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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Aug 15. 2022

아시아 문학 세션 닫기

세션은 닫지만 아시아를 향해 열어둔 제 마음의 문은 열림입니다.

책을 읽는 데 여러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고는 하는데, 나는 대체로 모든 이유들에 동의하는 편이다. 책은 재미를 주기도 하고,  마음에 위안과 평화가 되어주기도 하고, 공감능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경험의 범위를 넓혀주면서 층위를 깊게 해주기도 한다. 지식이나 교양을 배양해주기도 하고, 성공하기 위한 길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면 시간 때우기, 재미 찾기, 지적 호기심 채우기 등 흥미 본위의 이유가 크다. 읽다 보면 나의 내면 어딘가가 채워져 단단해질 것이라는, 자기 발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읽는다. 많은 책은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할 만큼의 책은 읽고 있다.


책이라면 이미 충분히 읽고 있다고 자평하는 내가 <보이지 않는 세계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 동인은 뭐였을까. 목적이 분명한 모임에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하나였다. 그게 이미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더해서 하나의 모임에 더 참여하게 된 이유, 그리고 많고 많은 독서모임 중에서도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들에 대해 발견해보자는 이 모임의 소박하면서도 도전적인 취지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뒤좇고 있었던 독서 지향점에 똑 떨어져 부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니즈'라는 단어보다는 '마음'이라는 단어로 이름 붙이고 싶다. 누군가 내밀어 보여준 마음이 나도 잘 몰랐던 내 마음과 같은 것이라면, 선자리에서 두 다리에 쿵쿵 못 박힌 듯이 멈춰 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저마다의 책 읽는 마음들 속에서 각자의 예감을 느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어딘가 한 구석에서 자기 마음과 같은 마음을 발견한, 하지만 그렇게 꼭 같지만도 않은 마음들이 수줍게 모인 책 모임. 


아시아 세션에서 느낀 모임 참여원들에 대한 인상이 있다면, 책 읽을 시간을 만드는 데 능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책이 '읽기 힘들어서' 다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나왔지만,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최초에 제시된 2주에 한 권이라는 독서 분량이 어떤 장벽이 되었을 수도 있겠고, 책 이야기만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통해서 참여자를 모집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독서가 생활 일부분을 이루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 내게는 생경한 일이었다. 물론, 각자 독서에 쏟는 시간이나 관심 있게 읽는 분야는 다양했다. 모임에서 정한 책 이외에 같은 작가 책을 더 읽고 오시는 분도 있었고, 모임에서 정한 책이 독서 리스트를 몽땅 점유해버린 분도 있었고, 이런저런 책을 다양하게 병렬 독서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내가 느꼈던 낯섦이란 여태까지  '이렇게라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사람들과 모여하던 책 이야기와, '혼자서는 이미 충분히 읽고 있어서' 모인 사람들의 책 이야기 사이의 거리감에서 왔다. 이 거리감은 간편하게 수준의 차이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으로, 양쪽의 색과 질감이 달랐다고 표현하고 싶다.


모인 사람들과 6권의 책을 읽으며, 12개국의 문학 작품을 접했다.


#1. 「물결의 비밀」,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 베트남, 필리핀, 대만,  태국, 중국, 인도, 일본, 터키, 싱가포르

#2. 「락엽은 단풍이 아니다」, 리희찬 - 북한

#3.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샤힌 아크타르 - 방글라데시

#4.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베트남 작가 6인 소설선 - 베트남

#5. 「델리」, 쿠쉬완트 싱 - 인도

#6.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함카 - 인도네시아


사실 6권의 책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줄 만큼 넓은 세계가 아니다.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좁고 한정적인 모음일 수밖에 없었다. 가지 못한 나라도 많고, 짧은 글 한 조각으로 다녀온 나라들도 여럿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빈 공간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도록 정전과 침묵 속에 방치된 곳들에 작은 불을 밝히자는 것이 우리 모임의 작고 소중한 목적이었으니 우리는 그 이상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을 읽지 않았을 책들을 읽었고, 그 책들이 보여준 세상 면모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으며, 책이 보여준 현실이 불쾌했을지언정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호쾌하고 즐거웠다. 


여태까지 최악의 출장지로 꼽았던 방글라데시를 다시 가게 된다면, 이제는 방글라데시의 낙후한 생활 수준이나 인프라를 그저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속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겪었던 전쟁과 비랑가나들의 비참한 삶을 떠올리며 그 고통 속에서도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일궈낸 발전에 눈길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내게 환상의 여행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섬들도 함카의 「판데르베익호의 침몰」를 읽고 난 뒤로는 저마다의 개별성을 가진 특별한 섬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개성을 존중할 수 있는 방문자가 되고 싶어졌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내 개인적 세계의 확장이 아닐까.


6권의 간결한 탐험을 함께 마치고, 다음 탐험을 이어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기쁨.


남미 세션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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