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 에이치 Aug 30. 2022

무한한 해석의 장, 라틴아메리카 환상 문학선 「탱고」

중남미 문학 세션 #1_첫 책은 단편선

우리들이 새로운 시대와 지역을 만나는 방법


아시아 문학 세션 때와 같이 이번 중남미 문학 세션도 다양한 작가들을 접해볼 수 있는 단편선을 첫 책으로 정했다. 일정 시대, 일정 지역으로 한정해서 선정된 단편들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그 시대와 지역에 대한 어렴풋하지만 확연한 인상을 얻을 수 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


이번 모임은 무척 기대되는 한편, 두렵기도 하였다. 다양한 분들을 모셔온 모임 안에서, 나는 유일하게 중남미의 일부 국가를 다녀와본 사람이기도 했고 스페인어를 전공해서 중남미 문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추측성 발언을 쏟아냈던 아시아 세션을 떠올려보면, 이번 중남미 세션에서만은 좀 더 정확하고 확인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 처음으로 방금 읽은 책을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나는 한 번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의 독서가다. 그런데 첫 모임에 대해 막연히 품게 된 불안감이 출장길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보게 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비행이었고, 기내에 종이책을 들고 타는 건 전생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었다. 해질녘에 시작해서 자정까지의 밤 비행이었다. 불 꺼진 기내에서 독서등을 켜놓고 「탱고」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경험은 내게 새로운 감각을 주었다. 방금 끝마치고 다시 읽는 책이었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으며, 예상보다 훨씬 낯설었다. 포함되어 있는 단편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타이틀 별 줄거리와 감탄점, 의문사항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프놈펜과의 만남


프놈펜에 착륙한 시간은 자정쯤. 많은 것이 그대로였고, 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후끈하고 습한 공기와 모든 풍광은 그대로인 한편, 출입국 절차가 몹시나 간단해져 있었다. 덕분에 공항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게 된 시간은 오전 한 시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일 아침 여섯 시 반에는 일어나서 모임 참석 준비를 해야 했다. 출장지 프놈펜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에 원래 우리 모임의 시간은 일요일 오전 9시이지만, 프놈펜에서 참여해야 하는 나는 좀 더 이른 시간에 자리해야 한다. 제정신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던 나는, 후딱 샤워를 마치고 곧장 침대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과의 만남


몇 주전 간단히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었지만, 내가 상당한 지각을 해버렸던 탓에 차분히 모임원분들을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해야 할 듯싶었다. 오전 여섯 시 반, 꾸물꾸물 침대에서 벗어 나와 커피부터 내리고  주방의 식탁 한켠에 자리를 잡고 모임에 참석했다.


첫인상


책에 대한 인상을 나누는 것으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멕시코, 니카라과,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중남미 5개 국가의 대표적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들의 활동 시기로 어림짐작하여 보건대, 작품이 발표된 연도 순으로 단편들이 배열되어 있는 듯했다. 중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하면 으레 짐작할 수 있는 혼란함, 중언부언, 횡설수설함, 현실과의 거리감, 낯섦 등이 언급되었다. 전반적으로 전반부에 실려있는 단편들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매력적인 작품들이 많았다는 평이었다. 발표 연도에 따라 작품이 배열되어 있었으니 최근 작품일수록 반응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힌 단편을 세 가지 정도로 추리자면 아래와 같았다.

<올리세스>, 실비나 오캄포

<역무원>, 환 호세 아레올라

<요리 강습>,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


전반적인 감상평을 나눈 이후로는 한 작품, 한 작품 짚어가며 감상 후기와 의문 사항들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시간으로 9시에 시작했던 모임은 12시가 다 될 때까지 열띠게 진행되었을 만큼 우리는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 날 모인 우리 다섯이 내놓는 서로 다른 시선과 해석들의 일부나마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서술 주체는 <보이지 않는 세계들> 집단 지성이며, 나의 자아도 어쩔 수 없이 조금 들어있다.


1. <세이렌의 노래>, 미겔 카네


(소중함의 상대성) 처음에는 이상한 것에 꽂혀서 일생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인간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 우선순위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가치 헌신적 삶) 한 가지에 집중하고 본인의 인생 자체를 헌정해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었던 주인공이 한 편 부러웠다. 타인에게는 광인 취급을 받지만 본인은 만족하고 있는 점이 특히나 부러움을 산다. 다른 것은 참 어색하고 미숙한데 자신의 분야에서는 뛰어난 친구 생각이 났다. 


