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과 홍두깨
엄마, 엄마!
아빠는 왜 우리한테는 없는 뿔이 있는 거야?
아빠가 가끔 내 볼을 부빌 때면 저 뿔이 얼마나 성가신지 모르겠어.
아빠의 뿔이 성가시다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새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
새우야 입만 벌리면 저절로 입안으로 들어오는데 궁리는 무슨 궁리를 더 하라는 거야?
난 아빠도 나처럼 매끈한 머리였으면 좋겠어.
저 뿔이 자꾸 내 이마를 친단 말야.
얘가 점점...
너, 아빠의 저 뿔이 대체 어떤 뿔인지 알기나 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엄마가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어봐.
지금은 저렇게 짜리 몽땅 볼품없어 보이는 아빠의 뿔도
한때는 정말 크고 아름다웠단다.
엄마가 처녀 시절 한눈에 반할 만큼 말이야.
그러니까 저 뿔은 아빠의 드높은 꿈과 희망의 다른 이름과도 같은 것이었어.
먼바다를 품 안에 두고 호령하고야 말겠다는 기상과
거센 폭풍우와 집채만한 파도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개와 같은 거 말야.
그래, 저 뿔은 바로 아빠의 자존심이었어.
아빠의 눈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이 났지.
굳게 다문 입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의지를 느끼기에 충분했어.
아마도 네가 돌이 갓 지났을 때일 거야.
아빠의 뿔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봐.
저기 아래쪽 뭉뚝한 게 보이지?
저건 바로 네 목숨과 바꾼 상처야.
백상어 떼에 쫓기는 너를 구하기 위해
아빠가 저 뿔을 필사적으로 휘두르던 모습을 엄마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그때 엄마는 날 선 작두 위에 올라탄 무당을 보듯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어.
아빠는 마치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했지.
너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어.
비록 그 아름다웠던 뿔이 뚝 부러져 저렇게 뭉뚝하게 되었지만...
아빠의 매끈해 보이는 살갗을 한번 봐.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저기에도 아빠의 세월이 그대로 녹아 있어.
우리 가족을 위해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다 얻은 자잘한 상처와 멍자국,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 아물기를 거듭한 끝에 저렇게 매끈한 피부를 갖게 된 거야.
아빠의 동그란 눈을 봐.
그저 사람 좋은 것처럼 순하게만 보이는 눈이지만
아빠의 눈은 아직 맑게 빛나고 있어.
아빠의 언제나 웃는 듯한 입을 봐.
결의에 차서 굳게 다물고 있던 아빠의 입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온화하게 웃고 있는 지금 아빠의 입도 엄마는 좋아.
아빠의 입이 저렇게 변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엄마는 잘 알기 때문이야.
엄마는 이런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워.
엄마, 엄마!
나 갑자기 이마가 막 가려워.
나도 아빠처럼 이마에 뿔이 나려고 그러나 봐.
맞지? 그래서 그런 거지?
원 녀석도...
네 이마가 가려운 건 여기 미역줄기 때문이잖아.
이리 와. 엄마가 떼어줄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너도 그 옛날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커다란 꿈을 키워나가다 보면 뿔은 어느 틈엔가 저절로 자라나 있을 테니까.
정말?
나도 정말 저절로 뿔이 자라날까?
정말 그렇게 될까?
요즘에도 칼국수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닭 칼국수나 해물 칼국수를 비롯한 온갖 칼국수 집이 주위에 널렸으니 아무래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보다는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싶다. 내 경우에도 면 종류는 뭐든 다 좋아하고 즐겨 먹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는 집에서 만든 칼국수를 맛본 게 몇 번 안 되는 것 같다.
어쩌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국수 맛이 그리워 옛맛 그대로 만든다고 소문이 난 칼국수 집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어쩐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런 맛이 아니었다. 닭고기나 각종 해물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애호박 하나만 숭숭 썰어 넣은 칼국수지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칼국수에는 언제나 특별한 맛이 있었다. 그때야 그게 무슨 맛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게 바로 할머니의 손맛이라는 걸.
할머니가 광에서 안반과 홍두깨를 꺼내오면 그날은 국수를 먹는 날이었다. 밀가루를 치대서 반죽을 만들고, 콩가루를 술술 뿌려가며 반죽을 밀 때면 할머니의 옆자리는 늘 내 차지였다. 방해가 된다고 멀리 떨어져 앉으라는 할머니의 지청구에도 나는 악착같이 그 자리를 고수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멀리 떨어져 앉으면 콩가루는 누가 대신 뿌려준단 말인가. 거기에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가 넓게 펴진 반죽을 척척 접어 안반 위에서 국수를 썰 때면 나는 바짝 긴장한 채 할머니의 칼질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할머니의 환상적인 손놀림이 신기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내 관심은 오직 할머니의 제일 마지막 칼질이 어떻게 끝나느냐, 거기에만 쏠려 있었다. 국수를 자르면서 나오는 꼬투리,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어쩌다 손바닥만 한 꼬투리라도 얻게 되면 신이 나서 얼른 부엌 아궁이로 달려가 재 위에 척 걸쳐놓고는 침을 흘려가며 그게 구워지길 기다리곤 했다. 부엌 아궁이 재에서 연탄 화덕 위로, 급기야 가스레인지 위 프라이팬으로 바뀌긴 했지만 할머니가 국수를 미는 날이면 변치 않았던 풍경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도 그게 무슨 맛이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가 않는다. 고소한 맛, 구수한 맛, 바삭바삭 씹히는 맛?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그 맛이 생각나지 않는 건 아마도 그게 추억의 맛이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옆에 계시지 않는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