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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Dec 15. 2022

쇠락해가는 개미지옥 속에 뛰어들기,「조선소」

몰락 속에 몸 던지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면

추운 날과 어울리는 절망의 책


훌쩍 겨울이 왔다. 나에게 겨울은 눈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한결같이 살기 힘겨운 계절. 겨울바람이 맨살을 긁고 지나갈 때면 추위에 떠는 것인지 분노에 치를 떠는 것인지 알 수 없도록 벌벌 떨고는 한다. (엄살을 떨고 있을 심산도 있다.) 계절에 기대어 욕지거리, 화풀이를 일삼는 날들. 하지만 이제야 12월, 겨울의 초입이다. 날이 갈수록 더 검고 쓸쓸해질 계절에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의 「조선소」를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냉소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어찌나 계절과 잘 맞던지 추적추적 눈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밟자마자 구정물 진창이 될 눈길을 저벅저벅 걸으며 라르센에 대해 곱씹어보는 울적한 낭만을 즐겨보고 싶었다.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읽기 어려웠다. 현학적으로 쓰였다거나, 철학적 수사로 인해 읽기 어려운 글들과는 다른 결로 가독성이 매우 떨어졌는데, 책이 전반적으로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탓이다. 소설 속 산타마리아에서 이미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 전개되는 소설 때문에 자주 어리둥절해지고는 했다. 무슨 말이야, 나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하면서 말이다.




중남미 문학 세션, 마지막 모임


오지 않을 것 같던 날도 결국엔 오기 마련이다. 끝에 쉽게 닿지 않을 줄 알았던 중남미 문학 세션이 준비한 책들을 모두 읽고, 벌써 마지막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대욱님, 열음님과 중훈님과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나누었다.


이 책의 첫인상은 물음표


우리가 이 책에 대해 공통적으로 내놓은 첫인상의 느낌은 '알기 어려움'이었다. 읽고 읽어도 이야기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 낯섦이 참 오래도록 지속되어서 책의 중반부가 돼서야 '재미'를 찾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소설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네티 특유의 글쓰기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오네티의 산타마리아


작품의 배경과 인물에 대한 설명이 최대로 절제되어 있다. 그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해 순전히 책을 읽어가며, 인물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소설 속에 빠져드는 속도가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네티는 여러 작품들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세계관 속에서 각 작품들을 전개해나가면서도 작품들이 서로 소통하지 않도록 글을 썼다는 점이다. 같은 장소와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세계관(산타마리아)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한편, 각 이야기의 레이어는 엄격하게 유리해둔 듯하다. 그 와중에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목소리는 마치 산타마리아를 오래도록 지켜봐 온 이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풀어놓아서, 한국의 어리숙한 독자들은 소설 중반이 다 되어서야 이야기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몰락 속 처절한 인간의 광기


인간사는 영고성쇠라 했는가. 이 책은 한때 번성했으나 이제는 몰락해가는 산타마리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은 조선소의 몰락을 기점으로 나아질 기미 없는 쇠락의 길에 접어든지 오래인 산타마리아를 그린다. 진실한 희망이라곤 한 점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남는가? 산타마리아 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체념한 사람들과 거짓 망상에 매달려 분주하게 제자리 걸음을 걷는 사람들. 어느 쪽이든 삶은 무용하다는 점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큰 비극이다.


떠오른다... 떠올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조선소」를 읽고 떠오른 작가와 작품이 다양하게 호명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스토옙스키가 많이 떠올랐다. 황망하고 쓸쓸한 겨울에 영원히 갇혀버린 사람들... 


프란츠 카프카

열음님은 쿤스와 갈베스, 이 두 인물들을 보며 카프카의 작품들이 떠올랐다고 하셨다. 카프카의 장편 소설에는 항상 이상한 짝패가 등장하고는 하는데, 쿤스와 갈베스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지셨다고 한다. 어둡고 허무함이 계속 지배하는 세계 또한 유사하다.


「모렐의 발명」

이 작품 또한 열음님이 언급해주셨다. '게임', '유령'이라는 키워드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무인도로 도망친 주인공이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훔쳐보다가 종국에는 한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랑에 빠진 이후로 그 무리에 다가가지만 무리는 주인공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파티를 계속해서 연다. 알고 보니 영사기처럼 녹화된 세상이었고, 주인공은 그 여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영사기 이미지의 일부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모렐의 발명」의 주인공은 「조선소」의 라르센에 대응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역할놀이로 생을 연명하는 듯하다.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살길을 찾아 생존하고 마는 인간의 생존력을 비루하다고 할 수 있을까?


「타타르인의 사막」

이작또.. 열음님.. 「타타르인의 사막」은 허망하고 출구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조선소」는 반대로 어떻게든 이 연극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힘에 대한 작품이었다. 이 힘을 불굴의 의지라고 해야 할지, 벗을 수 없는 굴레와 속박이라고 해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상징들


이 소설에는 많은 상징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섬세하고 단단하다. 중훈님이 짚어주신 몇 가지 상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둔다.


