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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Sep 18. 2022

그건 편견이야

낙엽송

  사람의 경험이란 건 말야, 다 믿을 게 못돼. 자기가 직접 겪은 걸 믿을 수 없다면 대체 뭘 믿어야 되냐고? 어쩔 수 없지 뭐.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 그러더군. 낙엽송이란 나무는 가구제로 쓰기에는 2% 부족하다고. 목수 김 씨는 또 다른 말을 하더군. 낙엽송을 다시 봤다고, 기회가 되면 낙엽송으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 보고 싶다고. 같은 나무를 두고 두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 달라.

  낙엽송은 우리의 산이 헐벗었을 때 조림사업용으로 많이 심은 나무야. 그걸 심을 때만 해도 건축용 자재로서 확실한 쓰임새가 있었지. 곧게 쭉쭉 뻗으며 자라 주는 낙엽송은 비계로 쓰기에 딱이었거든. 그러던 것이 이젠 완전 찬밥 신세야. 요즘은 낙엽송 대신 다들 쇠파이프를 쓰거든. 이편이 확실히 일하기도 쉽고, 관리하기도 편하니까. 그래서 요즘 낙엽송은 주 용도를 잃어버리고, 간신히 구조제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야. 뭔가 다른 용처를 발견하기 전에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싶어.

  나는 목수 김 씨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 낙엽송을 어떻게 켜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원시원한 무늬결이 아주 일품이야. 그걸 보고 있노라면 눈이 즐거워져. 그것뿐만이 아냐. 침엽수 중에서는 단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 사람 손을 많이 타는 데 쓰기에 제격이야. 이를테면 책상이나 식탁 상판 같은 데 말야. 가구의 골격을 짜는 데도 아주 유용하겠지.

  물론 낙엽송이 안 좋은 점도 있어. 낙엽송엔 잔가시가 많아. 잘못 만지면 손에 가시가 들어서 그걸 빼느라 곤혹을 치러야 해. 돋보기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로 가느다란 가시가 손에 촘촘히 박혀 있다고 상상해 봐. 이거 한번 당하고 나면 아주 미치지. 누구 말처럼 오만정이 다 떨어져. 옹이도 그렇고 송진도 적은 편은 아니야. 
그렇더라도 나는 기회가 되면 낙엽송을 쓰고 싶어. 작업하긴 좀 까탈스럽지만 이만한 나무도 없거든.

  앞서 낙엽송이 가구제로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했던 사람은 아마도 나와는 다른 경험을 했을 거야. 손에 든 가시 때문에 곤혹을 치렀을 수도 있고, 다 만들어놓은 가구에서 송진이 줄줄 흘러내리는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그 심정 백번 이해할 것 같아. 나라도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테니까. 그렇더라도 낙엽송은 아주 몹쓸 나무라고 단정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편견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낙엽송도 알고 보면 또 쓰기에 따라 아주 좋은 나무니까.

  사람의 일생은 아주 짧아. 요즘 의학이 발전해서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기껏 백 년밖에 더 돼? 사실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기에는 턱없이 짧은 세월이지. 그래서 우린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쉽게 단정해 버리곤 해. 이 사람은 이런 사람, 저 사람은 저런 사람... 그리곤 뒤도 안 돌아보지. 어쩌면 이게 짧은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처세인지도 모르겠어.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기도 부족한 시간이니까. 그렇더라도 왠지 뒷맛이 좀 씁쓸하지 않아? 우리 모두는 어떤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각자 아주 특별한 존잰데...  


  너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진 않아. 다만 편견을 버려줘. 가시가 많고, 옹이가 많고, 송진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모습, 이게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낙엽송으로 만든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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