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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Feb 28. 2022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선생님, 당신을 추억합니다


.      

1934-2022

당신의 일생을 함축하는 숫자가 기록되었습니다. 2022년 2월 26일 이전에는 오른쪽의 숫자가 없었는데, 26일부로 오른쪽의 숫자가 채워졌습니다. 당신은 이제 이곳에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이곳 사람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 계신가요?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 문화부 장관, 소설가, 시인, 수필, 희곡작가, 기호학자... 따라붙은 수식어가 많은 당신은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며 88년의 생애를 살며 이 땅에 많은 이야기를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지성의 대명사였던 당신은 학계를 너머 문화부 장관의 역할을 하며 이 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방 작은 나라 아닌 서방 유럽 어느 강대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당신의 영향력은 더 파급력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당신이 언제부터인가 관심 영역이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며 종교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어 세간에 많은 설전을 일으키게 하기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영상에서 확연히 수척해진 모습을 보며 당신의 모습을 이 세상에 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이 땅을 훌훌 떠나는 당신이지만 이곳에 남은 사람의 안타까움으로 당신을 추억합니다. 그리고 소급하는 당신의 지난 이야기로 철저히 당신다웠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1. 겁 없는 언어의 투사      



대학 2학년 때 기존 문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중아일보 기사로 나올 만큼 사회적 파급효과가 컸다. 젊었으니까, 지적인 확신이 누구보다 강했으니 그는 겁날 것이 없었다. 기라성 같은 기존 문단을 향해 ‘우상을 파괴하라’는 도발적인 도전장을 내밀었던 사람이었다.

     

1950년대--또다시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의 깃발은 빛나야 한다.
무지몽매한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그렇듯 고가(高價)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제물로 바치던 우울한 시대는 지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금 가고 낡고 퇴색해 버린 우상과 그 권위의 암벽을 향하여 마지막 거룩한 항거의 일시(一矢)를 쏘아야 할 때다.
우리는 조소한다. 고루와 편협을 자랑하는 아나크로니스트들의 가소로운 독백과 관중의 덧없는 박수 속에 '자기(自己)'와 '트릭'마저 상실해 버린 마술사의 비극을 조소한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 공허한 우상의 자태--그것은 우리 사색(思索)의 선혈을 흠씬 빨아먹고 교만한 웃음을 웃는 기생충의 모습이다.
그러나 구경(究竟) 낡은 유물은 그 낡은 구세대의 시간과 더불어 소진(消盡)되게 마련이며 혹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 정좌한 골동품으로서의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우상은 우리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다. 표피(表皮)를 스치고 지나가는 일진의 광풍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그 거추장스러운 달팽이의 껍데기를 등에 지고 다닐 필요는 없다. 혈혈단신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50유년의 신문학 시대 그것을 과도기나 초창기의 혼란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다. 우리는 이 문학 선사 시대의 암흑기를 또다시 계승할 아무런 책임도 의욕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이 출발해야 될 전환기인 것이다. 우상을 파괴하라! 우리들은 슬픈 아이코노클라스트, 그리하여 아무래도 새로운 감격이, 비약이 있어야겠다.

-한국일보, 1956년 5월 6일     



2. 양심에 따라 소신을 밝히는 용기      



1966년 작품 <분지>로 용공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소설가 남정현의 증인으로 출두했다. 법정에서 이루어진 문답을 보면 그는 권력 앞에 비굴하게 숨지 않고 작품으로서의 창작성이 정당함용기있게 주장했다.   

변호인: 이 소설이 반미적인가?
이어령: 이 소설은 하나의 상징이므로 찬미도 반미도 아니다.
변호인: 저항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어령: 문학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아무리 평화 시대라도 작가는 저항성을 지닌다.
변호인: 북괴에 동조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어령: 작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장미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지 사람에게 담배 파이프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정현의 <분지>는 창작 과정의 꽃이다. 그가 만일 다른 의도로 썼다면 상징적, 우화적 수법이 아니라 준거가 확실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썼을 것이다.
변호인: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다. 증인은 이 소설이 용공적이라 보지 않는가?
이어령: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자는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자는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소설이지 신문 기사가 아니다.



3. 기다리기보다 바꾸려는 능동가      



시인 김수영과의 토론에서 이어령은 참여문학의 소심증을 지적하며, 규제하는 상황에 눌려 침묵하기보다, 발표될 수 있는 작품으로의 창작의지를 강조했다.      


이어령: 불온한 작품이 서랍 속에 있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밖에 내놓을 때 비로소 그 문학은 참여하는 것이다. 봄이 오듯 영광된 사회는 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자는 것이다.    
김수영: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문화의 본질은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말하는 오도된 참여론자들은 교정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한번 상실한 정치적 자유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 있다.     



4. 독창성이 돋보이는 관찰가     



1963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통해 한국인의 특성에 대한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관찰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제목도 풍토의 순서를 바꾸고 우리말로 풀이해서 '흙속에 저 바람 속에' 식으로 나타내는 등의 독창성을 보였다.  

    

일본에 대한 기존의 시선과 새로운 관점에서 일본을 표현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서가에 꽂힌 책들, 그중 이 당돌하고도 무모한 모험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 「발가벗은 임금님」이 그런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군중이 만들어 낸 환상의 옷을 통해서만 임금님을 바라본다. 남들이 모두 떠들어 대니까 임금님이 발가벗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잘못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잠자코 있다. 그러므로 임금님의 알몸을 발견한 것은 아이들의 눈이었고, 동시에 큰 소리로 그것을 말한 것도 아이들의 입이었다.     