엘 차마메

엘 차마메는 결코 새롭게 만들었다고 보이지 않았고, 초보 미장이들이 다른 건물의 잔해를 이용해 세운 벽돌 벽 하나 또는 두 개가 있는 그런 작은 창고들 하나였다. (...)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그 오두막은 격리된 어느 진흙땅에 세워져 길모퉁이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집에 추가되어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188-189p,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조선소」, 문학과지성사

당대 사회에 대한 풍자 같기도 하고, 우루과이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엘 차마메를 통해서는 특히나 미국과 대비되는 중남미 국가들의 특성을 잘 느낄 수 있다. 같은 신대륙이었던 북미와 중남미를 두고 비교해보자면,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 미국은 새로운 국가를 세웠지만, 중남미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복자들의 나라로 전통성도 진보성도 갖추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청동상

영웅이 걸친 폰초는 북부 지방 사람들 것이고, 장화는 스페인 사람들 것이고, 재킷은 군인들 것이고, 영웅의 옆모습은 셈족처럼 보이고, (...)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동상을 앉힌 장소가 반역사적이며 터무니없다고 평가되었는데, 그 장소는 창건자가 남쪽을 향해 영원히 말을 몰아가도록, 그리고 우리에게 이름과 미래를 주기 위해 그가 포기했던 아득히 먼 평원을 향해 후회하는 사람처럼 돌아가도록 강요하는 것같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225-226p,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조선소」, 문학과지성사

청동상은 이것저것 기워 만든 영웅상으로 제시된다. 외부의 좋은 것을 모두 가져왔지만 화합되지 못하는 모습, 덧댈수록 더 우스꽝스러워지는 모습으로 우루과이에 대한 오네티의 자평 같이 느껴졌다. 외부의 것들을 거부하지도, 그것들과 융합되지도 못하는 우루과이의 모습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이 느껴진다. 외부 세계와 자국 문화에 가치 평가 체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나는 뒤틀린 자존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끼와 녹

(...) 조선소의 빠른 파멸, 벽들의 소리 없는 붕괴를 바라보았다. 고동치는 엔진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는데, 그의 예리한 귀는 벽돌 무더기에서 자라는 이끼의 속삭임과 쇠를 삼키는 녹의 속삭임을 아직은 구분할 수 있었다.
263p,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조선소」, 문학과지성사

라르센은 죽음의 순간까지 예리한 귀로 이끼의 속삭임과 녹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끼와 녹. 처음에 나는 이끼를 자연의 힘과 봄의 도래, 희망을 알리는 상징이고, 녹은 인력의 한계와 몰락을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사계절이 뚜렷한 북반구 사람의 해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루과이 기온을 좀 찾아보니 일평균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은 각각 영상 7도와 28도로, 어느 때고 이끼는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중남미 문학에 대해서


우리 모임의 여덟 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이었던 「조선소」. 여덟 권이라는 책은 비록 그 지역을 알기에는 너무나 작은 양이기는 하지만, 함께 읽으며 어떤 감상과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욱님은 읽으면서 작품 속에서 갈피를 잡는다거나 하나의 줄기로 모으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남미'라는 하나의 작고 흐릿한 점이었던 지역이 실제로 거대한 대륙이라는 점을 다시 느끼기에는 충분한 독서 경험이었다.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특히,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나 최근작, 오네티의 산타마리아 삼부작을 읽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도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은 더 궁금해졌다. 오네티의 산타마리아 삼부작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조선소」만 소개되어 있다. 


중훈님과 열음님은 중남미 소설을 읽다 보면 경험하는 특유의 고됨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확실히 중남미 소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읽기 힘든 점이 있다.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작품들 중 환상문학의 비중이 많기도 하고, 중남미 나라들의 혼란함이 소설 속에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어서 열음님은 처음에 도서 목록을 결정할 때, 환상성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환상성보다 다른 특출 난 지점들을 느낄 수 있어 신기하게 다가왔다고 하셨다. 작가의 정체성,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잡히지 않고 몰랐던 지역들에 대해서 협소하나마 배경지식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해주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남미 국가들에 막연히 기대하고 있던 '문화적 유사성'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지역이 공통적으로 스페인 식민지배를 겪었고, 스페인어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니 그들 문화와 사상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번 <보이지 않는 세계들> 모임을 통해서 중남미 각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를 개발해나가고 있고, 개성이 뚜렷하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중남미를 중남미라는 하나의 말뭉치로 묶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심한 일이었는지. 앞으로도 무심이라는 어둠 속에 방치해두었던 세계들을 풀고 풀어나가며 좀 더 넓고 환한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관련 책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658407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모렐의 발명」, https://preview.ridibooks.com/books/509001173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조선소」, http://www.yes24.com/Product/Goods/2035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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