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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Feb 06. 2022

프놈펜 근교_등산이라며..왜 나 빼고 다들 슬리퍼니..

Phreah Reach Traop, Oudong Temple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 또래들에게 식사 한 번 하자고 했다가, Plan A에서 Plan D까지의 나들이 계획을 받아보게 된 사연... 그 이후의 이야기.




Plan B로 갑니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가 선택지를 주면, 어쩐지 첫 번째 옵션을 골라야 할 것만 같다는 느낌. 나는 그래서 A를 골랐건만, 그들은 자기들끼리 여러 시간 수근수근하더니 K를 통해 이런 말을 전해왔다. 


'책임님, B로 갑니다.'


음? 내 의견은 왜 물어본 걸까. 사실 그들의 목적지 중 무엇 하나 아는 곳이 없고, 깊이 찾아볼 부지런함도 없는 나에게는 Plan A나 B나 매 한 가지로 설레는 플랜이니 별 불만이고 생각도 없다.


'오케이, B도 좋아요.'


K는 아무래도 내 체력으로 Plan A는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나 주 2회 러닝머신 달리는 사람이야... 아주 저질은 아니라고. K는 Plan B에도 등산이 있다며 아쉬워하는 기색의 나를 달래주었다. K가 토요일 아침에 참석자들을 차례로 픽업하기로 했다. 나의 픽업 타임은 8시. 목적지도, 출발 시간도 정하고 나니 정말 우리가 토요일을 함께 보내게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숙취로 곤란한 토요일 아침


전날 밤, 술이 과했나 보다. 크리스탈 제이드에 가서도 진로이즈백을 시켜 소맥 말아주는 분과 함께 일하고 있다 보니, 금요일은 과음하게 된다. 정말 진실하게는, 나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정도가 딱 좋지만 밥상을 함께 하는 사람을 서운하게 하자니 또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나 술이 묘한 것이, 혼자 취한다는 것은 아주 멋쩍고 외로운 일이지 않은가. 그러한 사고의 흐름으로 편안한 간보다는 편안한 마음을 택한 나. 간아 미안해. 눈을 떠보니 몸이 녹아있다. 축축 늘어지는 것이, 힘차게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가 없다. 모닝커피. 그 단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며, 늘어지는 몸을 이리저리 굴려 일어났다.


냉수부터 벌컥벌컥 마셔 정신을 깨워주고, 따뜻한 샤워로 몸을 풀었다. 몸을 말리고, 선크림을 신경 써서 발랐다. 오늘은 나들이 가는 날이니까. 심지어 작은 등산도 일정에 있다고. 자외선 차단 놓칠 수 없지. 그리고 속옷만 대충 걸치고는 주방으로 나가 커피를 내렸다. 아직도 습기를 머금은 몸과 축축한 머리를 하고 커피를 내리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이때쯤이 되면 침대에 붙어 일어나기 싫었던 마음이 어느 정도 몸에서 씻겨 나가 기분이 가볍고 산뜻해진다. 커피가 숙취에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기분만은 반듯하게 새로 다려준다. 커피 원두를 적셔 놓고 드리퍼에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듣는다. 커피에서 가스가 새 나오며 거품을 만들고 이내 터지며 내는 톡- 톡- 소리와 커피 향. 이제야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아주 사랑스런 하루가. 


약속 시간보다 5분 전에 내려와 숙소 로비에서 K를 기다렸다. 머리가 살짝 지끈하다. 아무래도 내 간이 아직 제 할 일을 모두 마치지 못했나 보다. 커피의 힘에도 불구하고 몸이 노곤하니 헤롱헤롱 하다. K는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R과 S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며 K의 차에 올라탔다.


술기운을 물리치는 덴 역시 따끈한 국물


K는 나를 보자마자 아침 식사를 했는지부터 물었다. 아침 식사하러 가자며. 나는 본래 커피가 아침식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들에게는 무조건 'Yes'. 커피 한 잔 더 하지, 뭐. 그런데 이들이 고른 아침식사 장소는 공교롭게도 쌀국수집이었다. 내 간의 SOS 메시지라도 받은 걸까...

