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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Nov 27. 2022

일그러진 웃음,「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인간 광기의 근원은 어디이고 그 끝은 어디인가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여러 지점에서 대학생활의 추억을 다시 되살리는 책이었다. 특히나 조구호 교수님의 '중남미 문학' 수업을 듣던 때를 떠올렸다.


'중남미 문학' 수업은 한 학기 동안 중남미의 문학사조와 대표 작가 등을 다루는 수업이었다. 시험이 없다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었고, 수업 과제물을 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과제는 본인이 택한 중남미 소설을 읽고 이에 대한 에세이를 써오는 것이 다였었다. 그때가 내 생애 최초로 중남미 소설을 접했던 때였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책을 고르며 도서관을 우왕좌왕했던 게 떠오른다. 나는 되도록 에세이 주제가 다른 학생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짧고 재밌는 책을 읽고 싶었고, 그렇게 택했던 책 중 한 권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에세이를 발굴해서 브런치에 포스트 하기도 했다. 관련 글: 선에 대한 물음 -「새엄마 찬양」)


재미있지, 내가 최초로 접했던 중남미 문학 작가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다니. 그리고 그 수업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읽었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자, 이번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였다. 


교수님의 하드 드라이브가 부러워...


이 책은 분명히 문제작이다. 특히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기에는 많은 고통을 수반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페루의 아마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지역주민을 통해 본인들의 성 욕구를 해결하면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군인들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시작부터 아이러니다.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합법적 성욕 해소 도구를 만든다는 것부터, 그 도구가 '자원'의 형식을 띤 여성들이라는 점까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교수님의 하드 드라이브에 쌓여있을 에세이를 꺼내와 읽어보고 싶다고 말이다. 다양한 학생들의 신선하고 편견 없는 시각의 분석글들, 감상평들을 나도 읽을 수 있다면...


아니, 안 부러워...


사실 나는 교수님의 하드 드라이브를 털어 볼 이유가 없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동료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모임일을 기다렸다.


웃겨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그리고 웃기게 읽었다. 작가가 처음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명시해두었던 대로, 이 이야기는 진지한 어조로 쓰일 수 없으며,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 이야기 하부의 고통을 감지하는 순간, 우리는 이 책을 더는 읽을 수 없게 된다.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담아 쓰는 순간, 지옥까지 봐야 하는 글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웃긴 인물은, 누가 뭐래도 판탈레온 판토하다. 선한 인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모든 악의 집결지가 되어버리는 인물. 사심과 성욕 없음에 한 없이 높은 자부심을 느끼지만, 결국 최상의 미인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패해 불륜이라는 최저의 부도덕을 일으키는 인물. 그리고 그 추태를 '전우애'로 포장하는 광기까지. 대욱님은 판토하를 보고 감투를 쓰면 갑자기 확 돌변해 버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셨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서 이런 아이러니들이 계속해서 중첩되고 확장되면서 판토하라는 인물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져 간다. 나는 판토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너무 웃기잖아. 


나의 웃음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욱님의 말을 듣고 이해했다. 대욱님은 이 소설의 웃음은 경쾌하고 즐거운 웃음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을 보면 일그러지듯이 지어지는 웃음이라고. 


아, 그리고 번역의 한계로 흐려진 웃음 포인트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판토하 치하의 지역의 별칭으로 동네 사람들이 부르던 '판티랜드'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빤쓰랜드'에 가깝다. (Pantie를 스페인어 식으로 읽으면 판티가 된다.) 이로써... 판토하 대위의 별명이 빤쓰였음을 우리는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소설이 이런 식으로 저급 유머를 이곳저곳에 풀어놓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아니, 안 웃겨


혁중님은 이 책을 읽기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노벨상을 수상했을 만큼 명망 있는 작가의 작품이 주는 어떤 중압감이 있다. 이해해야 할 것 만 같다는 그 의무감 말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진지하기보다는 유머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는 말 자체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남미 문학 특유의 마초적 성격이 못 견디게 싫다는 의견을 듣고 나는 매우 놀랐다. '마초'의 의미를 너무나 정확한 의미로, 그 단어가 절실한 맥락에서 사용하기도 하셨고(나는 한국 미디어가 재생산해낸 '마초남'의 이미지를 증오한다. 마초라는 단어는 절대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또 놀라운 점은 내가 그 마초이즘에 일견 동조하며 이 책을 읽었다는 점이었다. 낄낄대던 입가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싹 가셨다.


