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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Sep 13. 2022

노란 물봉선

  작업장 앞마당 우물가에 물봉선이 한창이다. 이맘때면 물 가까운 곳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 처음 필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마당가에서 손쉽게 볼 수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저번에 물봉선을 두고 선창가 술집 작부의 입술에나 어울릴 법한 분홍이라는 망발도 하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물봉선이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꼬리(?)를 도르르 말고 있는 독특한 생김새는 물론 정면에서 바라보면 도톰한 아랫입술과 얇은 윗입술을 요염하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크기가 작은 물봉선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데다가 앙증맞기까지 하다. 사실 아무 꽃에나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예쁜 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물봉선은 한 군데에 무리 지어 피는 습성이 있다는 것과 물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하긴 너무 흔하고 가까이에 있어 귀한 줄 모르는 경우가 어디 물봉선뿐이겠냐마는... 





  노란 물봉선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노란 꽃 색도 꽃 색이지만 흔히 볼 수 없는 귀하신 몸이기 때문이다. 단지 꽃 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나, '수요공급의 법칙'이 자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도 막상 노란 물봉선이 더 끌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무리 지어 핀 노란 물봉선을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만 봐도 좋으련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면 나 자신이 노란 물봉선은 아닐 거라는 자격지심 때문이리라.





  얼마나 많은 벌이 한자리에 모여서 날갯짓을 하면 이런 소리가 날까? 가만히 벌들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내 몸까지 들썩들썩해지는 느낌이다. 벌들은 요염하게 벌린 물봉선의 입안으로 들락날락, 바쁘기도 바쁘다. 노란 물봉선이든 그냥 물봉선이든 벌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저 앞으로 다가올 한겨울을 넘기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꿀을 따 모으는 데만 열중할 뿐이다. 


  노란 물봉선에게는 노란 물봉선 나름의 삶이 있고, 그냥 물봉선에게는 그냥 물봉선 나름의 삶이 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네 삶이 가볍니 무겁니 따질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소중하다. 


  선창가 술집 작부에게도 그 자신만의 삶이 있을 것이다. 다른 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신산한 삶의 이력 따위는 어쩌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가 그랬으니 오늘 또한 그러하리라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앞서서 내일을 걱정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다. 다만 오늘을 힘껏 사랑할 뿐이다. 


  꿀을 찾아 어디든 힘차게 날아가는 저 벌처럼, 꿀을 찾는 벌 앞에 제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놓는 저 물봉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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