5. 88 올림픽의 개회식, 폐회식의 기획자      



화합과 전진이라는 문장을 바꿔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를 만들어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표현했다. 개막식에서 등장한 굴렁쇠 소년 역시 이어령씨의 기획이었다.      

왜 문학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주경기장으로 옮긴 것일 뿐이다     -이어령-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감독을 지낸 예술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는 88 올림픽 개회식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아테네 올림픽에서 어린 소년이 종이배 모양의 보트를 타고 물을 가르 지르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6.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벌판에 집을 세우러 가는 목수이다. 목수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문화부의 네 기둥을 다 세워놓고 나는 떠난다. 그때 정말 이 집주인이 올 것이다     


장관 취임사에서 떠나는 이야기를 했다. 초대 장관으로서 집의 기둥을 세우고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외국어 로드 숄더를 갓길로 바꾸었고, 한예종을 설립, 국립 국어연구원을 발족,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 수립 등이 재임 중에 실시되었다.   

 

  

7. 2006년 디지로그 개념 창출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급변하는 양극화 상황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는 역할로서의 디지로그 개념 (디지털 + 아날로그)을 창출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나이(시간)도 마음도 새로 먹는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파워가 2006년 희망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8.  2007년,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트랜스포메이션     



2007년 기독교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1970년대 무신론 편에 서서 기독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과는 완전 다른 노선에 서게 되어 예수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동안 느꼈던 고독이 신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하와이에서 살던 딸 이민아 목사의 실명 위기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다.                



9. 생명자본주의 개념 강조      



전쟁 직후 단칸 셋방에서의 신혼생활 기간 유독 추웠던 겨울날의 회상을 기록한 다음의 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탄불이 꺼져 방안의 어항까지 얼어 금붕어들이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물을 끓여와 조심스럽게 어항에 붓게 된다.  

    

얼음의 돋보기 효과 때문이었는가. 유난히도 큰 금붕어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주전자에 물을 끓여왔고 나는 급히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어항 속에 물을 쏟았다.     
입김 같은 수증기가 올라오면서 어항이 숨 쉬는 소리를 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살얼음 사이에서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헛본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했던 것인데 정말 금붕어들은 꿈틀거리더니 헤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 매서운 추위는 문고리도 흔들지 않고 내 신부의 방과 너희들의 어항을 침범했다. 얼어붙은 너희들을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우리가 한방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나의 추위가 바로 너희들의 추위였다는 것. 나에겐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지만 어항 속 겨울을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지내온 거다.     
너희들 이름처럼 빛과 환희, 꽃피는 축제의 생명을 위해 오늘 아침 우리는 함께 겨울과 싸웠다. 그리고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났다. 한 주전자의 끓는 물이 온 방안의 냉기를 생기로 바꿨다. 미안하다. 절대로 다시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겠다. 맹세 하마. 그리고 아내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건 내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맹세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갑자기 온 세상이 금붕어의 지느러미처럼 반짝이며 헤엄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언 잉크병이, 아내의 화장대와 방바닥에 벗어놓은 때 묻은 양말, 일상의 얼룩과 먼지들까지도 일제히 수면으로 떠올라 금붕어처럼 숨을 쉰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죽음과 생이 이마받이를 하는 전율의 순간, 추위를 밀어내면서 잠시 아주 잠시 동안 나는 어항인지 모태인지 모를 따뜻하고 조용한 공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슬프기까지 한 그곳은 이미 10제곱미터의 단칸 셋방이 아니었다.
금붕어의 어항이 그것들이 태어난 강물과 바다로 이어지면서 지구 크기의 생명권으로 번져나간다.


2013년 출간된 책 「생명이 자본이다」에서 이어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다음 키워드로 생명을 제시한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경제 패러다임 중에서, 산업자본주의가 가진 병폐는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고 있었고 미국을 필두로 하는 금융자본주의 역시 2000년대 후반을 강타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그 그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의 경제 이념은 돈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상생을 위한 생명의 자본주의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어령은 주장하고 있다.     




10.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된 열정적인 집필가      



이어령씨는  「젊음의 탄생」, 「유쾌한 창조」, 「우물을 파는 사람」, 「가위바위보 문명론」, 「보자기 인문학」 등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팔십에 접어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창작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올해 1월 24일 죽음에 관한 신학적, 인문학적 성찰을 다룬 <메멘토 모리>를 출간했다.      




위의 내용은 아래 나무위키에서 참고하였습니다.

https://namu.wiki/w/%EC%9D%B4%EC%96%B4%EB%A0%B9






88년이라는 인생이 이리도 다양할 수 있음이 놀랍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아니겠지요? 당신의 천재성은 또 일상에는 소홀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한때 딸에게는 따뜻한 아버지가 못되었고, 강의를 듣는 평범한 학생들에게 친절한 교수는 못되었고, 굵직하고 다양한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실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삶의 이력에서 삶을 누구보다 솔직하고 치열하게 살아간 용기를 발견합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변화하며 시대와 함께 당신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칭송받던 지성조차 변화가 필요하다면 과감히 변화에 몸을 내던졌습니다.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기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사망 한 달 전에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몰고 갔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이제 흙속에 바람 속에 사라졌지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 당신이 남긴 책을 통해 당신을 천천히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의 품에 안긴 당신, 편히 쉬십시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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