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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ul 24. 2022

여섯 번째 모임_나는 맞았고 너는 틀렸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함카

이슬비와 장맛비

이 책에 대해서 말하라면... 할 말이 없는데 많고, 많은데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말은 할 게 별로 없고, 나쁜 말이라면 할 게 잔뜩이다. 그래서 실컷 말하기가 주저된다. 나는 이 작가를 폄훼하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이러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한 출판부와 번역가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받은 긍정적 인상은 새벽이슬과 같이 맑고 투명했다면, 부정적 인상은 장맛비 같았달까... 이슬은 작고 소중한 반면 장맛비는.... 사람을 화나게 해.


그래도 말하렵니다

이 작품이 호위하는 모든 모순이 끔찍하고 역겨웠다. 모계 사회라고 하지만 여성의 발언권이 없는 사회.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여성은 소유물 취급하는 온갖 대사. 시골 마을의 부당한 관습에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저항하면서도 여성의 복색 변화는 규탄하고 억압하는 남자 주인공. 자산가를 비방하면서도 남자 주인공에게는 쥐어주는 막대한 부. 조건 없는 사랑을 찬양하던 남자 주인공을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로 완성시키며 허겁지겁 끝마치는 결말 . 이랬다가, 저랬다가! 우욱...! 멀미...! 읽을수록 얼굴이 일그러지는 소설이었다.


가장 나를 분노케 하였던 대사는 남자 주인공 자이누딘의 편지글이서  등장헌다.

진보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고작 그런 옷을 지어 입는 것일까요, 하야티?
하야티, 당신은 내가 살아갈 세계, 원래 당신의 옷을 입어요. 당신이 마을에서 입던 옷 말이에요.
(...중략)
당신은 나만을 위한 여인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고요.


웩! 토할 것 같았다. 자이누딘은 마을 어르신들이 하야티와의 출신 차이를 이유로 결혼을 허락받지 못하자 마을의 구시대적 풍토를 눈물로 비난하며 마을을 떠난 바 있다.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자아누딘은 관습에 반하는 전통에 침투하는 현대적 가치의 상징으로써 나타나는 여성의 복색 변화는 위와 같은 편지글로 비난한다. (지켜야 한다!) 가슴이 드러나고, 팔도 너무 꽉 끼는 옷을 입고 나타난 하야티에게는 입던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한다. 철면피 같은 놈. 하나만 해라. 하나만 해. 관습을 공경하던지 부수던지 하나만 하란 말이다. 당신은 '나만을 위한 여인'이라는 주장 또한 어찌나 저열하고 추잡스러운지.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라면 나는 타락 사랑에 건배를 올리겠다.


책머리의 작가의 말에서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며 동조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작가의 소회는 특히나 끔찍하게 들려왔다. 이 시대나 그 시대나 자기 연민에 빠져 시대탓하는 자들이 널려있구먼. 다만 우리는 이제 이런 박살난 여성관의 책은 더 이상 쓰이지도, 팔리기도 어려운 시대에 와있다는 점이 조그만 위안이 된다. 여자들은 이런 책에 돈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도 읽으시렵니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이 책이 인도네시아 문화의 여러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사실, 인도네시아가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사실. 인도네시아가 신실한 무슬림들의 나라라는 사실 소설을 읽으며 실감하게 된다. 종교가 그들 삶과 문학에 일체 되어 있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1만 8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인데, 이 책은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파생된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특징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서로 출신이 다른 두 인물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배경마다 다른 풍경과 관습을 가진 점이 매우 비중 있게 서술된다. 이 둘의 성장과 만남 그리고 헤어짐 등의 일련의 사건과 함께 배경과 문화도 옮겨간다. 육로로 이어지지 못한 채 단절된 섬들의 문화는 실로 다양하게 발전하는지, 모계 사회의 섬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인도네시아가 바다와 가까운 나라여서인지, 이 소설에는 물에 빗댄 아름다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바다, 강, 물, 비, 호수 등 다양한 물의 형태로 인생과 사랑, 질투, 고난, 두려움 등의 감정을 표현해낸다. 물과 가까운 사람들이라 가지고 있는 관용적 표현인지, 작가만의 말솜씨인지 궁금해진다.




만나서 나눈 이야기


만나서 나눈 이야기는 위에 내가 서술한 '분노'가 좀 더 샅샅이 다루어졌다. 모두들 비슷한 인상을 받았고, 비슷하게 뚜껑이 열려있었다.

[분노] 전형적인 옛날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는지.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 책이 총 3권의 총서 중 한 권인데 나머지 두 권을 읽을 가치가 있을까 의심을 품게 되었을 정도였다.


[여성관] 이 책의 여성관은 매우 형편없는 수준인데, 또 동시대 우리 문학에서의 여성관을 생각하면 욕할 처지도 못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1924년 작으로, 이 소설과 비교해 겨우 10년 앞선 작품이다.


[사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하야티가 남자 주인공을 버리고 결국 친구의 오빠와의 결혼을 택한 점이 매우 시원했다. 친구 하디자는 이 소설 속 단비와 같은 인물이다.


[의문] 이 책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평면적 인물들, 시시한 전개, 빈 메시지가 당혹스러웠다. 특히 소설 속 모든 인물이 존재 이유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룩은 무엇을 위해 나온 인물일까.


[작가] 함카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작가의 자의식, 모든 것을 소재 삼아버리는 태도, 돈에 대한 이중성(우리는 가난도 오케이. 우리는 돈이 많아도 고고해)이 너무 싫다.




이로써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아시아 세션이 끝났다. 2주에 한 권씩 여섯 권. 총 석 달의 시간 동안 인접한 지역의 다양한 국가 작가들의 책을 함꼐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도 많았고, 새로이 느끼게 된 동질감이나 낯섦의 순간도 많았다. 다음 중남미 세션에 많은 기대를 하면서 모임을 마칠 수 있다는 게 참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아시아 세션을 모임이 마무리되는 대로, 나는 꼭 이 모임에서 읽은 책들과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두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이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서, 게으르고 부족한 열정과 성의로나마 미적지근한 후기글들을 작성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지켜낸 듯하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중남미 세션을 어떻게 준비해나가고 있는지, 또 시작될 모임이 어떤 책들과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조금만 더 부지런히 작성해보고 싶다.


아시아 문학 세션 Wrap-up to be continued.




책 정보

함카,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6829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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