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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Feb 04. 2022

저기, 나 벌써 꼰대 다 된 거니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가 그렇게 불편했던 거니

프놈펜의 평온한 사무실. 사무실에는 한국인 다섯 명과, 캄보디아인 다섯 명이 일하고 있다. 


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한참 막내이지만, 캄보디아인들 중에는 내 또래가 셋이 있다. 문득, 또래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며, 친목을 다져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새 프로젝트 팀을 꾸려 한 공간에서 일한 지도 어언 2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들과는 '굿모닝', '엔조이 유어 런치', '바이 바이' 말고는 대화랄 것을 하지 않는, 섬뜩하도록 어색한 사이가 단단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친해지고 싶다.


나만 친해지고 싶은 것일 수 있다. 왜냐면 프놈펜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건 나뿐이니까. 그들은 어쩌면 나와 친해지고 싶기는커녕, 딱딱 일만 던지는 나를 몰래 얄미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친해지고 싶다.


사무실에서 소소하게 말을 걸어볼 수도 있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 우선 소소한 말 걸기가 불가한 이유는, 우리 사무실이 아주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다 듣고 있는 자리에서 그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이 나로서는 참으로 어색하고 부끄럽다. 게다가 사무실은 대체로 침묵과 고요가 계속된다. 가끔씩 한국인들끼리 업무지시를 위한 한국말이나 캄보디아인들끼리 크메르어가 오고 가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므로 그 또한 침묵과 진배없다. 침묵을 깨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다음으로는, 점심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는 우리 한국인 어르신들과 점심값 공금의 운영을 맏고 있다. 고로, 어르신들과의 점심식사에서 나만 쏙 하고 빠지기 매우 난처하다.


물론 가끔씩 전체 인원이 모여 밥을 먹기도 한다. 지금까지 세 번 팀 전체가 밥을 먹었다. 그러나 그들과 친해지는 데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회식은 어린애들이 입을 여는 자리가 아니다. 물론 우리의 먹는 입은 바쁠 수 있겠지만, 말하는 입은 꾹 다물려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르신들과의 식사자리 불문율이다. 공경심의 묘한 표현이랄까.


이러한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


온갖 망설임과 주저 끝에 결심했다. 출근하자마자 말을 꺼내자! 텔레그램을 보내기로 한다. 한 공간에 있는데도 텔레그램으로 대화하는 우리들. 메신저 대화는 어르신들에 대한 기묘한 공경심과 우리들 사이의 어색함의 시너지다. 메시지는 K에게 먼저 보냈다. K는 재작년 프로젝트 때부터 우리 통역을 맡아주어 다른 팀원들보다 아주 살짝 더 편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조금 친하다. 아마도. 단둘이 시내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나름 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아무튼, 그나마 가장 친한 K에게 운을 띄웠다.


'K씨, 저 언제 세 분(K, R, S) 꼭 밥이나 술 한 번 사고 싶어요~~~'


K는 내게 뭘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게 있는지 물어왔다. 음, 나는 그냥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친구들이랑 편하게 어울리는 곳에서 밥이나 술을 먹고 싶을 뿐이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지, 액티비티에는 대단한 관심이 없었다. 날짜부터 잡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어 날짜부터 정하자고 했다.


사흘이 지났다. 잊은 걸까, 싫은 걸까..


아침 일찍, K에게 텔레그램이 왔다. 다들 이번 주 주말에 시간이 된다고들 했다. 빠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걱정의 마음이 한 꺼풀 벗겨졌다. 고맙군. 나는 토요일이 좋겠다고 답했다. 뭘 먹을지는 약속시간을 구체화하면서 차차 정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네 시간의 침묵 뒤, K가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열자마자 나는 정말 자지러지게 놀라고 말았다. 플랜 A부터 D까지 주말 나들이 계획을 줄줄줄 정리해 보내온 것이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다. 대답에 사흘이나 걸린 건, 작전을 짜느라 그랬던 거였나 보다. 그리고 셋 중 누구야... 이렇게 철두철미한 사람...? 내가 뭐라고 밥 한 번 먹자는 얘기를 이렇게나 디벨롭해서 갖다 주는 걸까, 내가 싫은 건 아닌가 봐. 그들도 나와 친해지고 싶었나 봐.. 코끝이 찡해진다.


코끝이.. 찡해지다가... 생각이 문득 다른 곳으로 튄다.


저기... 혹시... 내가 많이 어려운 편...? 


어쩌면 내가 아주 많이... 어려웠나 보다. 계획도 잘 보면 플랜이 A, B, C, D로 네 개만 있는 게 아니다. C-1, C-2, C-3이 있고, D-1, D-2가 있다. 7안이나 준비해준 거니... 눈물이 나네. 내가 진실로 어려웠는가 보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친구에게 이 사태에 대해 자문을 구하니, 친구가 나보고 꼰대가 다 됐다며... 캄보디아 친구들이 주말에까지 내 의전을 하느라 욕본다며... 조롱만을 들을 수 있었다. 한층 더 울적해졌다.


진짜 이들은 나를 어렵거나 모셔야 할 사람처럼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까탈스러워 보였나.. 난 이런 거 선택하라고 주면 보지도 않고 1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K씨, 저는 A가 좋아 보여요.'


K가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걱정된다며 물었다. 


'정말 등산 괜찮으세요?'


그때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들은 내가 어렵구나. 그런데 그거 아니? 나도 당신들 어려워.... ㅠ


이로써, 다음 글은 나이 서른에 벌써 꼰대 노릇을 해버린 출장자의 주말 나들이 이야기가 되겠다. 안절부절 네 명의 토요 나들이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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