우리가 쌀국수를 먹은 곳은 Pho Town(➡️ Google Map). 2층으로 된 매장이었는데, 우리가 주문을 하는 잠깐 새에 손님이 가득 찼다. 옆 테이블에서 한국어가 들려오길래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숙소에서 여러 번 마주쳐서 얼굴이 익은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다. 가족들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와는 아마 퇴근 시간이 비슷해서 마주쳐왔던 것일 테다.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고 어디선가 본 얼굴이라며,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있겠단 생각을 하면 문득 두려워진다. 


쌀국수는 역시 맛있었다. 여기 쌀국수는 한국서 먹던 것보다 국물이 훨씬 달고, 늘 고기완자가 들어있다. 고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마당에 어떤 고기를 갈아 만들었을지 알 수 없는 완자는 입에 넣기를 더더욱 주저하게 된다. 막상 먹어보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가끔씩 통후추가 들어있는 완자들은 맛있기까지 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쌀국수가 몸 안에 들어가니 술기운이 점차 물러났다. 아, 이 기분 좋은 따뜻함.


그들은 튀긴 빵도 몇 점 나에게 권했다. 국물에 말아먹으면 된다며 먹는 법도 알려주었다. 당연히 맛있고, 살찌는 맛. 평소에 뭔가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S가 면까지 추가해가며 쌀국수를 후룩후룩 들이키는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R은 내년에 결혼을 한단 소식을 알려주었다. 내년에도 프놈펜에 꼭 다시 와서 R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들 결혼식 문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더 짙지만, 곧 이들을 많이 좋아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도로를 달리는 것은 우리뿐이 아니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5번 국도를 타고 달렸다. K는 50km 정도 거리라고 했다. 한 시간을 달리며 이들과 어떤 말을 해야 할까? K는 한국어 통역사이고, 영어를 하지 못했다. R과 S는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와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한국어나 크메르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었다. 고민하는데 K가 말했다. 쉬라고. 그래...


그때 도로 위에 정말 거짓말같이 희고 큰 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놀라워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흰 소는 국도 위를 역주행하고 있었지만, 차도 소도 서로를 위협적으로 여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소는 느릿한 걸음으로 배회하고 있었고, 차들은 차분히 소를 피해 달려갔다. 소는 아주 착하고 유순하게 생겼다. 크고 축 처진 귀가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캄보디아 소에 비하면 한국의 소는 참 똘망하게 생겼다. 어느 쪽이든 착해 보이게 생긴 것은 왜 일까. 오로지 농사를 돕고 사람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키워지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캄보디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유소와 편의점, 카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곳들이 있다. 한국 휴게소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한 곳에 멈춰 서서 주전부리와 커피를 마셨다. 나는 Cafe Amazon에서 타이 밀크티를 마셨다. 타이 밀크티는 여러모로 신비한 음료인데 우선 진한 주홍 빛을 띤 색부터가 그렇다. 빛깔 때문인지 맛도 신비하게 느껴진다. S는 편의점에서 찐빵을 사서 맛을 보라며 줬다. 고기 찐빵. 나라면 직접 구입해서 먹을만한 음식이 아니었지만, S의 마음과 호의를 먹는 것이라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다. 


첫 번째 사찰, 부처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20분쯤을 더 달렸을까, K가 목적지인 Ourong Mountain에 거의 도착했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국도가 아니라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우리 목적지가 저 '산'이라고들 해서, 되물었다. 


'산이 어디 있어?'


한국에 다녀온 K만이 내 말을 이해하고는 웃었다. 실제로 이들이 가리킨 목적지는 동네마다 한 둘씩 품고 있는 뒷산보다 야트막했다. 동산이라고 해야 하나. 


K가 한 사찰을 지나며 들어가서 구경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사찰에 마구 들어갔다- 나갔다- 해도 되는 건가? 속으로 궁금해하다가, 문득 한국의 사찰도 매우 열린 공간이었단 게 기억났다. 여기서도 그냥 그런 걸까. 나는 내 옷차림새에 대해 물었다. 내 차림새가 사찰에 들어가기 올바른 구색인지가 내게는 중요했다. 검은색 민소매를 입고 있었지만, 혹시 차 안에서 추울까봐 챙겨두었던 흰색 린넨 셔츠가 있어 걸쳤다. 이들은 내게 보통 사찰에 갈 때 흰 셔츠를 많이 입는다며 내 차림새가 perfect 하다고 말해주었다.