(중남미 문학의 특색) 평소에 가지고 있던 중남미 소설에 알맞게 부합하는 단편이었다. 보르헤스만이 읽었을 때는, 보르헤스만의 특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중남미의 문화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분위기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많이 느낀 작품이라는 평이 있었다. 중남미 문학사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력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임에 틀림없다.


2. <아멜리아의 경우>, 루벤 다리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오르게 하는 단편이었다. 예컨대, '오, 만일 시간이 멈추어만 줄 수 있다면'과 같은 부분이나 박사의 등장 등으로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작품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신 분이 있었다. 나는 「파우스트」를 읽지 않아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 시간의 흐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아멜리아와 재회하며 끝난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법칙을 거스른 인간은 과연 위대한가, 초라한가의 물음으로 느껴졌다.


3. <깃털 베개>, 오라시오 키로가


(섬뜩함)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명료한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이 아닐까? 독자에게 섬뜩함을 안겨주고 싶다는 오라시오 키로가의 의도가 투명하게 잘 반영되어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읽는 하나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 이 작가의 단편선인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 또한 매우 잘 읽히고 흡입력이 있다는 인상이라고 한다. 작가는 일생동안 주변인들의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삶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 같다. 


4. <나무>, 마리아 루이사 봄발


(나무의 상징성) 나무가 베어지는 사건을 기점으로 한 사람이 각성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무가 쓰러짐으로써 나무가 가리고 있던 햇빛들이 집안을 밝게 비추고, 모든 물건과 남편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제방이 작은 틈으로 인해서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나무라는 집 밖에 있는 하나의 자연물에 빗대어 이를 표현한 점이 좋았다. 


(음악의 활용) 베토벤, 쇼팽 등 음악과 잘 연결 지어 감정과 장면들을 설명하는 점이 인상 깊다. 음악을 더 잘 알았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5. <파울리나를 기리며>,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일방적 사랑) 개운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올드보이>를 봤을 때의 받았던 인상과 유사해서인 것 같다.  제목은 파올리나인데 파울리나에게는 목소리가 없으며, 화자가 파울리나를 기리는 방식 또한 매우 자기중심적이며 일방적이다. 


(중첩과 반복) 이 작품을 보면서 중남미의 단편들은 장면에 의탁해서 전개해 나가는 게 아닌가란 느낌을 받았다. <아가씨>에 나오는 미학적 장면들과 같은 묘사들이 눈에 띈다. 장면들이 서로서로가 겹쳐서 투사와 혼동으로 전개되며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6. <울리세스>, 실비나 오캄포


(꼬리에 꼬리를 문 뱀) 서로 꼬리를 문 뱀과 같은 이야기였다. 울리세스가 젊어지면 할머니들이 생기를 잃고, 할머니들이 젊음을 되찾으면 울리세스가 다시 늙고... 끝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였다.


(제로섬 게임의 조용한 승자) 울리세스나 할머니들 개별적으로는 개선(젊어짐)과 악화(늙음)를 반복하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이들 전체적인 삶은 개선되지 못하고 원래의 수준 그대로를 머문다. 이 소설에서 강조하지는 않지만, 이 제로섬 게임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미약을 파는 아주머니다. 울리세스와 할머니들로부터 이중 갈취를 하는 셈인데, 그 누구도 이 게임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며 제 주머니만 털린다. 제로섬 게임에서 조용히, 그러나 끝없이 이득을 취하고 있는 아주머니는 중남미 국가들과 미국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 같기도 했다.


7. <우리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환 룰포


(「뻬드로 빠라모」의 축소판) 작가의 장편 소설 「뻬드로 빠라모」의 축소판으로 느껴질 정도로, 멕시코 토지 개혁과 농민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잘 압축되어 있는 소설이었다. 멕시코 민중들이 빼앗긴 토지에 대한 권 빼앗긴 토지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가는 혁명 그 한가운데의 이야기를 짧지만 강렬하게 담고 있다.


(혁명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 혁명이 하나의 사건으로 전환기를 맞이하여 추동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성숙되고 내재화된 변화의 바람이 누적되어 발현된 결과 생각한다. 이 짧은 소설은 두 가지 점진적 혁명이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절대 작고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빼앗긴 토지에 대한 권리에 대한 재분배 요구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황무지를 분배받는 것으로 실질적 뜻을 다 이루지 못한다. 두 번째는 자신들이 가꾸고 살아갈 토지를 직접 선택할 권리에 대한 요구이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요구의 쟁취로 끝난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8. <역무원>, 환 호세 아레올라


(현실을 초월한 현실) 멕시코에서 머물 때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가장 많이 떠오르게 했던 작품이었다. 길을 물으면 알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능수능란하게 답하는 사람들, 뭔가 이상하고 신기하며 현실성 없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안하는 사람들, 절대 굴러갈 수 없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세계. 그런 것들이 내가 보고 체험했던 멕시코였기에, 나는 이 단편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이라기보다 대단히 섬세한 비판 소설이라 느꼈다. 그런데 모임원분들은 이 역무원의 말과 행동을 현실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그렇게나 비현실적이던가? 난 잘 모르겠는데.


