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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r 15. 2022

빅토르 위고, 사랑과 자유의 찬가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1998년 초연한 노트르담드파리 뮤지컬 공연을 영상으로 보고 뮤지컬 앓이를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마침, 파리 오리지널 팀의 마지막 앙코르 내한공연이 있어, 우여곡절 끝에 관람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노트르담드파리는 단순히 성당 종치기 꼽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도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작품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의 민중의 노래가 오버랩되는 것은 이 극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사랑, 시대에 갇힌 내면의 고통,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을 내포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각도로 생각해 볼만한 거리가 많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품 이야기에 이어 직관한 뮤지컬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자 한다.      


I. 빅토르 위고 그리고 시대적 배경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위해 투쟁한 정치인이자 혁명가였다. 단지 작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현장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다. 보통사람들의 자유를 위한 저항인 프랑스혁명(1789-1794)이 현실에 뿌리내리는 데에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나폴레옹 정권이 실각한 뒤 권력을 회복한 부르봉 왕실의 샤를 10세는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를 펼치고, 1830년, 언론과 출판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작품이 발표된 1831년은 경제 불황에 시달리던 프랑스 민중이 봉기한 7월 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7월 혁명이 일어날 무렵, 빅토르 위고는 인도주의와 자유주의로 기울기 시작했고,  1843년 딸의 죽음 이후 10여 년간 문필활동을 중단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제정을 수립하려고 하자 반대하며, 영국해협의 저지섬과 간디섬에서 19년에 걸쳐 망명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다양한 집필활동을 하며 작가로서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기를 보내는 데 <레미제라블 (1815)>은 이 기간에 쓰인 작품 중 하나이다.   

   

자유를 향한 그의 여정이 강렬하게 녹아있는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 프랑스혁명 26년 후인 1815년 발표된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현실에서 저지당하는 민중의 항거를 표현했다. 노트르담드파리에서 클로팽을 비롯한 집시 무리들의 노래와 절규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된다.     


영화 레미제라블 중 민중의 노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1831년에 발표된 노트르담드파리의 배경은 1482년 파리이다. 15세기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였다. ‘백년전쟁’, '페스트‘등으로 빚어진 혼란과 황폐 속에서 봉건귀족과 교회가 타락을 거듭함에 따라 중세사회는 허물어지지 시작했고, 르네상스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고,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고, 민중은 ’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기도 했다.   

   

중세시대의 시작과 함께 강화되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막강한 권력만큼 부패의 온상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바로 중세의 핵심 권력인 교회, 봉건 세력들을 상징한다.

 

    

II 작품 속으로      



1. 변화의 시대      


1막을 여는 넘버 2 <대성당의 노래>를 통해서 시인 그랑그루와르는 새천년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암시를 하며 시대의 변화를 예고한다.  

    

<대성당의 노래>  

아름다운 도시 파리
전능한 신의 시대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우리는 무명의 예술가
제각각의 작품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훗날의 당신에게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던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돌 위에 돌들이 쌓이고
하루 또 백 년이 흐르고
사랑으로 세운 탑들은
더 높아져만 가는데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 안으로 들게 하라
세상은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 년이라고

       

2막을 여는 넘버 1 <피렌체>에서 신부 프롤로와 시인 그랑그루와르가 주고받는 이 노래는 의미심장하다. 중세시대의 오만함을 깨고 다가올 새로운 세상의 갈망이 엿보인다.    

  

<피렌체>

피렌체와 르네상스
이야기를 들려다오
브라만트와 단테의 지옥편을 들려다오
피렌체에서는
지구가 둥글 거라 하고
지구 상에는 또 다른
대륙이 있을 거라 하네
배들은 벌써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을 향해 떠났네
루터는 신약을 다시 쓸 것이고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서 있네
구텐베르트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뉘른베르크 인쇄소에서는
쉴 새 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는데
연설문과 팸플릿
새로운 생각들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작은 일은 항상 큰 일들의 일부에서 오는 법
그리고 문학은 건축을 파괴할 것이다
교과서는 대성전을 파괴시키고
성경은 종교를, 인간은 신을 파괴할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탐험선은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을 향해 떠났네
루터는 신약을 다시 쓸 것이고
우리는 분열시대의 문턱에 서 있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피렌체. 그랑그루와르 역 브루노 펠티에(Bruno Pelletier)와 신부 프롤로 역 다이엘 르부와 (1998년 공연)

    

2. 자유를 위한 저항      



사람들의 갈망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춤과 노래에서 여과 없이 표현된다. 단단하게 닫힌 성당의 문을 열고 이교도와 버림받은 걸인들을 들여보내 달라고 절규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넘쳐 난다.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다.