Ourong 한 사찰의 불상

우연히 들러본 이 사찰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걸으며 S에게 종교가 있는지를 물었다. 


'Of course, I am buddhist.'


그 대답은 당연했다. 캄보디아는 인구의 97.1%가 불교인이다. (CIA World Fact Book, 2022) 그렇지만 통계적인 수치로 알고 있는 것과 현실에 대한 나의 인식은 좀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나는 숫자와 현실 인식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구요. S의 대답은 그 점들을 단번에 이어주었다. '당연하다'라는 말은 특히나 내가 현실로 끌어들이지 못했던 숫자들에 무게를 부여해 주었다. 실로,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불교인이었다. 나는 S에게 한국인의 절반 정도는 무교인이며, 나 또한 무교인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말에 S는 놀란 눈치였다. 이런 반응은 멕시코에서도, 요르단에서도 여러 번 보아왔던 것이었다. 우리처럼 종교를 가깝고도 멀리 두는 삶이 있는 반면, 종교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세상의 다양성이란.


주홍의 옷을 입은 승려들이 가지런히 줄을 서서 불상을 돌며 불경을 외웠다. 친구들도 불상 앞에 조신한 모양새로 앉아 무언가를 속삭이고 기원했다. 나는 S에게 어떤 말을 기도 올리는지 묻자 S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상하게 답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올리는 것이 기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불상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았다. 달님께는 가끔 소원을 빌지만, 불상 앞에서는 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말을 잃었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부처에게는 어쩐지 '해주세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으니까. 


나는 부처님께 앞으로 주변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그리고 설령 나쁜 감정을 품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해치기 위해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기요.. 등산이라면서요... 왜 나만 운동화 신었는데요...


우리는 사찰에서 나와 산으로 갔다. K는 재차 등산이 괜찮은지 물었다. 모자는 챙겼는지, 물도 챙겨 올라가는지를 확인했다. 산도 아닌 산 앞에서 여정이 힘들까 우려하는 나의 친구들. 이 친구들 아주 대단한 등산을 할 모양인데.


등산이라며... 쪼리 뭔데... 이 야트막한 계단 뭔데..

그러나 이들의 차림새가 심상치 않다. 일단... 다들 쪼리를 신었잖아. 난, 갈아 신을 신발이라도 챙겨 온 줄 알았지. 그런데 갈아 신을 기미는 전혀 없었고. 그들은 쪼리가 발바닥 두드리는 소리를 찰싹찰싹 내어가며 촐랑촐랑 잘도 앞서 나갔다. 등산이라며... 등산.. 그들이 안내해준 등산로는 더 놀라웠다. 야트막하고 널찍한 계단. 고개를 15도만 들어도 끝이 보이는 그런 계단이었다. 설마 이 계단이 끝은 아니겠지.


네, 그 계단이 끝이었습니다. 5분 간의 등산은 매우 즐거웠다. 나는 K를 붙들고 말했다. K씨, 저희 한국 사무실이 12층에 있는데, 나 매일 걸어서 올라가요. '라떼는 말이야'가 '한국에서는 말이야'로 진화한 순간이었다. K는 와라락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책임님, 대단합니다.'


K는 그 한마디를 돌려주고는 자기가 준비한 설명을 와라락 풀어놓았다. 이곳은 프놈펜으로 수도 천명 이전에, 수도였던 곳이라고 한다. 1900년대의 왕들의 묘라고 했다. 산에 묘지를 꾸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죽어서도 내 땅을, 내 선민들을 내려다 보고 싶은 욕망일까.


불상과 불상과 불상

우리는 작은 사찰들을 여러 개 들렀다. 발 닿는 곳마다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사찰이었다. 덕분에 나는 운동화를 계속해서 신고 벗어야만 했다. 이 운동화는 내가 가져온 여덟 켤레의 신발 중에 유일하게 운동화 끈을 풀어야만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인데, 하필 신발을 가장 자주 벗어야 하는 이런 날 이 신발을 꺼내 신었다니. 