(True or False) T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승객과, T역은 당장 도달할 수 없으며 F역을 언급하는 역무원. 각 역은 True와 False의 첫머리글자를 따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X역을 통과하는 열차를 맞이하며 끝나는데, 이는 우리가 언제나 진실만을 원하며 거짓을 거부하려 하지만 결국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답지는 진실도 거짓도 아닌 회색지대의 X임을 시사하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역무원의 존재가 환상문학으로 유명한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올리게 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는 원 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세계를 제패하고도 자신의 통치 지역이 너무 넓어 직접 가 볼 수 없자, 젊은 마르코 폴로에게 자신 치하의 도시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들려오는 세간의 소식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역무원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9. <연속된 공원>, 훌리오 코르타사르


(중남미 소설이 주는 충격) 보르헤스를 읽고 난 뒤의 충격과 여운에 이끌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단편집 「드러누운 밤」을 읽게 되었다는 분이 있었다. 그리고 보르헤스보다 훌리오 코르타사르를 먼저 읽었더라면 코르타사르로부터 마찬가지의 충격을 느꼈을 것이라 하셨다. 나에게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단편선이 언급되어 신비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시인, 누군가에게는 소설가인 그.


(그들의 오브제와 테마) 중남미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며 오브제는 원형, 미로, 거울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받는 테마라면 단연 영원성과 지속, 반복, 모호함 등이 있겠다. 단 몇 장의 분량으로 중남미 소설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를 쉽게 캡처할 수 있는 작품이다.


10. <요리 강습>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


(고기와 여성) 고기 요리를 통해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기는 도축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높은 상품가치를 구가하다가도 일정 시기를 놓치면 그 가치를 영영 잃고 만다. 그래서 이를 여성에 비유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소설 속에서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에 반발심을 가지다가도 굴복하는 화자의 심리가 나타나 공감이 많이 되었다.


(주의력 결핍과 의식의 흐름) 일련의 연속되는 행위들로 이루어진 업무를 매끄럽게 해내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 그런 주의력 결핍의 사람이 요리할 때 머릿속을 그대로 녹음해 옮겨둔 것 같은 생생함이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수시로 침범하며 훼방을 놓는 순간적 사유로 인해 허둥허둥 요리를 하다 결국 요리는 망쳐버리고, 요리를 할 때 간절히 필요로 했던 주의력은 펜을 들었을 때야 쏟아져 내려 이런 멋진 글이 나왔다. 산만함은 어쩌면 축복인지도. 


11. <틈새>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틈새에 확대경을 얹으면 절벽이 된다) 작은 사건을 파고 또 파면 어떤 절망을 일으키는가. 절차에 매몰된 수사법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과연 이런 우문 공세를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혜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아찔해진다. 그럼에도 나름의 유머를 놓치지 않아서,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12. <탱고>루이사 발렌수엘라


(토요일 밤) 이 지역 사람들이 춤에 가지는 의미를 여러모로 흠뻑 느낄 수 있는 단편이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 중 '주중에는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게 아무렇지도 않지만, 토요일만 되면 나를 꼭 껴안아주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그래서 나는 탱고를 춘다.'라는 독백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 떠올랐다. Viernes social, Sábado sexual y Domingo Familiar. "금요일은 소셜, 토요일은 섹슈얼, 일요일은 패밀리 데이"이라는 말이다. Sábado sexual에 찾는 것이 바로 탱고를 출 수 있는 곳이라니, 과연 그럴듯했다. 


(춤이라는 움직임) 이 소설 속에서 여자가 탱고를 추러 가는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하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탱고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춤이라는 것은 작은 허락의 제스처(예를 들면 여성의 눈길)로 시작될 수 있는 수줍으면서도 직관적인 구애의 행위이며, 곡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거절의 자유가 보장되는 행위이다. 손쉬운 만남과 진한 춤, 그리고 손쉬운 이별. 이것이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춤을 좋아하는 이유일까?




소회

'작품은 독자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떠오르며 미소 짓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음 모임에서는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 예정인데, 어떤 신선한 생각들을 마주할 수 있을지 정말 너무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남미 문학 세션 초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