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리 가보자고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것이 지속 가능한 모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금방 김이 새지 않을까. 중후반부에서 힘이 빠지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대견하고 감사하게도 무사히 여섯 권의 책 여정을 마쳤을 뿐 아니라, 다음 모임을 기획할 때가 왔다.
우리는 아시아 문학 세션을 마무리하고, 한 달간의 방학을 가지기로 했다. 물론 아시아 문학 세션을 끝으로 다음 모임은 참여하지 않는 모임원분들도 계셨으나, 이어서 남미 문학 세션까지 함께 이어갈 남은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게 사실이었다. 겨우 여섯 권을 함께 읽은 것으로 엄살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2주에 한 권씩이라는 책은 페이지 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책들로 인한 자유도의 상실이 문제가 된다. 특히 한 달에 서너 권의 책을 소화할 수 있는 나에게, 그중 절반 이상의 책을 지정된 책으로 읽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특히나 나는 극심한 산만도의 병렬 독서가로서 2주에 한 권을 끝장 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피로감을 주기도 했다. 자꾸만 다른 책을 읽고만 싶어 졌으니. 그러한 때에 제안된 '방학'은 달콤을 넘어서는 필연적 제안이었다. 조금.. 쉬기도 해야죠.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쌓인 독서 피로를 풀기로 했다. 당초에 나는 이 귀한 방학을 이용해서 세 가지를 이루고 싶었다.
하나, 아시아 문학 세션에 대한 글 마무리하기
둘, 아시아 문학 더 읽어보기
셋, 중남미 문학 세션에서 읽을 책 리스트 정리하기
이번에 <보이지 않는 세계들> 모임을 참석하면서 가장 굳게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이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 남겨보자는 것이었다. 내 기억력은 상당히 짧고 흐려서 모든 경험이 잠시간의 시간 간격만으로도 곧 추상적이고 모호해져 버리고 만다. 기억의 소실을 이겨낼 방안이란 간단하다. 기록하기. 그리고 그 기록을 남길 공간으로 이 브런치를 택했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휘발되기 전에 성실히 기록을 남겼으면 좋았으련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권의 책도 빼놓지 않고 글로 남겼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대로 계속하다 보면 습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정 무리한 일이라면 모임 후기를 글로 남기는 데 요령이라도 생기겠지, 스스로에게 말하며 글들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음 중남미 세션만큼은 초고 작성을 2주 이상 밀어 두지 않으리...
한 달이라는 시간이면 책 한 권 정도는 더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읽고 싶었던 책도 있었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바오 닌은 베트남 작가로, 아시아 문학 세션에서 여러 단편으로 만나면서 그가 만들어 보여주는 이야기의 강렬한 선에 매료되어 더 읽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의 현실은... 아시아 문학 세션에서 완독하지 못했던 책이었던 샤힌 아크타르의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마저 읽고 나니 한 달이 다 가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다. 가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더 읽기를 포기하고 마는 책들이 생기곤 하는데, 더 읽을까 말까의 고민 속 가장 큰 의문은 '과연 끝까지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까?'일 것이다. 다행히도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중남미 문학 세션의 책 리스트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들은 모임에서 읽을 책을 다 같이 정하기보다는 한 사람이 정하는 것이 리스트의 완결성에서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작업은 열음님께서 맡게 되었다. 나는 열음님의 선택과 취향을 믿고 존중하는 한편, 선택에 있어 충분한 정보를 쥐어드리고 싶었다. 이때 내가 말하는 충분한 정보란, 누락 없이 완벽한 정보라기보다는 리서치의 도화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보량에 가까웠다. 최소한 중남미 지역의 작가 중 국내에 소개된 작가들과 그의 주요 작품 정도는 드릴 수 있어야 했다. 며칠 간의 작은 리서치를 거쳐서 소박하지만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리스트를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다.
➡포스트 보러 가기: 국내에 소개된 중남미 작가와 대표작 총정리 v.0.0
한 달의 방학은 수월히도 흘러갔다. 우리들은 다음 모임의 책을 추려가며 중남미 세션의 책 리스트를 만들어 갔다. 몇 가지 의견을 수렴한 끝에 최종적으로 여덟 권의 책으로 추려냈고, 모임 일정을 확정 지었다.
#1. 「탱고」, 라틴아메리카 환상 문학선 - 멕시코, 니카라과,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2.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아르헨티나
#3.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 칠레
#4. 「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 칠레
#5. 「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 브라질
#6. 「군터의 겨울」, 후안 마누엘 마르꼬스 - 파라과이
#7.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페루
#8. 「조선소」,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 우루과이
정리해보니 총 8개국의 소설들을 읽게 된다.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콜롬비아 작가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게 의외였다. 피해 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전혀 찾지 못했던 브라질 작가도 한 명 눈에 띄었다. 기대되는 다음 세션.
모임 초대에 필요한 모든 것(일시, 장소, 책)이 정해지기 무섭게 열음님은 모임 대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여덟 권의 책을 두 달간 함께 읽자는 이야기가 이렇게 시각화되고 나니, 참 새롭고 반가웠다. 나는 지체 없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만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모임 계획을 알렸다. 아시아 문학 세션 이야기를 주변에 했을 때, 중남미 세션이라면 참여해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몇 있었기에 기대가 되는 초대였다. 그러나 나의 설렘도 잠시. 상반되는 두 가지 이유로 모두 참석이 불발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적어서였다. 첫 번째 이유를 가진 친구들은 평소 독서를 즐기며 생활하던 것은 아니라서 2주에 한 권씩 여덟 권이란 책을 읽기를 몹시 우려하고 두려워했다. 반면에 두 번째 이유를 가진 친구들은... 이미 읽은 책이 많다며 거절했다. ㅋㅋㅋㅋ.... 저기... 중간은 없니..?
이 초대장을 꺼내 보이는 일이 내게는 의외의 발견과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스페인어과를 졸업했으니, 주변에 중남미 문학에 관심 있어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사랑을 길러내는 데에서라면 내 모교는 너무나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었다. 뜨겁게 반응해줄 학교 친구가 몇은 나타날 줄 알았는데, 확실한 무반응에 잠시 외로움을 느꼈다. 모임원을 모으는 데 나도 기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임이 아주 북적북적할 줄 알았는데...! 중남미 문학 세션 과연 누구와 어디로...
중남미 문학 세션 오리엔테이션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