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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an 16. 2022

프놈펜의 에코 프렌들리 피제리아_Pizza 4P's

채식인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가능한 피자집

출장지에서의 토요일은 보통 늦잠을 자다가 하루가 다 가곤 한다. 장기 출장의 장점이라면, 몇 주 간의 현지 생활을 하고 나면 주말에도 무언가를 해 볼 힘과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엔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결심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툭툭을 타고 나왔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서였을까, 일기를 남기다 보니 생각이 끝도 없이 증식해서, 일기가 주렁주렁해졌다. 사실 그날의 외출은 오랜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거의 최초의 외출이었기 때문에.


지난 일기

어느 토요일_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1/2)_해외 출장 나가면 주말에는 뭘 할까?

어느 토요일_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2/2)_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




Pizza 4P's의 뷰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식사할 곳으로 정한 곳은 Pizza 4P's였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까지 Tatie's도 들렀고, 문제의 그 바디로션을 사러 한 기념품숍에도 들렀으나 이 모든 활동은 크게 중요성이 없어 기술을 생략하도록 한다.) 1부의 일기에서, 박물관의 점심 브레이크 타임을 기다리며 죽치고 앉아있었던 그 스타벅스와 같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피제리아로, 젊은 감각의 인테리어와 다양하고 독특한 피자 메뉴, 충실한 화덕피자의 맛, 친환경 철학 등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식당이었다. 들어서자마자 톤레삽 강이 보이는 멋진 뷰에 감탄했다. 더 높은 곳에서도 강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눈에 꽉 차도록 보이는 강은 또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다. 서버는 베란다의 자리를 먼저 권했지만, 나는 오늘 많이 걸은 탓에 햇볕 아래보다는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 속에 휩싸여 있고 싶었다.


(좌) Session IPA, (우) Green Salad with Basil Souce

앉자마자 음료 메뉴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Session IPA를 한 잔 주문했고, 눈에 띄는 샐러드 하나를 주문했다. 채식을 위해 노력한지도 어언 3년이 다 되어간다. 요즘도 자주 실패하고, 현실과 타협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고기가 먹고 싶단 생각이 잘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먹고 나서도 예전만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아,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니 부연한다. 예전에 고기를 먹으며 느꼈던 '고기의 맛있음'은 이제 그 빈도가 줄었다. 스탠더드가 높아졌다고 해야 할까. 웬만해선 역한 냄새가 나거나 질기다고 느낀다. 가끔 정말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될 때가 있지만, '우욱'하고 불쾌할 때가 더 많다 보니 잘 시도하지 않게 된다. 다행히도, 고기 먹는 맛을 잃어가는 대신 그 자리는 초록의 야채들이 더 큰 기쁨으로 채워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 식사의 기쁨은 전보다 커졌으니, 채식이란 선택을 어여삐 여기지 마시기를. 다만, 선택지가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알맞은 메뉴를 만났을 때 훨씬 더 큰 환희가 있다. 오늘의 이 바질 소스 그린 샐러드처럼! 예이! 메뉴판에서 발견하자마자 내적으로 크-게 함성과 박수를 쳤다. 내가 딱 좋아하는 조합. 맛은, 더 말해 뭐 할까. 정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새콤하고 향긋하고 쌉쌀해. 최고야.


피자 메뉴를 고를 때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요즘 프놈펜에서 가장 맛있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지 알아내기 위한 나만의 챌린지를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고민도 없이 마르게리따를 주문하려고 했다. 아니 그런데, 이곳은 반반 피자를 주문할 수 있다지, 뭔가. 정말 현명한 사람들이다. 두 가지 맛을 고를 자유를 주다니. 메뉴판을 천천히 스터디하며 두 번째 맛을 골랐다.  


메뉴만 얼핏 보아도 이곳이 피자 맛집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내 개인적 기준이긴 하지만, 메뉴에 마르게리따, 깔조네, 안초비가 들어간 피자가 있으면 이탈리안 피제리아로는 합격점이다. Pizza 4P's는 세 가지 모두 합격이었다.

Pizza 4P's의 마르게리따, 계란 시금치 리코타 피자

두 번째 맛으로는 계란-시금치-리코타 피자가 간택되었다. 동생과 나폴리에서 먹었던 리코타 피자를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니 기분 좋다.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어서 혼자 와도 두 배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여기는 피자를 몇 조각을 나눌 것인지에 대해 자유롭게 주문할 수 있었다. 혼밥인들에게도 다양한 선택지와 어드벤처를! 