     

 <거리의 방랑자들 >  

우리는 이방인 부랑자들
갈 곳이 없는 떠돌이들
오 노트르담 우리가 쉴 곳은
어디, 어디
수천의 발길이 성 앞을 떠노네
이제 곧 우리는 수만 명이 되고
수십 수백만의 쉴 곳은 어디인가
어디, 어디
우리의 발길이 떠도는 이곳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의 성문 앞
세상이 변하고 바뀌는 그날에
이 성은 우리의 세상


거리의 방랑자들. 클로팽 역 뤼크 메르빌(Luck Mervil) 1998년 초연 장면



3. 사랑에의 갈구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성의 사랑의 갈구는 존재의 목마름으로 들렸다. 신부는 자신의 제복 안에 감춰있는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약혼자가 있는 근위대장 역시 에스메랄다를 향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한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추한 외모의 콰지모도 역시 거절당할 사랑으로 괴로워한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다. 종교, 지위, 관습, 계급 등에 가리어진 인간성의 절규였다. 그중에서도 곱추 콰지모도는 가장 버림받은 나약한 존재의 상징이다.  

    

<belle>

Bell - 콰지모도
눈부신 그녀를 위해 있는 말
새처럼 날갯짓하는 그녀를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볼 때면
난 마치 지옥을 걷고 있는 기분
그 치맛자락에 붙들린 내 눈길
이런 내 기도의 의미가 있을까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
이 땅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자
오 루시퍼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오 에스메랄다

Belle -프롤로 신부
너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가
신을 향한 내 눈을 사리는가
너로 인해 눈을 뜬 욕망에 갇혀
저 하늘을 더 바라볼 수 없도록
원죄의 숙명을 안고 사는 그녀
그녀를 향한 욕망은 죄악인가
이 천하고 더러운 한 여자의 등에
인류의 십자가가 놓여 있는가
오 노트르담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오 에스메랄다

Belle -근위대장 페뷔스
검은 너의 두 눈 유혹의 눈빛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지
무지개처럼 치마를 휘날리며
춤추는 건 내게 마법을 걸지
사랑이여 제발 날 용서해 주오
신성한 결혼의 언약을 저버린
그 누가 네게서 눈을 뗄 수 있을까
그대로 굳어 돌이 된다 해도
오 플레르 드 리스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원하는 사랑은 에스메랄다
그 치맛자락에 붙들린 내 눈길


Belle. 2020년 공연장면

  


4. 삶을 희망하다      


세 남자 (결국 모든 남자, 모든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에스메랄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마녀가 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극 중의 나이는 16세. 어리디 어린 순결한 영혼이다. 부모 없이 떠도는 집시인 그녀는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한다.영화 장면에 에스메랄다가 데리고 다니던 염소가 있었는데 염소는 죄를 사하기 위한 희생제물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에스메랄다와 늘 함게 따라다니는 염소는 희생제물의 의미로 읽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욕망을 투사하여 그 대상을 처형하고 자신은 면죄를 받는다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없이 죽음에 처해지는 에스메랄다의 노래 <살리라>는 그래서 강한 삶에 대한 희망의 찬가이다.

   

<살리라>

밤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혼자 외롭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여전히 노래 부르고
춤추고 웃는 것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사랑을 받아 보기도 전에
살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리라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주리라 받기를 바라지 않으리
자유롭게
파문도 없고 금기도 없는
삶을 택하리라
자유롭게
세례라면 빗물로써 받았지
살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리라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주리라 받기를 바라지 않으리
우리를 갈라놓은 이 두 세상
언젠가 하나가 되려나?
아! 진정 믿고 싶어라
내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목숨을 바치리
역사를 바꿀 수만 있다면
살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리라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주리라 받기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리라 밤이 낮을 사랑 하듯
사랑하리라 그 사랑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에스메랄다 역 엘렌 세가라 (1998년 공연)


변화의 시대. 중세의 어두운 벽을 허물어 억눌린 자유를 포효하는 시대의 아픔과 갈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각 인물들은 그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사실은 살고 싶다는 절규다. 극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사람들의 절규는 쟁쟁하게 울린다. 지금 이 시대에도 무관하지 않은 절규라 같이 아프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기뻐하게 된다.