또 미시적 서사와 거시적 서사에 대해 나누어주신 의견도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지적이었다. 혁중님은 미시적으로 보아야 할 지점과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과연 페루의 특별봉사대라는 위안부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처럼 거시적으로 보아야 할 이야기인지 의문이라고 하셨다. 이 소설이 삭제해버린 당사자성, 미시적 고통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시에,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첫 운을 뗀 것은 연단 위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이지만, 당사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기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서술을 배제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미스 브라질의 장례식을 치르는 부분에 대한 노랑님의 해석도 매우 흥미로웠다. 한 대원(미스 브라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의 물음은,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SPC 노동자 사망과 10.29 참사로 인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결을 하고 있다. 노랑님은 미스 브라질의 죽음과 장례식 장면이 개개인(판토하, 미스 브라질 등)의 책임과 국가(시스템)의 책임에 대한 의문을 던져보게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가장 웃긴 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 자체


작품 외적인 이야기이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인생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웃기다. 물론 여기서의 '웃기다'는 산뜻하고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가 주는 웃음과 비슷하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인생 속 웃음 포인트 딱 두 가지만 간략히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마르케스를 존경하던 거 아니었니..

1971년, 요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대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요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자신의 아들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1976년, 요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주먹을 휘둘러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주먹다짐의 구체적 이유와 정황에 대해 두 사람은 지금껏 함구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던 거 아니었니..

젊은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좌파였다.

이후 우파로 선회한 이후 지금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을 지지하는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고 있다.

1990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선거운동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패배 이후 그는 페루를 떠나 스페인 정부에 스페인 국적을 요청해, 현재는 스페인인이다.


재밌는 사람,,,


Otros


사실 이 소설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서사가 하나 더 있다. 신흥 종교단체인 '프란시스코 형제단'이 부흥하면서 사람들과 마을 커뮤니티에 미치는 광적 영향력이 커가는 이야기가 특별봉사대의 이야기와 교차 진행된다. 이 종교의 세부적인 특성(구체적 교리나 생물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키는 의식 등)은 차치하고, 내가 흥미롭게 느꼈던 지점은 가톨릭교와 원주민 종교가 충돌하지 않고 혼합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작가의 솜씨다. 중남미 문화를 다루는 책에서 흔히 "중남미는 침략자들의 가톨릭교와 토착 신앙이 뒤섞인 혼합종교의 모습을 띤다"의 식으로 단 한줄로 요약되어 빈약하게 제시되고는 마는, 그들의 종교 문화를 흠뻑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씬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사실상 많지 않아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나마 기억나는 중남미 종교를 다룬 미디어 자료로는 유고슬라비아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영적 치유를 위해 브라질을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스페이스 인 비트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앤 브라질" 정도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상당한 비주얼 쇼크를 느꼈었는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서 제시하는 아마존 밀림 마을 속 종교적 광기는 또 결이 다른 쇼크였다. 스스로 내릴 수 있는 도덕 판단과 계시받은 자의 영험한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같은 환경 속, 그 구성원으로 살아본 적 없기에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미뤄두기로 한다. 내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면 개구리를 잡아다 못 박았을지 누가 알겠냐고.





책 정보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새엄마 찬양」, 송병선 역, 문학동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915517

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송병선 역, 문학동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734952


관련 글

1. 선에 대한 물음 -「새엄마 찬양」https://brunch.co.kr/@hnote/5


출처

1. 가장 웃긴 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 자체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5502

https://www.reuters.com/article/us-nobel-literature-vargas-idUSTRE696238201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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