친구들은 향과 초를 사서 향을 태우고, 초를 켜 상에 올렸다. 나는 특히나 곧고 바른 자세로 유려하게 일련의 동작들을 해나아가는 S를 골똘히 보았다. S는 지금 어떤 걸 원하고 어떤 걸 계획하고 있는 사람일까.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우리들 모두에게는 서로 간에 존중해야 할 공간이 있는 법이니까, 묻지 않았다. 대신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주변에 주고 싶은 감정을 주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버려야 할 것, 더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진짜 꼭대기, 산을 이해하다


우리는 작은 사찰에서 나와 조금 더 산을 올랐다. 3분 정도? ..



꼭대기엔 또다른 왕묘가 있었다. 그 둘레로는 난간이 둘러 있었는데, 탁 트인 시야가 인상 깊었다. 어느쪽을 둘러봐도 녹색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곳이 산은 산이구나. 어느쪽을 보아도 이곳보다 높은 곳은 찾기 어려웠다. 


한쪽에는 프놈펜의 국기와 오색기가 걸려 있었다. 전부터 오색기는 불교와 관련된 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가 궁금했던 차라, 친구들에게 물었다. 역시나 Buddhist flag라고 한다. 각 색상마다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Blue      : The Spirit of Universal Compassion
Yellow  : The Middle Way
Red       : The Blessings of Practice – achievement, wisdom, virtue, fortune and dignity
White    : The Purity of Dhamma – leading to liberation, timeless
Orange : The Wisdom of the Buddha's teachings

(출처: https://watkhemararatanaram.org/buddhist_flag.php)

오색기의 상징을 찾아보니, 붉은색의 상징이 참 아름다웠다. 'God bless you.'라는 말을 익숙하게 들어왔어 그런지, 수련이 곧 축복이라는 말이 경외롭게 들린다. 불교의 관념에서는 축복도 고통도 그 본질적인 에너지는 각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노닥거리기도 하고, 왕묘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사찰에도 들어갔다 왔다. (벌써 몇 개째야..) 친구들은 불상이 보이는 곳이면 늘 향과 초를 올리고, 연꽃을 바쳤다. 이는 무교인인 내가 보기에 참 신비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한 가지에 집중하고, 어떤 무언가를 정성껏 빌거나 결심하는 시간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이나 평탄하였다. 계단이 509개라고 설명해준 것 같은데, 아무래도 200개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었다. 기분 좋은 바람. 음, 이로써 오늘의 등산은 끝인 건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오래 산속을 걸으며 낯선 나무들을 구경하고 나무들의 숨을 머금을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주렁주렁, 군것질 쇼핑


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시장 입구가 있다. 상인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모여 옷가지며, 주전부리, 과일, 닭구이 등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세 사람은 온통 먹을거리에 정신이 팔려 이것저것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크메르어를 알아들을 줄 알았다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흥정을 하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K는 특히나 Sugar palm fruit을 신중하게 골라서 샀다. 이 과일은 먹을 수 있는 것보다 과육을 둘러싼 껍데기가 차지하는 양이 더 많았다. 한 통을 쪼개면 세 알의 작은 조각이 나왔다. K는 이 조각이 말랑하게 잘 숙성된 걸 골라야한다고 알려주었다. 


이 셋은 새로 보이는 음식이 있으면 무엇 하나 지나치지를 못하고 한두 개씩을 구매했다. 나는 오히려 뒷짐 지고 이들이 물건 사는 모습만 구경하였다. 나보다 이 친구들이 더 신난 것 같았다. 흥미롭군. 150m도 안 되는 시장에서 30분을 넘게 머무른 것 같다. 들어 갈 땐 빈손이었는데, 이제는 다들 봉지가 주렁주렁이다. 사이좋게 나눠 들고 나란히 걷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흐뭇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오전 이야기 끝. 점심 식사와, 또 다른 사찰들과, 커피 타임과, 비어 타임과, 군것질 타임과, 셀피 타임이라는 장엄한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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