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紀四二九三年庚子閏六月十三日乙丑開基定礎
同月二十二日甲戊巳時立柱上梁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子孫昌盛 富貴顯榮
단기 4293년 윤 6월 13일에 터를 닦아 주춧돌을 놓고,
같은 달 22일에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를 올리다.
이에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감응하여
인간의 오복을 갖추게 해 주소서.
또한 이 집 자손들이
부와 높은 지위를 얻어 창성하기를 비나이다.
며칠 전 동네에 오래도록 비어 있던 집 한 채가 헐렸다. 사람만 살지 않는다 뿐 겉은 멀쩡했던 집이다. 동네에 오늘 쓰러질지 내일 쓰러질지 모르는 빈집도 아무 탈없이 서 있는데 어떻게 하다가 멀쩡한 집이 헐리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몇 가구 살지도 않는 동네에서 마음만 먹으면 금세 어떻게 된 사연인지 시시콜콜 다 알아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집을 새로 짓기 위해 허문 것이 아니라면 사정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 집이라면 그간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으니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촌 동네에 빈집이 자꾸 생기는 것은 사람이 떠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대처로 떠나거나 혹은 미련마저 남김없이 버리고 저 세상으로 떠나거나...
어떤 경우가 됐건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으니 앞으로도 빈집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빈집 때문에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떠난 사람들의 길운을 빌어주거나, 쓸쓸히 쇠락해 가는 집을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밖에는 없다.
제아무리 탄탄하게 잘 지었다 해도 집이란 사람이 비게 되면 금방 망가지는 법이다. 잘 가꾸어 놓았던 화단도 한 해만 지나면 잡초투성이로 변하고, 두 해가 지나면 마당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세 해가 지나면 잡초란 놈은 어느새 기세 좋게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기도 한다. 이쯤 되면 바깥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안도 무사하기란 영 틀려먹은 일이다. 남은 일이라곤 이제 제풀에 쓰러질 때까지 저 홀로 쓸쓸히 견디는 것뿐이다.
잠깐 사이에 집 한 채가 사라지고 널따란 밭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동네에 마땅히 부쳐 먹을 사람이 없어서 놀고 있는 밭이 천지지만 자리가 좋으니 내년엔 누구라도 부치겠다는 임자가 나설 것이다.
마늘이나 콩, 그도 아니면 옥수수?
무얼 심던지 돈하고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쯤은 밭 임자도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 도지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누가 부쳐주기만 한다면 그 편이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는 것보다 밭 임자에게도 훨씬 득이다.
집터였던 곳을 밭으로 만들었으니 거름도 부족하고, 걷어낸다고 걷어내긴 했지만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잔뜩 박혀 있어 밭갈기도 쉽지 않으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또 어떤가? 이미 놀고 있는 밭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해 두 해 지나며 자연스레 산으로 변해가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처음에는 다 산이었던 곳이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한들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물론 밭 임자야 속이 쓰리겠지만 어쩌겠는가? 길게 볼 것도 없이 딱 10년 후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 산골짝에 누가 남아 있을지 가늠이 안될 지경인데 그깟 밭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왔던 대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사람이든 집이든 밭이든...
한낮에 온갖 먼지를 다 뒤집어쓰면서 수습해 온 저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환골탈태하여 뭔가 유용한 물건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또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때는 산을 지키다 또 한때는 누군가의 하늘을 가려주고 비바람을 막아주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제 할 노릇은 충분히 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을 아궁이 속에서 불길과 함께한다고 할지라도 미련이나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뭐든 만들어볼 생각이다. 탁자도 좋고, 장식장도 좋고, 침대도 좋고.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렇게...