맥주에 샐러드를 열심히 들이키고 있으니 피자가 나왔다. 화덕에서 갓 구워져 나온 피자는 아리따웠다. 피자 한 판의 양이 1인이 먹기에 아주 알맞았다.(결코 적지 않다.) 비주얼 완전 완전 합격! 피자이욜로인 친구가 알려주기를, 피자 바닥에 검게 탄 반점들이 있어야 제대로 된 온도에서 구워져 나온 피자라고 했다. 확실히 나폴리나 로마에서 먹었던 피자들은 새까만 반점들을 품고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들은 뒤부터는 피자를 먹을 때 피자 도우의 아랫면을 들춰보고는 한다. 정확히 볼 줄도 모르면서. 그렇지만 아무래도 음식 먹는 즐거움은 이런 작은 탐험들과 궁금증, 고민들의 시간과 무르익어 배가 된다. 재밌잖아.


맛은 어땟냐면, 맛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벙껭꽁 최고의 이탈리안 식당 Green Pepper에서 먹은 마르게리따에를 뛰어넘는 맛은 아니었다. (➡관련 글_가끔씩 미식_이탈리안 Green Pepper) Green Pepper의 피자 가격이 이곳의 2배에 가까운 수준임을 생각했을 때, 이곳 피자는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였다. 특히 시금치 리코타 피자는 오랜만에 감동스러운 맛이었다.


이 피자집의 특색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에코 프렌들리,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환경 보호는 인간의 이기적 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가 결국 인간 삶을 피폐하게 하는 기후 변화, 자연재해, 감당되지 않는 쓰레기들로 되돌아오면서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외식 매장들이나 의류 브랜드가 벌이고 있는 에코 프렌들리 활동들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환경에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임팩트는 주지 못하고, 되려 소비를 촉진해 환경을 착취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유다. 그저 시류에 적당한 마케팅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소비자들은 환경을 아껴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이런 움직임을 체험하고 '쿨'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Pizza 4P's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노력은, 홈페이지 Pizza4ps.com에 아주 자세하게 공유되어 있다. 이 피제리아 브랜드는 일본인 2명이 세웠고, 베트남 하이퐁, 호찌민, 다낭, 나트랑과 캄보디아 프놈펜에 지점이 있다. 이들이 환경을 위해서 하고 있는 노력들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지역 농산품 이용

이 브랜드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더 퀄리티 높은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서브하기 위해서 베트남 다랏에 치즈 공장을 운영하고,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음식을 내놓고 있다. 로컬 푸드를 사용하면, 운반 등에 필요한 탄소를 줄일 수 있고, 신선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의 운영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2. 일회용품 사용 지양

이곳은 일회용 물티슈 대신 빨아서 다시 쓸 수 있는 물수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도 스스로 해볼 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품의 사용은 최대한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3. 쓰레기 살려내기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기 보관용 케이스와 물 잔, 그릇 등은 그냥 버려지기 쉬운 플라스틱 뚜껑, 와인 병 등을 재활용해 만든 상품들이다. 피자 접시, 앞접시 등도 재활용된 그릇들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하게 페트병 뚜껑을 모아 기부를 받거나, 수집해서 업사이클링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좌) 재활용된 플라스틱 (우) 와인병으로 만들어진 물컵


4. 음식물 제로 웨이스트

음식물 쓰레기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환경에 큰 오염이 된다. 이 피제리아에서는 음식물을 세 가지 용도로 재활용하여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해내고 있다. 일반 음식물 쓰레기는 동애등애(Black Soldier Fly) 유충을 기르는 농장으로 보내져 사료로 쓰고 있다고 한다. 동애등애 유충의 먹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페이퍼 키친타월까지도 분해해낸다고 한다. 그리고 도우는 따로 분리하여 귀뚜라미(Cricket) 먹이로 보낸다고 한다. 이 외에도 파스타, 피자 재료로 쓰이고 버려지는 조개껍질은 분쇄하여 닭 모이로 활용된다고 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였다. 우리 아저씨들과 함께 가도 좋아하실 것 같은 곳. 일단 맛이 좋고, 분위기와 뷰도 좋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다시 올 수 있게 해주세요!



관련 글


⬇ 이 이야기의 1부_국립 박물관에 브레이크 타임 실화냐


⬇ 이 이야기의 2부_국립 박물관에서 느낀 미소의 아름다움


⬇ 내가 생각하는 벙껭꽁 최고의 이탈리안 식당


참조한 글

1. Pizza 4P's의 메뉴판

2. Pizza 4P's 음식물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글 https://pizza4ps.com/news/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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