           

III. 뮤지컬 소회      



초연작의 명성은 늘 차기작에 부담을 준다. 그래도 라이브로 프랑스 오리지널 팀에 대한 기대를 안고 공연 1시간 전에 도착하여 워밍업을 하고 앞자리에 착석을 했다.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긴 시간 집중하며 연기를 위해 애쓴 모든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특히, 집시족들의 군무를 맡은 댄서들의 화려하고 능숙한 춤, 연기, 그리고 노트르담 성을 구현한 무대장치, 조명등이 돋보였다. 댄서들의 아크로바틱,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춤 실력은 압권이었고, 바보들의 축제 등 합창 군무에 등장하는 바리케이드를 이용한 군무 장면은 역동적이었다. 초연작과 달라진 부분은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의상, 전투복 등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렸던 점이었고 참신했다. 에스메랄다의 감옥신 무대 배경도 현대적 감각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콰지모도의 종 노래에서의 춤, 마지막곡 에스메랄다를 나타내는 세 댄서들의 공중위에서의 춤들은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멋진 공연이었다.    


   

대나무 숲에게


지금부터는 대나무 숲에만 하는 이야기니 듣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화려하게 진행되는데, 왜 감정이 이입되지 않을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가 되면 이제 극적인 전개가 이어지니 콰지모도와 극 중 인물들에 몰입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오케스트라 현장 연주가 아니고 녹음음악의 사운드는 귀를 너무 때렸고, 배우들의 음성이 배경음악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콰지모도도, 에스메랄다도 이상하게 낯설었다. 신부 프롤로는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나 신부의 고뇌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페뷔스의 고뇌도 내게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페뷔스의 약혼녀의 노래는 복잡한 감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가장 감동적인 노래 중 하나인데, 갈등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야멸참이 쉽게 드러났다. 내가 애정 하는 <벨 belle>도, 에스메랄다의 <살리라>도, 마지막곡 콰지모도의 <에스메랄다여 춤춰요>도... 내 마음에 남는 노래가 없었다. 그저 강렬한 댄스만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는 손에 잡히긴 하다.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사운드였다. 현장 오케스트라 음악이 아니었기에 사운드 상태의 퀄리티가 높지 않았다. 음악을 꿰뚫고 나오는 배우들의 소리 너머의 힘이 약했다. (이걸 나는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댄서들의 댄스가 너무 강조되나 보니 극 전체가 산만했다.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댄서들의 소리도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극의 효과가 강하게 강조되다 보니 정작 집중해야 할 부분이 흐려졌다. 잔뜩 화려하게 준비한 진수성찬을 먹고 배는 부른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 짬자면을 먹고 온 느낌이랄까... 스케일 큰 극을 담아내기에 무대가 작아 보이기도 했다. 차라리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었으면 어땠을까?  

    

여하튼,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뮤지컬 생각이 날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너무 많은 기대가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재관람하실래요?

아니....      


덧붙임. 2022년 - 노트르담드파리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앙코르 공연 배역. 초연때와 다른 더 젊어진 배우들이다. 밑줄은 내가 관람한 공연의 라인업. 계속되는 성장을 응원한다.


콰지모도 : 안젤로 델 베키오(Angelo Del Vecchio), 막시밀리엉 필립(Maximilien Philippe)

에스메랄다 : 엘하이다 다니(Elhaida Dani), 젬므 보노(Jaime Bono)

그랭구와르 : 존 아이젠(John Eyzen), 플로 칼리(Flo Carli), 에릭 제트네(Eric Jetner)

프롤로 : 솔랄(Solal), 로랑 방(Laurent Ban)

페뷔스 : 플로 칼리(Flo Carli), 에릭 제트네(Eric Jetner)

클로팽 : 제이(Jay), 이삭 엔지(Isaac Enzi)

플뢰르 드 리스 : 엠마 르핀(Emma Lepine), 젬므 보노(Jaime Bono)     






노트르담 너를 보내며


1998년 초연 공연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영상이지만, 그들의 커튼콜 음악이 흐르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여하튼, 소원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1998년 작품을 직접 보고 싶은 것이다. 이번 뮤지컬을 보고 얻은 귀한 수확은 초연 공연의 뛰어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불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불어로 하는 노래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만큼 언어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한국어로 번안된 노래는 아무래도 원어만큼 전달이 안 되는 아쉬움이 있다. 프랑스까지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멋진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지만, 몇백 년 전의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음이 고맙다. 또 다른 노트르담드파리를 기대하며 빅토르위고의 찬가를 마음에 묻는다.


뮤지컬덕분에 빅토르위고를 만났다. 노트르담드파리의 배경이 된 15세기나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9세기나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나 다르면서도 닮은점이 많다. 하나가 또다른 하나를 변화시키는 변화의 시기이다. 빅토르위고는 시대의 변화를 갈망하며 어둠을 뚫고 자유와 사랑의 삶을 살아내고 싶은 열망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우뚝솟은 첨탑이 숨막히게 하던 압력에도 '살리라'는 에스메랄다의 절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사랑하리라 밤이 낮을 사랑 하듯

사랑하리라 그 사랑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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