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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an 13. 2022

어느 토요일_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2/2)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

하루치 일기를 쓰는 데, 너무 길어서 일주일이 걸리는 나, 정상일까요. 그 비정상 일기의 2부입니다. 


1부는 아침에 기상해서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파트에서 박물관은 물리적으로 15분 정도 거리인데, 글로 도착하려니 세 시간이 넘게 걸린 현실... 내 손은 툭툭보다 느리다... 앞선 주저리부터 읽으셔야겠다면 여기로(➡관련 이야기_이 일기의 1부).




박물관의 첫인상은 2011년에 처음으로 갔었던 간송 미술관 그 자체였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혼자 걸음 했던 간송 미술관이었다. 그 방문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는데, 첫 번째로 인파에 깜짝 놀랐었고, 두 번째로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작품들의 실물은 더 놀라워서 그들의 힘 있는 존재감에 놀랐고, 세 번째 충격은 작품들만큼이나 유물로 느껴지는 진열장이었다. 진열장이 어찌나 오래된 것이었는지, 유리창을 통해 그 연륜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작품을 보고자 한 발 다가설 때, 또는 다른 면을 보고자 자리를 살짝 움직일 때마다 유리에 비친 작품이 울렁거렸다. 울룩불룩한 유리라니. 내 생에 마주친 적이 없었던 고물이었다. 이렇게 귀한 작품을 이런 유리장에 넣어 전시한다니.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의 인상도 이와 결이 비슷했다. 물론 그렇게나 많은 인파가 있지도 않았고, 나이 지긋한 유리도 없었지만 그 엇비슷한 어떤 감정을 느꼈다. 진열장 나무는 삭았으며, 작품의 이름표는 빛에 바래 읽기 어려운 것들이 왕왕 있었다. 귀중한 것과 낡은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 그 사이를 햇볕 속을 퐁퐁 날아다니는 먼지 한 톨처럼 작고 조용히 유영하다 왔다. 조그맣고, 희뿌옇게 바래 방치되어 있는 글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었다. 체계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기는 어려운 설명글들이었지만, 그것마저 이 박물관의 말하기 방식처럼 느껴졌다.



(좌) 물 같이 흐르는 손, (우) 부처님의 수인

나는 이 날도 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나는 늘 손을 유심히 본다. 사람들의 손을 몰래몰래 훔쳐보기도 하지만, 그림 속의 손이나 조각상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를 특히나 좋아한다. 손이라는 기관이 가진 힘에 매력을 느낀다. 손이 취할 수 있는 포즈, 손만의 움직임. 포즈가 제스처가 되어 감정을 전하고, 움직임이 작업이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결국 오늘의 일기 쓰기라는 작업을 하는 것도 손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손이라는 사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글쓰기를 오른손이 쓱쓱 다 했다면 이제는 자음 키를 눌러야 하는 왼손이 더 바빠졌다는 게 다르지만, 이 또한 재미있게 느껴진다. 역시나 나는 이 날도 전시된 조각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손을 열심히 보았다. 어떤 손은 뭉그러져 있고, 어떤 손은 아주 유실되어 없어졌다. 어떤 손은 가지런하고, 어떤 손은 모호하고, 어떤 손은 거칠고 단호하다. 손들을 둘러보며 이제는 포즈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사실 불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불교 미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하다. 각 각의 포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중에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내가 가장 매료된 손은 상품중생을 의미하는 손이었다. 보드랍고 유연하게 흐르는 모양의 손. 어쩌면 손만 남아있었기에 더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유독 눈에 띄게 예쁘다. 하나 남은 이 손은 내 나뭇가지 같이 깡마르고 빳빳하게 살아있는 내 두 손보다도 귀해 보인다.


발만 남은 발

손 다음으로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발들이었다. 발도 손만큼이나 신비한 곳이다. 발가락과 손가락이 우리의 쓰임에 맞추어 길어지고 짧아졌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어떻게 시간이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들어 놓았는지, 시간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시간은 우리를 이렇게나 많이도 다듬어 두었다. 발만 남은 조각 앞에 서서는 희한하다고 생각한다. 몸은 사라져 없어졌는데, 두 발이 함께 있을 수가 있다니. 복 받은 두 발일세. 이 발 앞에는 유독 설명문이 길었는데,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와 발 크기로 추정해본 본래 조각상의 키 등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발만 덩그렁 남은 조각을 보았을 때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이 조각상이 2미터를 넘는 크기였을 것이란 글 한 줄을 읽고 나니 호기심이 동해 머릿속에 몸을 잃기 전의 온연한 조각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려보게 된다. 이 조각상은 어떤 자세로 서 있었을까, 얼굴은 엄한 표정이었을까, 온화하게 웃고 있었을까. 발은 그걸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알듯말듯한 미소들

그 뒤로는 미소를 좇아 다녔다. 불교 미술에서 그려지는 미소는 숭고하게 여겨진다. 그 숭고미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불교에서 그리는 미소는 우리를 잠깐 스치는 미소가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물러줄 미소인 것만 같아 위안이 된다. 불상들의 미소는 활짝, 그러나 순간 왔다 가는 기쁨과는 다른 감정을 그리는 것 같다. 이들의 미소는 안온하다. 이들의 미소는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샅샅이, 그러나 투명하게 차오른 기쁨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머금은 미소를 거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웃다 지칠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영원한 미소. 그 미소를 허락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그것이 불교 미술이 그리는 미소일까.


