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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r 11. 2022

남자 친구 있나요?

초콜릿보다 더 단 

         

삶이 고달플 때 손을 뻗기 좋은 것에 꼭 단 것이 있다. 건강을 위해 익숙해진 설탕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임에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만큼 강력한 한방으로 허기와 쓰라림을 채우고 만져주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이 사두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때 비싸더라도 편의점에 가서 산다. 초콜릿, 스낵을 사 들고 집에 들어오는 날은 배가 고픈 게 아니고 마음이 고플 때이다. 

     

강력한 단 맛으로 순간적으로나마 나를 황홀케 하는 초코바 보다 더 단 것이 있다면, 그런데 그게 건강에 독이 되기보다 약이 된다면, 체중 증가보다 감량을 가져다준다면 금상첨화이다. 그걸 발견했다. 바로 남자 친구! 


     

남자 친구는 얼음을 녹인다.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을 찾아준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준다. 비로소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다. 늘 걷던 그 걸음을 멈추고 진짜 내 걸음을 걷고 싶게 만든다. 사랑에 수반되는 상처받을 용기를 갖게 해 준다. 남자 친구는 사랑이다.   


   

웬 남자 친구 타령인지 궁금하신지요? 사는 게 쓴 맛이라 이도 저도 잘 안될 때 찾아가는 동네 넷000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긴 시리즈 드라마는 폐인 되기 십상이라 발 디디기가 무서워 가급적 피합니다만, 제목도 뻔하고 내용도 뻔할 법한 드라마라 방영 중에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머리 쓰기 귀찮고 정말 편하게 눈요기나 하고 싶어 한번 찾아갔다가 발이 묶여버렸습니다. 여자 주인공 역할의 배우 송혜교 씨는 이전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기억하던 배우였지요. 극 중 남자친구 역의 박보검 씨와 나이차가 꽤 있는데 두 조합이 어울릴까 싶은데 전혀 극 속에서 무리가 없이 잘 녹아들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처음에 초콜릿 타령한 이유가 설명됩니다. 단연코 초콜릿보다 더 강한 단맛이었고, 며칠 내내 여운을 주며 행복감을 주는 드라마였습니다.  

    

달달한 게 당긴다면 드라마 남자 친구를 권해봅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린 비극 <페르시아인>은 페르시아와 아테네의 전쟁 살라미스 전투를 다룹니다. 극에는 아테네인이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남북이 대치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로 따져본다면 남한 사람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셈입니다. 적국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페르시아인들이 울 때 아테네 사람들이 점점 그 안에 몰입하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정신을 고양하고, 자신이라는 섬에서 나와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된 그리스 비극은 현재 미디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던 게지요.      

    

청춘도 아닌 사람이 나이 맞지 않게 젊은애들 드라마를 보고 울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내게 아직 이런 감정이 남아 있는 걸까? 이상한 현상을 지켜보며 그 과정을 글로 풀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드라마의 설정 상황은 뻔합니다. 호텔 대표인 여주인공의 닫힌 마음이 훨씬 연하의 남자의 사랑 앞에 열리고, 성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백마 탄 왕자는 오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지라,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시간 낭비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예쁘고 잘생기고, 삶의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는 다 생략되어, 항상 정리되어 있는 깨끗한 집, 화려한 호텔, 기업 총수, 멋진 자동차,...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같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박탈감만 더 줍니다. 드라마를 보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슬픈 경험이 있으신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잠시 현실을 잊고 그 속에서 눈요기하고, 대리 만족하는 정도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그 뻔한 드라마가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1. 드라마 속의 여자 주인공 수현은 바로 우리의 모습니다.    

  

여자 주인공 차수현의 별명은 얼음공주입니다. 웃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겁나게 예쁩니다. 전 서울시장이었던 아버지의 정치활동을 돕기도 했고, 한국의 가장 유력한 기업의 며느리가 됩니다. 물론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고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결혼입니다. 2년도 되지 않아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이혼하며 위자료로 받은 동화호텔을 경영하는 대표가 됩니다. 원하지 않는 결혼과 요구받은 이혼. 깊은 아픔이 있음에도 겁나게 매력적입니다. 허걱! 

     

겁나게 예쁘거나, 탄탄한 재력과 능력을 가졌거나 하는 드라마적인 요소만 살짝 제거한다면, 수현이나 나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삶이 아니라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삶이라는 점에서 이게 바로 대부분의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현은 어떻게 삶의 궁지에서 탈출하게 될까요?      



