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멎다

by 늘보니
심장 001.jpg 내 오랜 친구여, 아프지 말아 다오



갑자기 톱이 멈춰 섰다.


며칠 전부터 간간히 신음소리를 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느닷없이 멈춰 설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곧 손을 봐줄 테니 바쁜 일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좀 버텨 달라고 빌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기계치는 이래서 문제다. 톱이 비명을 지를 땐 이미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서 그러는 건데...


톱이 멈춰 설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해도 별도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첩첩산중에 기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니 누군가를 모셔오거나 어딘가로 저 톱을 끌고 가야 하는데 이도 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평소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그런 걸 잘한다면 그게 어디 기계치겠는가.


혼자 낑낑거리며 주물 정반을 간신히 제쳐놓고 보니 톱 안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아무리 기계치라 해도 청소 정도는 할 수 있는데 그저 부려먹기만 했지 톱 안 가득 톱밥이 찰 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톱을 돌리는 모터 위로 쌓인 톱밥을 털어내고 전원을 넣어보니 모터로 전원은 들어가는데도 톱은 꿈쩍을 않는다. 모터에서 톱날로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가 망가진 모양이다. 이건 농기계에도 많이 들어가는 장치니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고칠 수 있을 듯하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톱이 멈춰서도 당장 작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기계에 대해 잘 모르니 기계가 말썽을 부리면 천상 어디에다 의뢰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첩첩산중에 있다 보니 그도 쉽지 않아 톱 한 대를 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지만 그게 톱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다른 기계야 어찌어찌 다른 수를 내본다지만 톱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목공에서 톱의 위상이란 가히 심장에 비유할 만하다. 심장이 힘차게 펌프질을 해줘야 신체 곳곳이 원활하게 움직이듯 톱에 문제가 생기면 그 이후의 작업은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목공 작업의 출발점이 곧 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 장만한 톱은 저 멀리 물 건너에서 온 것이다. 명성답게 날렵하면서도 정확하게 나무를 자르거나 켤 수 있다. 여러 가지 지그를 이용하기에도 훨씬 편리하다. 그래도 내게는 언제까지나 사진 속 무식하게 생긴 톱이 주력이다. 피차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서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삐까번쩍한 새 톱이 구석자리에서 나도 빠르고 정확하게 잘 자를 수 있다고 샘을 내도 어쩔 수 없다. 서로 길들여진다는 것이 이래서 무섭다.


샤프트를 빼들고 바람처럼 읍내 철공소로 향한다. 심장이 완전히 멎지 않았기를 바라며, 그래서 숨이 끊어지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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