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煞):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
나는 프로 출장러다. 업무 출장이 많으니 그리 부르련다. 내 역마驛馬 인생의 서막은 2016년 시월이었다. 요맘때 같이 쌀쌀하던 그날. 해외 인턴십을 마치고 이런저런 필수 어학자격(토익, 오픽, 델레)을 획득하며 백수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서류가 준비되었을 때였다. 시험 삼아 사람인에 이력서를 올려 보기로 했는데, 올리자마자 한 회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 회사는 첫인상부터 희한했다. 내일 면접을 볼 수 있느냐고 발등에 불 붙은 사람처럼 서둘러 면접 일정을 잡았다. 편견 없는 열린 마음으로 그 회사를 봐야겠다 싶었던 건지, 마음에 가을바람이라도 불었던 건지, 나는 다음 날 출타하여 면접을 보았다.
이 회사의 면접 질문은 한층 더 희한하였다. 면접 자리에서 해외 출장이 잦아도 괜찮은지, 다녀와본 나라 중 생활 여건이 가장 좋지 않은 곳은 어디였는지부터 묻는 것이었다. 제 학교 생활이나, 인턴, 대외활동은 안 궁금하신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대단히 당당하게 답하였다. 해외 출장이 잦은 직업은 꿈꾸던 바이며, 살아본 환경 중 가장 열악한 곳이라면 멕시코에서 온수와 샤워기가 없는 집에서 살아봤다, 총기 강도는 뉴스거리도 안 되는 최악의 치안불안국 과테말라 시티에서도 1년을 지내보았다, 고 답변하였다. 이때, 면접관의 얼굴이 한층 밝아짐을 느꼈다. 면접관은 나는 스페인어 전공이지만 출장은 중남미 외의 국가로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거기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소화 가능한 업무를 하러 가는 것이라면 다른 언어권 국가로의 출장도 문제없으며, 오히려 낯선 국가를 다니게 되면 즐거울 것 같다고 답하였다. 이제 그의 눈은 반짝여 보이기 까지했다.
나는 그들이 꿈꾸던 적임자였던 걸까. 예의가 바르지만 약간 돌아 보이는 아이. 착실하게 살아왔지만 위험과 모험에 환장하는 아이. 그 요상한 인터뷰를 마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합격 통지를 받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희한한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
그 회사에서의 첫 달은 아직도 기억 속에 강렬하다. 합격 소식을 전하며 당장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람이 퍽 급한가 보구나, 싶어 최대한 일찍 입사하였다. 취업 준비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이력서를 올린 지 72시간도 되지 않아 받은 전화였다.) 더 좋은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취준생이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더 쉬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국으로의 출장이라는 환상이 자꾸 어른거렸다. 입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큰맘 먹고 서둘러 입사했으나 막상 출근해서는 내 앞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며칠간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심심. 쩝.
몇 날 며칠 가만히 앉아 퀭하게 보내는 날이 계속되던 차, 상무님이 드디어 업무 지시를 주었다.
네? 갑자기요? 요르단을요? 내가 처음 받았던 업무 지시가 요르단 출장이었다. 한동안 나는 박근혜가 중동으로 보내버린 청년, 현실판 미생 장그래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그리고 입사 한 달이 되지 않아 요르단 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비행기 안에서도 실감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 동화 같았다. 내가 중동을?
그리고 그 이후로 꾸준히 해외 출장을 다녔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그 회사에서 지냈던 4년간 27번의 해외 출장을 나갔었다. 한 달은 한국, 1-2주는 외국, 한 달 다시 한국, 1-2주 다시 외국. 그런 패턴이었다.
꽤나 견고하던 그 패턴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기운이 크게 꺾였다. 전염병으로 인해 해외 출입국에 제약이 생겨 출장을 다니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해외출입국자에 대한 각국의 방역조치(국경 폐쇄, 2주 시설격리 등)로 인해 단기 출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일에 미쳐있는 한국인들은.. 번번이 해내지요.. 한 번에 장기로 아주 해외로 보내버리는 해결책이 고안된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2020년 작년 한 해는 해외에서 보낸 날이 가장 길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각국이 국경을 닫던 그해, 나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여파로 휴직과 실직이 폭증하던 때, 나는 이직을 했다.
캄보디아 후속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올해, 2021년. 어쩐지 쉬울 것만 같았던 모든 일들이 자꾸만 미루어진다. 본래 계획대로였다면 올 6월에는 캄보디아에 다시 갔어야 하는데 사업이 찔끔찔끔 미루어지더니 벌써 10월이 되었다. 이번 달은 꼭 출국하자- 출국하자- 팀 전체가 엉덩이 들썩들썩 바라고 또 바랐건만 쉽지 않다. 오늘은 또 새로운 비보가 날아왔다.
뭐. 그렇죠.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오를 것 같다. 출장 준비만 4개월째. 수많은 아파트의 availability check과 price offer는 왜 받았는가... 날짜가 바뀌면 새로 해야 할 것을... 언젠가 가기는 가나... 가기는 가겠지... 한숨 깊어지는 수요일.
이 글은 새소식이 있을 때 돌아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