2. 드라마 속의 남자 친구 진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갑갑한 현실을 사는 수현에게 짠 하고 나타나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진혁은 하필 잘생겼고, 착하고, 티 하나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물입니다. 거대한 재벌가 아닌 평범한 과일가게 집 아들이라는 사실을 빼고는 모두 완벽해 보입니다. 적어도 드라마 안에서 진혁은 다른 고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저 수현만 지켜주면 되는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현실성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드라마에서조차 구질구질한 현실을 좀 잊어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실성 없는 진혁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처음엔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저렇게 사랑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나를 저렇게 사랑해준 것이 있는가? 솔직히 불쾌해집니다. 누구 약 올리나? 오히려, 주변의 조연으로 나오는 인물들의 지질한 모습이 더 나와 닮았습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내 인생이란 게....    

  

그런데, 진혁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실제 나의 삶에서도 부분 부분, 아주 살짝씩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행하기도 했고 누군가로부터 받아보기도 했던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그 가치들을 생각하게 나는 인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남자 친구 진혁의 모습은 내 삶의 어디선가 부분 부분 만났던 모습입니다.       



3. 사랑의 힘으로 성장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결론은 사랑입니다. 얼음을 깨고 나오게 되는 건 사랑의 힘입니다. 뻔합니다. 그래서 재미없을까요? 뻔하기에 마음을 건드립니다. 공감합니다. 


나는 꽤 살았습니다. 나도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사랑을 위해 살아보려 애썼습니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주변 사람처럼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계산을 하기도 하고, 관계보다 가치를 따지며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Money talks라는 속담을 되뇌며 결국 자본에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라는 고민 앞에서 거대한 현실로 이상의 목소리를 잠재웠습니다.  아이들은 일류로 키우고 싶어 안달을 부렸습니다. 남편을 청와대 입성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던 수현의 엄마는 결코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정치 인생이 어디서부턴가 꼬이면서 발을 빼지 못하고 결국 딸아이를 원하지 않는 집안에 결혼하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역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현실을 따지며 계산하는 모습을 보이는 어느 비서의 모습에서도 나를 보았습니다. 아들이 받을 상처가 두려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위험한 사랑에 인생을 거는 아들을 말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나를 보았습니다. 이상하지요? 모든 인물들에서 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인물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사랑의 중심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드라마니까요.     


얼음공주는 웃음을 찾아가고, 타락하던 정치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됩니다. 욕심의 끝판왕이었던 정치인의 아내 역시 양심 고백과 함께 자기가 좋아하던 갤러리로 돌아갑니다. 격이 맞지 않다고 망설이던 사람도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랑을 합니다. 쿠바의 비치에서 시작된 두 남녀의 사랑은 몇 번의 시련을 통과하며 결국 재회합니다. 그들의 입맞춤은 그래서 더 뜨겁습니다. 

     

저런 남자 친구가 현실에 있냐고요? 있습니다. 한 인물에게서 찾으려 하면 절망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저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여기저기서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일으켜주고, 내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내가 못한다고 할 때, 나는 너를 믿노라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것은 눈앞의 사람이기도 했고, 책 속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는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겁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 때 다 배웠다는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이미 다 배운 걸 현실에서 살아내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결국 산다는 것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유치한 드라마가 나를 이렇게 감동시키는 것을 보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배우들이 고마웠습니다. 책으로 다른 도구를 통해 전달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연기를 보며, 내 마음의 길을 무진장 여행했습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라 눈이 호강했습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장소를 보여주어 대리 만족도 했습니다. 쿠바의 그 해변 저도 가보고 싶어 졌습니다. 에피소드 시작할 때마다 에피소드를 암시하는 동화 영상도 멋스러웠습니다. 왜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 영화를 만드는지, 이들이 왜 우리 삶에 필요한 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너무나 많은 나를 만나게 되더군요. 그리스 비극은 옳았습니다. 그것이 시원이 되어 영화, 소설, 공연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야기가 심금을 울립니다. 이야기가 말을 걸어옵니다.      


아직도 드라마의 여운 속에 이 글을 씁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어떤 설교보다, 어떤 책 보다 내게는 달콤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시적인 달콤함으로 다시 단 게 당기는 중독성이라기보다 삶의 지평을 열어주는, 시야를 열어주는, 울림을 주는, 온기를 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짧게 농축해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긴 드라마 보는 것 이제 체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잊고 있었던 남자 친구를 다시 소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남자 친구가 되어야겠다고도 생각해봅니다. 


당신, 남자 친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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