운반되고 있는 조각상.

한참 미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주변이 사뭇 어수선해진다. 분주하고 다급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돌 구르는 소리가 점차 다가온다. 


덜, 덜, 덜. 덜컥. 덜, 덜, 덜.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리니 박물관 관계자들이 조각상을 하나 옮기고 있다. 그 비주얼에 나는 쇼크를 받는다. 손잡이도 없이 덜덜거리는 카트에 한 조각상이 실려간다. 관계자들은 조각상을 별 다른 고정장치도 없이 실어 놓고는, 맨손으로 조각상을 잡고 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엄연히 관람시간인데. 정말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조각상만은 영원한 미소를 평온하게 머금고 있다.


손과 발, 선

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조각상이었다. 그마저도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것인지 하나의 진열장에 많은 양의 조각들이 층층이, 옹기종기 붙어 들어있는 경우가 흔했고 사이즈가 큰 조각상들도 공간적인 여유로움 없이 전시되어있었다. 그렇게 작고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전시장 한 켠, 그늘 진 벽 한 면에 작게 전시되어 있는 전통 무용 사진 아카이브는 내 눈에 확연히 꽂혀 들어왔다.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해도 멋질 사진 작품들이었는데,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인화되어 전시장 구석에 침울하게 걸려 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사진 속에는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손과 발의 움직임이 단연 돋보였다. 캄보디아의 전통춤은 아주 느리다고 알고 있다. 내가 씨엠립에서 보았던 한 무용 공연은 씨앗이 꽃이 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표현한 춤이었는데, 움직임이 상당히 섬세했다. 사진 속의 춤도 활동적이고 움직임이 큰 춤이라기보다는 선을 그려내는 섬세한 춤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다. 이 춤에는 어떤 음악이 곁들여졌을까. 음악이라도 들어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한 참을 그 앞을 서성였다.


발걸음을 옮기니 어떤 기시감이 느껴지는 조각상과 마주쳤다.


(좌)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의 Jayavarman VII (우) 정부 청사 로비의 조각상

우리가 근무하는 정부 청사 로비에 있는 조각상과 자세와 몸매가 비슷한 조각상이었다. 매일 마주하던 조각상이라 이 조각상을 보자 첫눈에 반가움을 느꼈다. 청사의 조각상이 이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인가 보구나. 그렇다면 이 조각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박물관 안에서 이 조각상만을 마주하고 있었을 때엔 청사 조각상과 '똑같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찍어둔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니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원작은 온화함과 강직함이 함께 느껴지는 모습인 반면, 청사 로비의 조각상은 온화 그 자체다. 원작의 모델은 Jayavarman VII이라는 왕(1181년 즉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표정에서 보이는 결연함이 신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단 말인가. 이 조각이 팔을 잃었기 때문에 더 결연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어떤 팔을 가지고 있었을까. 파괴되어 온전하지 않은 조각상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프랑스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사모트라케의 날개 달린 빅토리(a.k.a. 승리의 여신 니케)’가 팔을 잃었기 때문에 강렬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처럼, Jayavarman VII 조각도 팔을 잃었기 때문에 얻은 아우라가 분명 있었다.


박물관의 중정

박물관은 ㅁ자로 건축되어 있어, 건물 한가운데에 중정이 있다. 중정에서 바라본 박물관 입구 동은 처마 표현이 아름다웠다. 프놈펜에서 건물에 자주 쓰는 주홍은 파란 하늘과 녹색 식물들과 참 잘 어우러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 여러 날인 나라에서는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색상들이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13시 30분부터 약 두 시간을 박물관을 관람하였으니, 몹시 출출한 상태가 되었다. 최근 새해맞이 결연한 마음을 위해 읽고 있는 팀 페리의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소개한 싯다르타와 상인 사이의 일화가 떠올랐다. 한 상인이 싯다르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싯다르타는 (1) 사색, (2) 기다림, (3) 단식을 할 줄 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식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단식을 할 줄 알면 당장의 배고픔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해당 에피소드의 민음사 원문을 발췌해둔다. 다른 사람들은 싯다르타의 말에 어떤 영감을 받고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아주 지당한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지요? 예컨대 단식 같은 것 말인데요, 그게 무엇에 좋지요?”

“나으리, 그것은 아주 좋습니다. 단식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요. 예컨대 싯다르타가 단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신한테서, 아니면 다른 데서라도 오늘 당장 아무 일자리건 얻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이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초조해하지도 않고, 곤궁해하지도 않으며, 설령 굶주림에 오래 시달릴지라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나으리, 단식이란 그런 데에 좋은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싯타르타」, 민음사


이 에피소드는 희한하게도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없어도 괜찮을 것들을 얻고자 내가 너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심지어 하루 세 번 먹는 음식도 며칠 먹지 않아도 살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단식을 모르기에.. 서둘러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화....에서는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관람 이후 출출함을 달래러 갔던 Pizza 4P's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한다. 믿기지 않지만 토요일 하루를 가지고 3화의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일기, 정상 맞겠지..


Bye bye.





관련 글

⬇ 이 이야기의 거창한 1부




관련 도서

1. 팀 페리, 「타이탄의 도구들」, 토네이도 출판

2. 헤르만 헤세, 「싯타르타」, 민음사




사진 출처

1. 부처님의 수인, https://blog.daum.net/kimsg54/13685927

그 외,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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