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세 개의 샘

by 늘보니


내 작업장엔 샘이 세 개 있다.

하나는 물봉선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마당가의 마르지 않는 그 샘이고, 나머지 두 개는 거금을 주고 지하수 개발업자를 불러서 판 것이다. 두 개 다 자그마치 지하 100m가 넘는 곳에서부터 천연암반수가 펑펑 쏟아진다. 물론 물 맛도 아주 좋다.

평생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샘을 두고 새로 샘을 판 것은 사정이 있다. 평소에는 아무 불편이 없지만 이게 장마철만 되면 흙탕물 때문에 골치였다. 정식으로 만든 샘이 아니라서 지표수가 그대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물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샘 위쪽에 있는 밭에서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농약이나 비료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원래 있던 샘을 잘 활용해 볼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역시 새로 샘을 하나 파는 게 낫지 싶었다. 물론 지금처럼 샘이 두 개나 더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건 또 그 나름의 다른 사정이 있다.

탱크 비스무리하게 생긴 착정기와 5톤짜리 트럭에 실린 대형 컴프레셔, 기다란 쇠파이프가 잔뜩 실린 또 다른 차가 꼬불꼬불한 시골길로 들어오는 광경은 꽤나 봐줄 만했다. 땅이 들썩거릴 만큼 위력적인 컴프레셔의 능력도, 순식간에 땅속 깊이 파고드는 착정기의 무시무시한 힘도, 비록 내 돈 들여 보는 것이긴 하지만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도 손발이 저절로 척척 맞는 팀워크라니...

프로란 이런 것이지 싶었다. 비록 허름한 작업복에 우락부락하기 그지없는 생김새였지만, 그들이 제법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뭔지 잘은 몰라도 일이 척척 되고 있다는 믿음이 저절로 생겼다. 이 사람들이라면 못할 게 없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물론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판 샘에서는 관이 터져라 콸콸 쏟아져 나오던 물이 며칠 지나 곧 나오다 말다 했으니까.

낭패였다.

땅속에 물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고 그 사람들도 모르는 일이라(물론 요즘 같은 과학 기술에 장비를 동원하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 경비는 또 누가 부담한단 말인가), 피차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 하루에 6톤을 기준으로 수량이 그것보다 안될 경우에 한해서 샘을 다시 파주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게 또 애매했다. 업체 사장과 1리터들이 물통을 들고 옥신각신, 서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끝에 또다시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타협을 해 샘을 하나 더 파기로 했다. 물론 수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피차 자신이 없어서 재보는 시늉만 내고 말았다.

새로 판 샘에서 물만 잘 나왔다면 그냥 재수가 없었겠거니 하고 말았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판 샘에서도 똑같이 물이 나오다 말다 한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프로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수량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채게 마련이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이것저것 점검하던 끝에 수중모터를 구동시켜 주는 릴레이 하나가 접촉 불량이 난 것을 발견했다. 망가지려면 아예 작동이 안 되던지 할 것이지 이게 되다 말다 해서 오히려 문제였던 것이다.

며칠 후 컨트롤함을 갈아주러 온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미 모든 복잡한(?) 문제가 마무리된 후라 서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처리 과정에서 있었던 오해나 풀어볼 생각이었다. 업체 사장이야 돈이 걸려 있는 문제기 때문에 다르겠지만, 실제 일을 한 사람은 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 일은 업체 사장이 따온 일이다 보니(알고 보니 그 업체의 직원이 아니었다), 자기가 직접 딴 일처럼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샘을 팔 때 공기압에 밀려 흘러나오는 물의 량을 보더라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자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전기 쪽 일은 그쪽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그 기사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프로답지 못했다고 순순히 고백했다.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맥을 놓고 희미하게 웃고 있는 그 기사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왠지 민망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분에 넘치게도 샘을 세 개나 가지게 된 까닭이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언제나 졸졸 흘러넘치는 자연 그대로의 샘,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새로 판 두 개의 샘...

가끔 그 기사의 웃음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냥 자조적인 웃음으로 그쳤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각오를 다지는 웃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기사는 왜 그런 식의 웃음을 지었을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기사와 업체 사장은 돈 문제로 뒤끝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