것 같다.

슬슬 레이스가 진행되고 가속도가 붙는다. 레이스 중에 수차례 추월 시도가 있고 순위는 뒤바뀐다. 4위에서 밀려 5위가 된다. 남아있는 바퀴는 점점 줄어들고 보는 마음에 불안감이 가중된다. 가만있을 최민정 선수가 아니다. 그는 몇 차례 추월을 감행한다. 결승선 6바퀴 남기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4위를 탈환한다. 아웃코스로 빙 돌아 추월을 감행하지만, 매번 바짝 붙은 선수들에게 저지당한다. 아시다시피 추월 순간에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앞서려다 자칫 부딪히면 연쇄적으로 한꺼번에 주변 선수까지 같이 넘어진다. 그래서 너무 조심스럽다. 숨을 죽이는 건 이런 순간들에서다.

이제 두 바퀴 남겨두고 있다. 초반부터 선두를 지키던 네덜란드 선수는 지난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바짝 뒤이어 아리안나 폰타나 (이탈리아)와 크리스틴 샌토스(미국)가 맹질주하며 추월을 노리고 있다. 결승선은 점점 다가오고 뒤에 처진 최민정은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숨을 죽이며 보고 있자니, 입이 바짝 마른다. 지금 나갈 것인가? 안으로 파고 들것인가? 밖으로 돌 것인가? 1위 선수는 인코스 방어의 명수라고 한다. 최민정은 밖으로 빙 돌아 추격을 감행한다. 결승선 2바퀴 남기고 갑자기 무서운 스퍼트를 올린다. 밖으로 빙 도는 사이 주변의 변화와 각자의 추격으로 흔들린 2,3위 선수의 충돌과 미끄러짐. 뻥! 쏴아악! 큰일 날 뻔했다. 함께 이 소동에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최는 중심을 잃지 않고 2위를 탈환한다. 순위가 바뀌며 코너를 도는 짧은 순간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쉽지만 최는 중심을 유지하며 레이스를 돈다. 5위로 있던 벨기에 선수 데스멋이 3위로 붙었다.


이제 1위 탈환만 남았다. 지금의 이 어마 무시한 추격 속도로 나간다면 선두 탈환이 문제없다. 온 힘을 다한다. 지난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슐팅은 막바지 최민정의 질주에 위협당한 듯 살짝 힘이 빠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 또한 최후의 질주에 온 힘을 싣고 끝까지 최의 반격을 저지한다. 피니시라인. 힘껏 날을 밀어 보지만 한 끗 차이 0.052 차로 최는 아쉬운 2위. 피니쉬 라인이 조금만 더 멀었다면...

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잘했어요. 잘했어요.!!





은메달도 장한데, 선수는 터지는 울음을 저지하지 못한다. 1.3위 선수는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안으며 자축하는데 최는 왜 그리 우는지.. 마음이 아팠다. 결국 태극기를 흔들며 아이스링크를 도는 메달 축하 퍼레이드를 못하고, 되려 태극기가 흐느끼는 선수를 감싸안는 듯하다.


경기가 끝나고 거의 10분 만에 준비되는 간이 시상식에서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는 선수는 아주 잠깐 웃어 보였지만, 그의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바로 이어지는 공식 인터뷰장 카메라 앞에 선다. 아... 나는 이게 좀 잔인하다 싶었다. 선수들을 좀 가만히 두면 안되는가... 두서없이 흔들리는 음성. 힘들었다는 말 고맙다는 말... 다 필요 없이 훈련과정의 어마 무시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나도 같이 울었다. 젊은이 한 몸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무게가 느껴졌다.

너무 잘했다. 메달과 상관없이 애쓴 모든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다. 체육협회와, 내부적인 문제 등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몸담고 있는 둥지의 요동에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것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불거진 일 외에도 훈련의 과정에서 개인이 겪었어야 할 사정을 다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부담을 뚫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모든 하루하루의 과정들이 경기를 끝내고 아마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당신, 울고 있나요?

이제 그만 울어요.

당신의 울음은 우리의 울음이에요.

당신을 보며 우리도 울었어요.


당신의 그 하루하루를

우리도 보내고 있어요.

우리도 너무 무섭고

우리도 너무 힘들어

당장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몰라요.


당신,

그 긴박한 순간에

질주하던 당신,

추월하며 목표를 향해 달리며

넘어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으며

목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달리던 당신,

당신이 뛸 때

우리도 함께 뛰어요

당신이 추월할 때

우리도 함께 벽을 넘어요

아..

당신이 저지당할 때

우리도 함께 저지당했어요

당신이 울 때

우리도 함께 울어요


그러나,

우린 보았지요.

당신의 질주를 보며

우리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고마워요 당신,

이제 울지 말아요.

당신은 완벽해요.


어떤 순간에도

장미는 완전해요.


내 방 창문 밑에 핀 장미는 이전에 피었던 장미에 대해서, 자신보다 아름다운 장미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신과 더불어 오늘을 산다. 그러므로 장미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장미가 있을 뿐이다. 존재의 어떤 순간에도 장미는 완전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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